극적 반전에 허 찔린 미국 매파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6.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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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호 사건, ‘북한=범죄 국가’ 호재로 이용…무죄 평결에 입 다물어

 
지난 3년 가까이 북한과 관계된 각국 당국자와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눈을 반짝이며 귀추를 주목했던 국제적 사건이 있었다. 2003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주 해안에서 마약 운반 혐의로 나포되었던 북한 화물선 봉수호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봉수호 사건을 두고 당시 세계 언론이 떠들썩했던 이유는, 북한 당국이 마약 밀수에, 그것도 대규모로 개입해 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잡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그 뒤 북한이 ‘범죄 국가’이며, 이같은 범법 행위에 북한 최고 지도부가 개입되었다고 주장할 때마다 봉수호 사건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적어도 봉수호 사건에 관한 한, 미국의 강경파들에게는 최근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사건 발생 3주년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있던 지난 3월6일, 이 사건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 법원이 최종심에서 예상과는 달리 ‘전원 무죄’라는 평결을 냈기 때문이다. 무죄 평결의 주된 사유는 봉수호가 마약 운반에 직접 관련이 있다는 혐의에 대한 ‘증거 불충분’이었다.

판결 당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디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일간지들은 봉수호 사건의 ‘극적인 반전’ 결과를 소상히 전했다.

이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 경찰 등 관련 당국은 처음부터 사태를 예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북한 선박에서 마약이 운반된 사실, 사건 발생 초기 정박 명령을 무시하고 봉수호가 도주하려 했던 사실, 봉수호 선원 가운데 정치 지도원이 끼어 있었던 사실 등이 ‘유죄’ 심증을 굳혔던 것이다. 더욱이 봉수호 나포 뒤 선박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봉수호 선원들이 북한 당국에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의 교신을 주고받은 증거가 나와 오스트레일리아 경찰 당국은 더더욱 ‘북한 당국 차원의 개입’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하지만 100일이 넘게 끈 최종 재판의 뚜껑을 열자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반면 봉수호를 빌려 오스트레일리아로 마약을 운반해 밀매하려던 야유킴람 등 국제 마약 밀매단 일당은 짧게는 15년에서부터 길게는 23년 징역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조직원 중 한 사람은 이미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붙잡혔다가 2001년 2월 감옥을 탈출한 바 있는,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마약 사범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이 밀수 조짐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봉수호 빌려 쓴 마약 밀매단은 ‘유죄’

일당은 2003년 3월경 북한 남포항을 출발해 약 보름 뒤 싱가포르와 자카르타 사이에서 잠시 머무르던 봉수호를, 시가로 1억 호주 달러(약 7백20억원)어치가 넘는 엄청난 마약을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으로 옮길 운반선으로 점찍었다. 말레이시아 국적 회사 이름을 내세워 봉수호를 세낸 뒤, BMW 자동차들을 옮기는 것처럼 가장해 마약을 운반하기로 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에 따르면 이들의 마약 운반 계획이 꼬리가 잡힌 것은, 2003년 3월27일 일당 중 두 명이 접선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항공편으로 시드니에 날아간 직후. 낌새를 눈치챈 수사 당국이 이들의 뒤를 밟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추적극은 영문 모르고 마약범들을 태웠던 봉수호가 4월20일  시드니 북동쪽 방면 해상에 초계함까지 동원한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저지를 받으면서 일단 막을 내렸다. 그 뒤 이 국제적 마약 밀매 사건은 ‘봉수호 사건’이 된 것이다.

북한 당국이 봉수호 사건으로 입은 타격은 자못 심대했다. 우선 오스트레일리아와 관계가 나빠졌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의 레오니드 페트로프 박사(한국현대사·00쪽 기고문 참조)는 “북한과 오스트레일리아 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른 때가 바로 이 사건 이후 6개월간이다”라며, 양국 간에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 교류가 이때부터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봉수호 사건은 또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데 호재가 되었다. 특히 미국의 대북 강경파는 지난해부터 위조 지폐 문제와 함께 마약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6자회담에 제동을 거는 등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최근의 봉수호 관련자 무죄 선고 이후,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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