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가족’의 뜻 깊은 무대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3.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무송씨, 연극 인생 45년 기념해 자녀들과 공연 …생애 처음 코미디 역할 맡아

 
조섭(전무송): (약간 주저하며)가셨거든요.
분녀(전현아): 어딜?
조섭: 그러니까···거기···로···
시영(전진우): 장모가 어딜 언제 가셨다는 건가요?
조섭: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분녀: (목이 메서)뭐야? 대체 뭐야?
조섭: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고 재빠르게)그러니까, 강을 건넜다. 다른 곳으로 가셨다. 세상을 달리 했다. 눈을 감았다. 숨이 끊어졌다. 안식을 얻었다. 돌아가셨다.···끝났다. 쫑났다. 꼴까닥, 꽥.
모두: 아!

서울 대학로 옆의 건물 2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연극 연습이 한창이다. 사위 내외에게 ‘마님’의 부음을 전하러 온 운전사 역을 맡은 배우 전무송씨(65)가 진지하고도 어눌한 톤으로 대사를 쏟아냈다. 표정이 심각하다. 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을 참기 위해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이들이 연습하던 연극의 제목은 <상당한 가족>(극단 꼭두). 한밤중에 어머니의 부음을 듣게 된 가족들이 벌이는 황당한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로, 프랑스 소극 <마님의 모친상>을 번안한 작품이다.

연습이 잠시 중단된 틈을 타 이들에게 다가갔다. 전무송씨의 얼굴이 어느새 잔잔한 웃음을 띤 ‘평소 버전’으로 돌아와 있다.  

“가족끼리 연습하니까 더 긴장돼요. 그동안 못난 짓 하던 것 다 들키겠구나 싶어. 가족 연극 한다니까 마누라가 유랑극단이나 꾸미지 그러냐며 놀려. 광대 집안이 된 것이지.”

아들·딸·사위와 어울려 연극 한판 벌인다고 해서 찾았다고 말하니 활짝 웃으며 그가 말했다. 두툼한 안경 너머로 보이는, 분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에 잔주름이 가득하다.

전씨의 딸·아들인 현아(35)·진우(31) 남매는 이번 연극에서 주인공 부부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딸 현아씨는 SBS 탤런트로 <토지> <여인천하>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해 낯익은 인물. 현재는 주로 희곡을 쓰거나 연극 무대에 선다. 아들 진우씨는 국립극단의 연극 <떼도적> <베니스의 상인> 등에 출연했다.

현아씨의 남편이자 전씨의 사위로 <상당한 가족>의 연출을 맡고 있는 김진만씨(37)도 1980년대 청소년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등에 출연했던 아역 배우 출신이다. 

 
딸은 작가 겸 배우, 아들은 배우, 사위는 연출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연기자가 나온 경우는 적지 않지만, 대를 이어 연극에 투신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전씨 가족들은 연극에 임하는 각오부터 ‘상당한 가족’인 셈. 극단 꼭두는 이들이 함께 만든 극단이다. 사위 진만씨가 대표, 딸 현아씨가 작가 겸 배우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 가족은 <상당한 가족>을 통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선다.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어울리는 배역이 있으니 같이 해보자고 해서···. 지금까지는 주로 고뇌하는 역할만 했는데, 코미디는 처음이야. 기대도 되고, 은근히 걱정도 되고.”

전씨가 방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긴 사람을 웃기는 역할이 그에게는 생소할 만도 하다. 그는 코믹한 역할은 물론 악역도 별로 맡지 않았다. 기억나는 악역이 있느냐고 묻자 그가 잠시 먼데를 보더니 말했다.

“수년 전에 텔레비전 드라마 <임꺽정>에서 서림 역을 맡았죠. 임꺽정을 배신한 양반 출신 모사 역이었는데, 그게 가장 악한 역이었지 않을까.” 더 오래전 일이라서 기억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연극 <리어왕>에서 그로스터 백작의 아들 에드가 역을 맡아, 아버지를 해치려는 악한의 모습을 소름끼치는 연기로 보여준 적이 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애들 괜찮지 않소? 우선 딴 거보다 제대로 연극을 해보겠다고 극단까지 만든 게. 연극하는 친구들이 보고는 나젊었을 때보다 낫대.” 그렇게 말하는 표정에 은근히 자식 자랑이 묻어있다.

전무송씨는 올해로 연기 인생 45년째를 맞고 있다. 그가 연극에 입문한 것은 1962년. 남산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에 1기로 입학하면서부터다. 신 구·이호재·반효정씨 등이 그의 입학 동기다. 그는 이후 동랑 유치진 선생이 만든 동랑 레퍼토리 단원으로 15년, 극립극단 단원으로 5년을 보냈다.

전무송씨, 1년 공연 일정 이미 꽉 차

“젊었을 때는 엄청 고생했습니다. 이 아이(전현아)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요. 마누라가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피아노가 없어졌어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마누라가 ‘그동안 뭘 먹고 살았는데’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한 20년 하고 나서 영화 <만다라>를 찍었죠. 그 후부터 생활이 좀 풀렸어요.”

그는 자신을 늘 ‘배우’라고 소개한다. 그는 “연극과 영화가 다르지 않다. 무대가 어디든 제대로 자기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영화나 드라마를 연극과 한 무게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1980년대 이후 쌀독이 비면 영화나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다가도 쌀독만 차면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남들 같으면 이미 은퇴할만한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창창한 현역이다. 지난해 말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뒤 그의 결기가 더 굳어졌다.

“젊을 때 이해랑 선생한테 꾸중 많이 들었지. 맨날 ‘넌 멋은 있는데 내면이 없어’ 그러셨어. 그렇게 15년 쯤 지났을까. 어느 날 연극 끝내고 분장실에 있는데 선생이 들어오시더니 웃으며 그래. ‘응 이제 내면이 생겼어.’ 그 말이 내가 들어본 최고의 칭찬이요. 얼마 전 이해랑연극상을 받고 나니 감회가 새로워. ‘인마 연극 열심히 해’ 하시는 것 같아.”

지난해 그는 다섯 편의 연극 무대에 올랐다. 올해는 이미 연말까지 스케줄이 다 찼다. 5월에는 극단 산울림이 입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유령>에, 7월에는 배우 최종원씨와 13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 <북어 대가리>에, 11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연극, 전무송>에 출연할 계획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