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돈 내고 연주회 가면 바보?
  •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 승인 200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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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공연 관객, 대부분 ‘공짜표 손님’…연주자끼리 ‘품앗이 관람’

 
세계적인 겨울 축제이자 러시아 최고 축제인 ‘예술광장축제(Art Square Festival)’의 폐막 연주회가 열렸던 지난 1월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색창연한 필하모니아 볼쇼이홀. 연주 도중에도 찬란하게 불을 밝힌 샹들리에와 홀의 좌우로 군데군데 박혀 있는 대리석 기둥은 차이코프스키의 ‘예프게니 오네긴’의 주 무대다.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교향곡 5번이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었다. 1천6백여 석의 객석은 완전 매진되어 2층의 입석 자리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이 정성껏 정장을 한 러시아 청중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이같은 모습은 축제가 시작된 열흘 동안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주최측 언론 담당자는 유료 객석 점유율이 97% 이상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3%의 행방은? 협찬사와 VIP, 그리고 취재진에게 간 극소수의 초대권이 답이다. 결국 ‘공짜표’는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매년 연말에서 연초까지 이어지는 이 겨울 축제의 표 예매는 이미 한 달 전 거의 끝난다. 당일 매표는 입석에 한해 이루어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러한 축제 외에도 시즌 중에는 언제나 객석이 만원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조촐하게 열리는 한국 유학생의 졸업 연주회에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아무 연고도 없는 러시아인들이 객석의 3분의 2는 꼬박꼬박 채워준다. 부러움 이전에 경이로움마저 들게 되는, 러시아는 문화 면에서만은 위대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 축제는 봄에 개최되는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다. 전국의 교향악단이 한자리에 모여 자웅을 겨루는 이 축제는 올해로 18년째에 이르고 있다. 작년 교향악 축제의 평균 객석 점유율은 51%였는데 그 중 초대권 비율이 40%에 가까웠다. 어떤 날은 75%에 육박하기도 했다. 국내 최고 음악 축제 중 하나인 교향악 축제는 아마 초대권이 없었다면 오래 전에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초대권이야말로 축제를 지탱해온 일등공신인 셈이다.

러시아, 유료 관객 객석 점유율 97%

오케스트라 연주회 같은 대형 공연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 많게는 하루에도 대여섯 군데에서 열리는 개인 리사이틀이나 앙상블 연주회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2월 말한 국내 유명 공연장의 리사이틀홀. 연주 시작 시간이 이미 5분여 지났지만 ‘코리안타임’이 어김없이 적용되어 늦게 입장하는 청중들로 객석은 어수선했다. 드디어 첫 곡이 시작되었다. 첫 곡이 끝났을 때 필자 생각으로는 도저히 완성도 높은 연주라고 할 수 없었음에도 객석 어디선가 벌써부터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연주자의 제자나 친구의 소행(?)이 분명했다. 오히려 연주자가 머쓱해했다. 그리고 늦게 온 청중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로비에서는 리셉션이 있었다. 공짜표로 공연을 본 사람들은 때늦은 저녁까지 대접받고 있었다. 청중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연주자의 동료 음악인과 친구, 제자, 고교와 대학 동창, 친지들이었다. 모두 다 연주자에게 인사를 하고 얼굴도장을 찍었다. 마치 결혼식 품앗이처럼 이 연주자는 동료 음악인이 다음에 연주회를 할 때 만사 제쳐놓고 찾아가야 한다. 기획사측에 표가 얼마나 팔렸는지 물어보았다. “거의 초대권이에요. 누가 자기 돈 내고 연주회에 오겠어요?” 오히려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이 바라본다.

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 교향곡은 듣지 않고 협연 무대가 끝나면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얌체 청중들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협연자가 준 초대권을 받아 자리 채우기용으로 온 ‘비음악 애호가’다. 협연자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고 나면 뭐가 그리 바쁜지 총총히 발걸음을 돌린다.

표가 안 팔려도 공연해야 하는 까닭

이처럼 우리 공연장은 연주자가 음악만을 들으러 온 청중들과 진지한 예술적 교감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는 사람들을 초대권으로 모아놓고 연주를 들어달라고 구걸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 연주자가 이날 공연에 들인 돈은 비싼 대관료를 포함해서 대략 7백만원 선. 이른바 공연 보여주고 돈까지 내는 ‘자선 음악회’가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음악계도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너도나도 외국 유학길에 올랐다. 10년 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기점으로 외국에서 실력을 연마한 음악도들은 봇물처럼 귀국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공연장도 하나 둘 늘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많은 연주회를 소화해낼 수 없는 청중이었다. 전체 인구의 4%에 해당하는 클래식 인구는 20여 년이 지나도록 거의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니 연주자와 공연기획사로서는 제살 깎아먹기 경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개인 레슨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귀국 독주회는 필수 코스다. 그것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과 같은 유명공연장에서 치러야 품위가 서고 초대 손님에게도 인정받는다. 이는 곧바로 이력에 포함되어 시간강사 자리라도 딸 수 있다.

표가 팔리지 않는 공연, 그러나 그런 공연이라도 해야 하는 연주가, 이런 구도가 깨지지 않는 한 초대권의 악순환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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