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외국 기자를 납치했나
  • 가사시티 · B.사메드 (캐나다 언론인) ()
  • 승인 2006.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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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현지 취재 기자 기고/PFLP, 미국·영국 언론인 색출하려 호텔 습격

 
편집자 주 : 지난 3월14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취재 중이던 KBS 용태영 특파원이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었다. 다행히 하루 만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이라크의 김선일씨 죽음을 잊지 않고 있던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시사저널>은 그날 있었던 사태 전개와 납치 정황을 알기 위해, 가자 시티 현지에서 취재 중인 팔레스타인계 캐나다 언론인 B. 사메드 씨로부터 긴급 기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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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4일 화요일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예리코 감옥을 침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술렁였다.  아랍 뉴스 미디어와 라디오 방송국은 이스라엘이 탱크와 헬리콥터, 불도저까지 동원해 예리코 교도소를 부수고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압송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다. 특히 위성 텔레비전 방송사인 알 자지라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아흐메드 사다트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사무총장이 이스라엘에 압송되기 직전, 그와 전화 연결을 하는 데 성공했다. 사다트는 차분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이스라엘의 압제와 침략을 중단시켜 달라”라고 아랍 세계에 호소했다. 방송을 듣고 있던 가자 시민들은 흥분했다. 많은 이들이 사다트의 생존 여부를 걱정했고 거리의 상황은 시시각각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스라엘이 압송한 사다트는 팔레스타인사람들이 그들 손으로 직접 뽑은 자치 의회 의원이었다. 그는 지난 1월25일 총선에서 옥중 출마해 당선되었다. 또 사다트는 PFLP의 최고 지도자이기도 하다.  PFLP는 극좌파 조직으로 과거 1960, 1970년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강한 지지를 누려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PFLP는 사다트를 포함해 단 세 의석을 얻는 데 그쳤다. 팔레스타인 분석가들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극좌 성향이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  PFLP는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탄생했는데 1980년대 이후 공산주의가 쇠퇴하고 이슬람 운동이 부활하면서 급격히 영향력이 쇠퇴했다. 하지만 PFLP 지지층은 여전히 견고하다. PFLP는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 비정부기구(NGO) 여러 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몇몇 PFLP 산하 단체는 인권운동 쪽에 활약이 크다. 팔레스타인 정치 전문가들은  PFLP는 하마스가 주도하는 새 정부 구성에 참여하리라고 믿는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는 “사다트와 그의 동료를 납치한 행위는 불법이다. 그들은 예리코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무 힘이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리코 침공과 사다트 의원 납치를 팔레스타인 민중의 인권과 존엄성 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스라엘이 예리코 교도소를 부수고 들어간 이유는, 사다트가 옥중 출마해 당선된 이후 그가 석방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현 정권이 곧 다가오는 총선에서 표를 모으기 위해 도발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대가 예리코 교도소에 수감된 정치범들을 하의 속옷만 남긴 채 발가벗기고, 아흐메드 사다트를 이스라엘로 압송했다는 소식에 PFLP 지지자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거리에서 붉은색 모자와 복면을 쓴 5~7명의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차를 몰고 가는 게 보였다. 붉은색은 PFLP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그들은 확성기를 울리며 미국·영국을 비난하고 양국 시민들을 납치하겠다고 위협했다.

어떤 젊은이들은 영국문화원 안에 주차된 한 지프차에 총을 쏘았다. 다른 무장 세력은 아미드 이스트에 있는 미국문화원에 쳐들어가 사무 집기와 컴퓨터를 부수었다. 분노는 미국과 영국 두 나라로 향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군대의 예리코 감옥 침공에 미국과 영국 정부가 협조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미국·영국, 이스라엘에 협조’ 소문에 분노

PFLP 대변인은 팔레스타인 라디오틀 통해 미국·영국 정부가 이번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예리코 교도소 공격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영국 정부는 지금껏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간섭으로부터 예리코 교도소를 지켜주겠다며 안전을 보장해왔다. 미국·영국·이스라엘이 한 쪽에 서고, 팔레스타인이 다른 쪽에 서서 맺었던 협정에 따라, 예리코 교도소는 간수부터 경비 요원까지 모두 미국·영국 보안 요원들이 맡기로 했다. PFLP가 이 협정에 동의한 이유가 바로 미국·영국이 PFLP 지도자인 사다트를 보호해 주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가 예리코 교도소를 공격하기 바로 직전 양국 보안 요원들이 서둘러 철수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국·영국 정부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영국 외무부 장관 잭 스트로는 3월15일 알 아라비아 TV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부는 압바스 수반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 보안 요원 철수 계획을 미리 알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편지에 정확한 철수 시기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영국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3월14일 예리코 침공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이것이 PFLP 지지자들이 미국과 영국 기관들을 향해 분노를 표현한 이유다. 외국 기자들을 납치한 것은 그 중에 미국과 영국 기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3월14일 PFLP 무장 세력들은 외신 기자들이 머무르는 한 호텔을 습격했다. 그곳에 한국인 기자(KBS) 두 명이 묵고 있었다. 한 명(용태영 기자)은 납치되었고 다른 한 명은 팔레스타인 보안 당국이 지키고 있는 보안 구역 빌딩으로 피신했다. 필자도 보안 빌딩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한국인 기자를 만났다.

그 한국인 기자는 충격을 받은 듯했으며 동료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보안 관리에게 동료가 어디에 있는지 과연 안전한지 등을 애타게 물어보고 있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팔레스타인 보안 관리가 그 기자를 진정시키며, 동료가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보안 빌딩 주변에는 기자들 20여 명이 모여 있었으며 민간인들도 있었다. 자선 단체 옥스팸에서 일하는 영국인 직원 팀 씨의 신발과 청바지는 피로 젖어 있었다. 그는 이날 자신이 겪은 참극을 자세히 전해주었다. PFLP 무장 세력이 호텔에 진입해 그를 밖으로 끌고 가 차에 태웠다. 뒷좌석 양 옆으로 총을 든 요원이 같이 탔다. 팀 씨를 태운 차가 2백m 쯤 달아났을 때 검문소에서 경찰이 차를 세웠다. 운전수는 검문을 피해 차를 우회해서 계속 돌진해나갔고, 경찰은 운전수에게 총을 쏘았다. 피가 차에 흥건히 번졌다. 운전수의 이름은 레한이라고 했다. 그는 두 시간이 지나 병원에서 사망했다.

팀 씨는 경찰이 굳이 총을 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자에서 납치된 외국인 가운데 해를 입은 경우는 없었고 대개 몇 시간 동안 납치되어 있다 풀려나곤 했기 때문이었다.

 PFLP의 외국인 납치극에 대해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가자 지구 택시 기사는 머리를 흔들면서, “외국인을 납치하는 것은 세계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들을 환대하고 잘 대접해주는 것이 아랍 사회의 전통이다”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외국인 납치를 비난했다. 저녁이 되어 필자는 에르티즈 관문을 지나 이스라엘로 옮겨갔다. 다음날인 3월15일 용태영 기자를 포함해 납치되었던 모든 외국인들이 풀려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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