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건 ‘대권 물막이’ 시작됐나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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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욱과 손잡고 ‘전북 교두보’ 건축…팬클럽 우민회 회원들도 대거 출사표

 
3월23일 새벽 6시30분, 고 건 전 총리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연지동 사무실 앞에서 고 전 총리 일행과 중앙 일간지 기자 10여 명을 태운 버스가 전라북도로 출발했다. 대권 레이스에서  승자가 되든 패자가 되든, 이날은 그에게잊기 힘든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정치적 행보를 내디딘 날이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의 전라북도 방문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 현장 방문, 강현욱 전라북도 지사와의 면담, 그리고 전북대학교 강연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고 전 총리가 중앙 일간지 기자들에게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각각의 행사보다는 그가 대권 주자로서 갖는 정치적 위상이 아니었을까? 기자들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그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의 실체였을 것이다.

방문 기간에 고 전 총리 주변에는 대략 세 그룹의 정치 세력이 실체를 드러냈다. 좌 우민, 우 민주, 후 한미준. 개인 팬클럽인 우민회와 민주당, 그리고 창당해서 고 전 총리를 영입한다고 말하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이하 한미준)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단체는 바로 우민회였다. 우민회의 도움으로 대권주자로서 고 전 총리는 같은 날 전북을 찾은 정동영 당의장과의 세 대결에서 완승했다.

고 전 총리가 가는 곳마다 우민회가 있었다. 새만금방조제 공사 현장, 강지사와 만난 한식당, 강연을 행한 전북대학교에서 우민회는 짜임새 있는 조직력으로 그를 응원했다. 고 전 총리가 중앙지 기자들을 데려갈 수 있었던 자신감의 기저에도 우민회가 있었다. 그 역시 틈이 나는 대로 우민회를 챙기고 있다.

우민회에 대한 고 전 총리의 따뜻한 시선을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바라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민주당 사람들이었다. 민주당원들 역시 우민회만큼 그의 전북 방문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새만금 공사 현장 방문 때는 ‘전라북도의 희망 새만금, 대한민국의 희망 고 건’이라는 플래카드까지 준비해서 영접하기도 했다.

새만금 방문·강연 등으로 ‘세몰이’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는 전북대학교 강연회 장에 직접 찾아와 그를 맞았다. 강연회에 민주당원이 많은 것을 보고 현장을 취재한 한 지역 언론 기자는 “강연회장이 마치 민주당 전당대회장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민주당 소속의 한 도의원은 “힘겹게 고 전 총리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제 선거 고민은 끝났다”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를 둘러싼 또 하나의 세력인 한미준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이들 또한 조용히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김태식 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을 지낸 문창연씨의 경우, 스스로 ‘미래의 고건당 후보’를 자처하며 부안군수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문씨는 “나 말고도 많은 지역 정치인들이 한미준 이름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의 세를 확인하는 것과 함께 이번 전북 방문에서 관심을 모은 것은 바로 강현욱 지사와의 만남이었다. ‘종이 당원’ 문제를 제기한 강지사가 열린우리당 도지사 경선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탈당이 점쳐진 강지사의 버팀목은 대법원 판결로 재개된 새만금 끝막이 공사와 고 건 바람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에 가장 애가 닳은 사람은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의장이었다. 강지사가 고 전 총리의 후광을 입고 선거에 나올 경우, 전북 도지사 선거는 고 전 총리와 정당의장의 대리전으로 해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북 지역에서 고 전 총리 지지도는 정의장 지지도의 배를 넘고 있다. 도지사 선거에 질 경우 정의장 또한 고향인 전북에서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의장은 대리전 양상이 되지 않도록, 그래서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강지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새만금 지원특별법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강지사의 정치적 고향인 군산시에서 열고 강지사를 독대했다. 강지사가 고 전 총리를 만난 지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정의장이 강지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날인 3월24일 결국 강지사는 당내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실 정의장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전북 도당 관리에 애를 먹고 있었다. 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규성 의원 등 김근태계 인물이 포진하고 있어서 강지사의 형편만 들어줄 경우 도당과의 갈등이 불가피했다. 경선 방식을 놓고도 이미 중앙당과 도당의 갈등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 있었다. 결국 정의장은 자신의 전주고 선배인 김완주 전 전주시장에게 의탁하게 되었다. 현재 김 전 시장은 여론조사에서 강지사를 앞서고 있다.

고 건·강현욱-정동영·김완주 대결 구도 형성

정의장만큼이나 애가 닳았던 김시장 역시 정의장의 마음이 강지사에게 기울지 않도록 밀착 마크했다. 그는 정의장이 강지사를 만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고 건-강현욱-정동영-김완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치적 구애 사슬이 강현욱과 정동영 사이에서 끊어지면서 고 건·강현욱 세력 대 정동영·김완주 세력으로 나뉘는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정의장이 ‘고 건 대망론’을 잠재우고 전북을 수성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주민의 지지가 고 전 총리에게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새만금 전시관 앞에서 만난 한 도민은 “정동영이 나오면 전남 사람들이 찍어 주겠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와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히 뛰었던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전북도민에게 정동영이 지갑 속 현금이라면 고 건은 미래의 어음이다. 그들은 미래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와 강지사의 만남, 그리고 강지사의 경선 불참 건은 우민회의 역할을 주목하게 한다. 우민회가 고 전 총리와 강지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최근 우민회 지회장으로 부임한 김하영 전 옥구군수다. 고 전 총리의 전주북중 동기인 김하영씨는 고 전 총리가 ‘중학교 다닐 때 함께 도원결의를 맺은 친구다’라고 말할 만큼 친한 사이다. 2002년 강현욱 지사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그는 요즘도 강지사를 돕고 있다. 

강지사를 전면에 내세운 우민회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민회 전북지회 고문을 맡고 있는 이건식씨가 김제시장에, 핵심 멤버인 이돈승씨가 완주군수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이돈승씨는 “송웅래 전 군산시장 직무대행, 장재영 장수군수, 김종규 부안군수, 김진억 임실군수 등이 우민회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지사가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 행보를 걷게 되고 우민회 출신들이 앞 다투어 출마하면서 이제 고 전 총리는 현실 정치에 자동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더라도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방문 기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 전 총리는 여전히 “지방선거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가 아니라면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도대체 무엇일까?

강지사가 본선에서 선전한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고 전 총리에게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전북을 자신의 텃밭으로 공인받게 되고 그에게 쏟아지는 ‘무임 승차론’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 기여도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입증함으로써 선거운동 기간 중에 혹시나 생길지도 모르는 거품론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체적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뒤쫓아오는 정의장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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