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깨끗이 치울까 로봇 청소기 ‘삼국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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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90만원대 내놔…대우·삼성 제품 곧 출시

 
급기야 90만원대이다. LG전자는 3월 말 본격적인 혼수 철을 맞아 소비자 값을 99만원으로 낮춘 로봇 청소기 ‘업그레이드 로보킹’(모델명 V-R4000S)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2004년 LG전자가 ‘로보킹’을 처음 출시했을 때 소비자 가격은 2백49만원. 그로부터 불과 2년 만에 로봇 청소기 가격이 1백50만원 가까이 내려간 셈이다.

물론 90만원대라고 해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기자가 찾아간 서울 시내의 한 LG전자 직판장에는 로봇 청소기가 아예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고가품이다 보니 매장에서 해당 제품을 찾는 고객이 별로 없어 팜플렛으로만 안내를 하고 있다”라고 판매 담당자는 말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심리적 한계선이라는 백만원 이하로 가격대가 떨어짐으로써 로봇 청소기 대중화 시대를 열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LG전자는 자평하고 있다. 이 회사 리빙사업부 송대현 상무는 “휴대폰이 극히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큰 시장으로 성장한 것처럼 로봇 청소기 또한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필수 전자 제품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LG전자의 움직임은 조만간 벌어질 ‘로봇 가전 삼국지’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LG전자의 아성을 위협하고 나선 것은 삼성전자와 대우일렉트로닉스. 두 회사는 연내 로봇 청소기 시장에 진출할 계획임을 잇달아 밝히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막을 내린 가전 제품 전시회 ‘2006 IHS’에 자체 개발한 로봇 청소기를 출품했던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오는 7~8월 출시를 목표로 일정을 조율 중이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또한 상반기 중 로봇 청소기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2003년 ‘쿠르보’라는 파일럿 제품을 선보였다가 시장 전망이 불확실해 로봇 청소기 판매를 유보한 바 있다.

중소기업 간에도 로봇 청소기 ‘삼파전’

두 회사가 출시할 로봇 청소기의 가격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2백만~3백만 원 하는 고가 수입품과 30만~50만 원대 중저가 보급품의 중간인 70만~90만 원대에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LG전자의 가격 인하로 이같은 예상은 더 힘을 얻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소기업 간에도 로봇 청소기를 둘러싸고 소(小) 삼국지가 벌어질 전망이다. 유진로봇의 ‘아이클레보’, 마이크로로봇의 ‘유봇’, 한울로보틱스의 ‘오토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중 선발 주자로 2005년 초 판매를 개시한 아이클레보는 저렴한 가격(일반형 39만원, 고급형 54만원)에 비해 우수한 성능으로 출시 1년 만에 청소기 만2천 대를 팔았다. 아이클레보는 현재 코스모양행이 수입·판매하는 미국 아이로봇 사의 ‘루보’(50만원대)를 바짝 추격하며 중저가 로봇 청소기 시장을 양분해 가는 중이다.

올 들어 이에 도전장을 던진 ‘유봇’은 상대적으로 고가(88만원)이지만 국내에 출시된 로봇 청소기 중 유일하게 물걸레질이 가능하다는 강점을 내세워 주요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중이다.

4월부터 판매를 개시하는 ‘오토로’는 4백만원대 프리미엄급 로봇 청소기. 국내에서 가장 비싼 청소기답게 자기 위치 인식 기술 등 첨단 로봇 기능을 채택해 바둑판 식으로 이동하며 구석구석을 정밀하게 청소하는 것이 강점이라고 한울로보틱스측은 밝히고 있다.

로봇 청소기 시장을 둘러싸고 대기업·중소기업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각축은 가전 로봇 시대의 본격 도래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는 “로봇 청소기는 최초의 지능형 서비스 로봇 시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노래·율동하는 가사 로봇도 곧 상용화

산업용 로봇과 달리 그간 서비스용 로봇 시장은 성장이 지지부진했다. <스타워즈> 같은 공상 과학 영화를 보고 눈이 높아진 소비자들은 머리 속에 입력된 로봇 이미지와 실제 로봇 간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보’ 같은 로봇 애완견도 초기에 반짝 관심을 끌다 사라질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최초의 지능형 서비스 로봇이 바로 로봇 청소기이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 수요가 창출되고 있어 시장이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로봇 청소기가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 교육·경비·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춘 서비스 로봇들도 머지않아 일반 가정을 파고들게 될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유진로보틱스는 올 하반기에 아이들에게 노래·율동을 알려주고 외출한 집 주인에게 집안 상황을 알려주는 가사 도우미용 로봇 ‘주피터’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달리는 자동차에서 전투 로봇으로 자동 변신하는 완구용 로봇 ‘트랜스봇’도 이 즈음 시장에 나온다.

이는 오는 10월 100만원대 국민 로봇을 출시하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2010년에는 세계 3대 서비스 로봇 강국에 진입하고, 2020년에는 1가구 1로봇 시대를 완성하겠다는 것이 정보통신부의 구상이다.

냉장고·세탁기뿐 아니라 로봇도 필수 가전품이 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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