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밟아 시간의 끝으로 간다
  • 김훈 ()
  • 승인 2006.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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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 훈의 ‘자전거를 타고 길 떠나는 이유’

 
봄이 또 되어서 천지간에 혼곤한 입김이 자욱한데 들에 나가보니 땅은 벌렁거리고 나뭇가지는 할딱거리고 꽃봉오리들이 간질거린다. 동네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학교에 구경 갔더니  1학년 신입생의 젊은 엄마들이 학교 마당에 모여서 수다 떨고 있었다. 팽팽해서 가득 찬 것들이 살아서 재갈거리는 아름다움은 눈부시게 찬란했는데, 이 또한 봄이 온 것이다.

여생에 남은 봄이 몇 번일런지를 헤아리는 일은 아둔한 미망일 터이지만, 눈 앞에서 자글거리는 봄빛 속을 깊이 들여다보니 남은 몇 번의 봄이 이미 거기에 와 있었고, 겨울이 가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겨울 속에 와 있던 봄이 스스로 되어지는 것임을 알겠다.
책으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고,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으며, 봄으로써 시간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내 모르지 않거니와, 시간이 서책으로부터 겉도는 저녁에 기어이 자전거에 몸을 싣고 바퀴를 굴려서 바람과 노을 속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그야말로 바람인 것이어서 다만 스쳐갈 뿐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 말 걸 수 없고 거기에 기댈 수 없고 만지거나 품을 수 없지만, 그 스쳐가는 것들이 몸 속으로 흘러들어와서 몸은 바람 속에서 닳아지고 다시 태어나는데, 들판 위로 그어진 바퀴 자욱을 뒤돌아보면 지나온 한 줄기 궤적 속에서 신생과 풍화는 다르지 않고 개념이 무너진 들판 위로 길 만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내 사랑하는 모국어 ‘길’은 길고 멀다고 해서 길인 모양인데 길의 ‘ㄹ’ 받침은 그 위를 가는 자의 진행형의 동작을 느끼게 한다. 길은 그 위를 가는 자의 가는 동안 만의 것인데, 몸이 기진하도록 바퀴를 굴려서 나아가도 길은 또 저쪽 산맥 뒤로 뻗어나가는 것이어서 지나온 모든 길들은 소멸하고 닥쳐올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음으로 바퀴를 굴려서 길 위로 나설 때 모든 길은 새롭고 낯선 길이다.

만경강 갯벌에서 자전거 길은 끝나고…

길은 지나가면 지워지고 지워져서, 그 길이 아직도 거기에 뻗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뜨는 해를 안고 영일만을 돌아서 감포로 내려가는 925번 지방도로와 구례에서 꽃피는 섬진강을 따라서 하동으로 내려가는 861번 지방도로와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너서 닿는 맞은편 19번 국도와 부석사에서 소백산을 넘어서 영월로 가는 마구경 산길과, 영월에서 다시 소백산을 거꾸로 넘어서 영주로 돌아오는 고치령 산길과 인제에서 태백산맥을 넘어서 양양 바닷가로 가는 미천골 산길과, 그리고 그 가물거리던 염전길, 산판길, 임도, 농도, 가도, 소로, 우마차길, 경운기길, 경지 정리된 길, 경지 정리 안 된 길, 마을길, 논뚝길, 밭고랑길, 다랑논길, 저수지 뚝방길, 무덤옆 길, 갯가길, 강변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황토길, 진흙길, 바위길, 수렁길, 젖은 길 , 마른 길, 언길, 녹은 길, 곧은 길, 굽은 길이며 새 잎 돋는 봄길과 눈 덮힌 겨울 길들이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뻗어서 오고가는 자들의 길로 통해져 있는 것인지를 책상 앞에 앉은 밤마다 나는 매우 의아하게 여긴다.

내 사랑하는 모국어의 자음 ‘ㄴ’은 따스하고 모음 ‘ㅓ’는 둥글고 깊다. 그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너’라고 쓸때 내 마음은 아득한 길 위에 나선다. 지나간 길들이 소멸하고 다가오는 길들을 다 감당해낼 수 없듯이 ‘너’는 그 길들의 운명과 같구나.
만경강 갯벌에서, 내 자전거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은 내 앞에서 아득하였다. 건널 수 없는 썰물의 갯가에서, 언어란 결핍과 상실의 소산일 뿐이었고, 그 결핍의 언어로 한없이 긴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5월 초에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면 만경강은 죽고 갯벌도 다 없어진다고들 한다. 길이 닿을 수 없는 시간의 이름이듯이 너는 결핍의 이름이고 길이 끝나는 갯가에서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우두커니 바람 속에 서 있다.

만경강이 죽기 전에 다시 바퀴를 굴려서 다녀올까 하는데, 겨우내 허리병을 앓고 난 근력이 버티어낼런지 걱정이다. 옥구 염전에서 회현면들을 건널 때 갈대 숲 속에서 새들의 날개치는 소리 들리고, 만경대교를 건너서 심포 바다로 향할 때 서해는 노을에 가득찬다. 바다는 멀어서 흔적 만으로 기별이 오는데, 잔산(殘山)들은 먼 바다쪽으로 물러서고, 강은 하구 깊숙이 바다의 기별을 불러들여서, 만경강은 국토의 관능을 이룬다. 자전거를 타고 만경강 하구를 돌 때, 관능 조차도 닿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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