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
  •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06.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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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의 시사과학] 미국 신경과학회 총회 참석, 뇌 연구 임상실험 자청

 
2월 중순 한국의 삼소회원들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예방했다. 삼소회는 가톨릭 수녀, 성공회 수녀, 불교 비구니 스님, 원불교 교무 등 여성 종교인들의 모임이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해 히말라야의 산간 마을 다람살라에 머물며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 공로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달라이 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종교지도자의 한 사람이지만 과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에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프랜시스코 바렐라와 함께 〈마음과 삶 Mind and Life〉 연구소를 설립하고 2년에 한 번씩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함께 인간의 의식, 잠과 꿈, 죽음, 임사체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주된 목적은 과학과 영성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있다. 가령 2000년 3월에는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와 미국의 신경과학자들이 모임을 갖고 티베트 불교의 명상 수행을 최첨단 뇌 영상기술로 분석했다. 그 결과는 2003년 9월 1,000명을 웃도는 과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발표되었다. 명상 중에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상 자료가 보고된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이 모임에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명상 수행으로 뇌 활동에 변화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1967년 하버드 의대의 허버트 벤슨 교수는 초월명상(TM) 수행자들이 명상하는 동안 일어나는 신체 변화를 밝혀냈다. 평소에 비해 호흡시 17%가량 산소를 덜 쓰고, 1분당 심장박동수가 3회 떨어지며, 휴식과 이완에 관련된 뇌파인 세타파가 증가했다. 벤슨 박사의 연구 이후 여러 학자에 의해 명상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인체의 면역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의사들은 심장병, 에이즈, 암 같은 만성질환을 예방, 완화 또는 통제하는 방법으로 명상을 권유한다. 또한 명상은 우울증, 과민반응, 집중력결핍 같은 정신장애를 치유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동양의 신비주의로 여겨지던 명상이 서양의 현대의학에 의해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정받게 된 셈이다. 미국의 경우 명상 수행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고 학교, 기업, 병원, 교도소, 국제공항 등에 명상실이  마련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명상하는 동안 어떤 신체 변화 일어나나

지난해 11월 달라이 라마는 미국 신경과학회 총회에 참석해 14,000 명의 신경과학자 앞에서 강연을 했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참석을 저지하려고 서명운동을 벌였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신경과학자들이 종교 지도자인 그로부터 듣고 싶어한 것은 뇌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봉착하는 각종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해답이었다. 이를테면 심한 우울증을 치료하는 마지막 수단인 전기충격요법(ECT)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의사들은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변태성욕자인 간호사가 뇌에 전기적 충격을 가하는 요법으로 환자들을 장악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신경과학자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분노, 증오, 질투심 따위를 통제하기 위해 뇌 수술을 하거나 정신의약품을 상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대답은 명료했다. 일흔살의 고승은 과학자들을 향해 “제가 첫 번째 환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소리쳤다.

자신의 뇌에 전기충격을 가해 평화로운 상태의 마음이 될 수 있다면 날마다 명상할 필요가 없어 좋지 않겠느냐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요컨대 달라이 라마는 신경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인류가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길 희망한 것이다. 과학에 대한 그의 합리적인 접근은 황우석 파동을 겪으면서 맹목적인 반응을 나타낸 몇몇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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