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 시대’ 가고 ‘2이 시대’ 열린다.
  • 정희상 .김종민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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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이인제, 차기 대권 라이벌 체제 형성  각각 ‘이미지 변신’ ‘동교동과의 관계 정립’ 숙제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정치사를 좌우해 온 3김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틈을 비집고 차기 대선 구도에 바짝 다가선 인물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이인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다.
 
총선을 거치면서 이 두 사람을 위협할 여야의 거물급 대권 후보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해 2002년 대선 구도는 현재로서는 매우 단순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출발선에는 이회창  이인제 두사람만이 서있는 형국이지만, 그럴 만큼 이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과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두 사람 가운데도 앞서 가고 있는 쪽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다. 이총재 측근들은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냉정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총재의 젊은 참모인 정태윤 총선쟁점관리 단장은 “이제까지 많이 이루었으니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라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부자 몸조심’ 수준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라는 과제를 염두에 두고 보면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이총재 주변의 분위기다.

 총선에서는 반DJ정서에 힘입어 반사 이익을 누렸으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상대방의 실점이 아니라 이총재 본인의 득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아직까지 반DJ라는 깃발 외에 특별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이총재로서는 이제 국민들에게 당의 대표가 아니라 대통령감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또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야당 체제에서 1백33석이라는 거대 야당을 이끌고 가야 하는 이총재로서는 강해진 힘만큼 감당해야 할 부담도 커진 셈이다. 앞으로 소모적인 전쟁으로 여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면 그 비난의 절반은 고스란히 이총재 못이 될 가능성이 높다. 너무 떠서 불안한 측면도 있는 것이다.

이총재, 투사형 이미지 탈피 급선무
 이총재의 핵심 측근인 금종래 비서실 차장은 “솔직히 지금까지는 DJ정권의 몰아붙이기에 맞서 생조하기 위햔 정치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수권 능력을 보여주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라고 이총재의 과제를 요약했다. 이총재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이총재의 젊은 참모들은 총선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한 계획을 짜왔다.

 우선 이총재 측근들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목은 이총재가 냉정하고 엘리트주의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친화력과 포용력을 갖춘 따뜻한 모습으로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으로 이총재는 대중속으로, 민생 현장으로 뛰어드는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의 한 참모는 “앞으로 현안이 있는 곳이면 대중과 1박2일을 같이 지내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또한 건설적이고 비전 있는 정치 지도 모습을 갖추고 가는 것도 중요한 변신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이총재가 제시한 비전은 ‘법대로’ 였다. 그러나 대법관이 아닌 정치 지도자가 내놓는 주력 상품치고는 폭이 좁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1998년 총재 취임 이후 총풍  세풍  병풍 등으로 집권당과 예각을 형성해 오는 과정에서 3김식 정치 행태를 청산하고 합리적인 정치를 추구한다던 애초의 포부와 달리 집권 세력의 발목을 잡는 싸움꾼으로 비친 것은 이총재에게 내심 큰 고민거리였다. 지금까지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앞으로 펼쳐지는 본격적인 대권경쟁에서는 원인이 어찌되었든 이러한 투사형 정치인의 굴레를 벗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불안정한 상태를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고 사회적 갈등이 적지 않으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희망 있는 비전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대서 후보 자질 시비에서 자유르러울 수 없는 것이다.

 2002년을 향한 이총재의 변신 시도는 당장 마주칠 현안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내 문제다. 이총재는 총선승리를 바탕으로 당내 장악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표용력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발휘할 생각이다.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쟁점이 되고 있는 부총재 경선 문제도 당내 민주화를 위해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근이 적지 않다.

 또한 이총재가 지난 4월14일 기자회견에서 제2 창당 작업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당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건설적이고 개혁적인 면모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 참모진은 앞으로 있을 재  보선 공천 과정에서 공천의 개혁성을 한단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아예 공천 심사 과정을 완전히 공개해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공개톨론을 거쳐 후보자를 선정하자는 것이다.

당내 도전 여권 공세 등 장애물 첩첩
 당 체제 정비 과정에서, 이총재 주변에 그동안 대여 투쟁 과정에서 집중 배치되었던 투사형 의원들보다는 합리적이고 참신한 인사들을 중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한 이총재의 변신 계획을, 그동안 이총재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30~40대층을 설득하는 데 맞추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김부겸  심재철 오세훈  원희룡등 이번에 새로 진출한 젊은 당선자들과의 호흡이 긴밀해져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이총재의 변신을 가늠할 또 하나늬 시험대는 대여 관계다. 이총재는 일단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포용력과 건설적인 면모를 발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국회의장 문제에 대해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에서 맡아야 하지만 여권이 욕심을 부린다면 표결로 결정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따질 것은 있지만 민족적 대사인 만큼 큰 틀에서는 여야가 협력해서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대여 관계는 상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로 건설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2년 대선을 향한 이총재의 변신 계획은 이미 총선 전부터 구상해 온 것이고, 이번 총선 결과가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일단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얼마나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장애물은 안팎에 널려 있다.

 우선 당내 차세대주자들의 도전이다. 김덕룡  강삼재  강재섭  박근혜  손학규  이부영  홍사덕 의원이 자천 타천으로 지도부 경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김덕룡  강삼재 의원은 총선전에는 물론 선거가 끝난 후에도 이총재가 독선적으로 당을 운영해서는 안된다며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그러나 이총재측은 이들이 이총재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기를 어려울 것이라고 낙관한다. 공천 책임을 묻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졌고, 대선 후보 자질론을 제기하기는 시기 상조라는 점에서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총재측은 당내 도전보다는 여권의 공세를 내심 더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DJ가 결국 이총재대세론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세를 취할 것이라고 본다. 병역 비리 수사가 아직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한 여당이 어떤 식으로든지 정계 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있다.

이인제 위원장 “대선 때는 영남 정서 달라질 것”
 그러나 문제의 초점은 이총재 본인에게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당내 도전이든 여권의 공세든 한국정치사에서 그 정도의 장애물도 뛰어넘지 않고 대권을 거머쥔 경우는 없다. 결국 이총재가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게 자신의 변신 계획을 밀고 나갈 뚝심이 있는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총재가 그동안 정치 9단들과 상대하면서 웬만한 시련에는 일희일비하지 않을 만큼 두터워졌다. 3김을 제외하면 이총재만큼 큰 승부에서 단련된 인물도 없지 않느냐.”

 민주당 이인제 선대위원장의 처지는 좀더 복잡한 편이다. 당초 총선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고부동한 여권내 차기 주자 자리를 굳히겠다던 이인제 선대위언장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는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을 때부터 충청권에서 이변을 일으키고 중부권, 특히 경기와 강원에서 승리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전략에 따라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충청권과 중부권을 집중 공략했고,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

 민주당이 비록 이번 총선에서 당초 목표했던 제1당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내용적으로 성공한 선거 결과라고 자평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인제 작품’이 뒷받침되었다는 의미이다. 선거전 초반부터 공공연히 차기 대권을 표방하고 뛰어든 이인제 위원장으로서는 사실상 여권내 대권 구도에서 독주 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이인제 위원장은 이번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민주당이 비록 영남에서 1석도 얻지 못했지만 다음 대선에서는 상황이 다를 것이가고 강조했다. 영남의 강고한 반 DJ 정서는 DJ정부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다음 대선 때가 되면 누그러지리라는 전망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번 선거에서 충청의 반JP정서를 그가 눌러 이겼듯이 영남의 반DJ정서 또한 눌러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러나 이인제 위원장의 대권 가도에 청신호만 켜진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를 통한 그의 ‘떠오름’은 김대통령의 통치권 조기 누수를 걱정하는 당내 동교동계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동교동계의 한 중진은 이렇게 말했다. “이인제 위원장이 이번 선거에 큰 공을 세움으로써 차기 대권 반열에서 선두에 선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김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동안 그가 돌출 행동으로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 문제에 대한 신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인제 위원장 진영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지분을 요구하거나 자기 목소리를 내는 대신 이미지 관리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인제 위원장의 한 측근은 “5년 전 민자당 대권 구도에서 이인제 위원장은 처음에 얼굴도 내밀지 않았지만 혜성처럼 나타났듯이 앞으로 2년이나 남은 기간에 민주당에서도 어떤 인물이 혜성처럼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인제 위원장의 독주 체제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당내 경쟁 세력의 의지 또한 만만치 않다. 노무현  김중권  이종찬 당무위원이 몰락한 상황에서 이인제 위원장에 대적할 차세대 주자감은 김근태 수도권 선거대책위원장과 이번에 5선 고지를 넘어선 정대철 당무위원이다.(23쪽 상자 기사 참조).
 
이인제 독주 꺼리는 견제 세력도 만만치 않아
 결국 민주당의 차세대 지도자군은 이인제  김근태  정대철 당선자를 축으로 한 대권 도전 그룹과, 한화갑 김원기 의원을 축으로 한 당권 도전 그룹으로 양분될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동교동계가 당권을 쥐고 차기 대권 주자군을 조정해 김대통령의 통치력 주수를 막는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경쟁은 16대 원구성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굵직한 현안을 앞두고 있어 당장 불거지지는 않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 승리로 힘을 얻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대권 행보를 가시화하면 할수록 여권내 차세대 지도자군도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앞으로 2~3개월간 민주당이 보여줄 고요는 치열한 당권 쟁탈전을 앞둔 태풍 전야에 비유된다. 민주당 당선자들을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차세대 지도자 그룹의 물밑 작업이 이미 시작된 것도 그 전조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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