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소탈한 우상’ 변진섭
  • 이성남 사회.문화부 차장대우 ()
  • 승인 1991.01.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직 노래뿐’인 자세로 정상 발돋움… “청소년에게 환상만 심는다” 비판도

 1월8일 서울 중고 정동 MBC 라디오 극장에서 있었던 <우리는 하이틴> 공개 방송 현장. 3백50석의 객석은 겨울 방학중인 중고등학생들로 가득 찼다. 좌석의 8할 이상 여학생들이었다. 감색 외투에 하얀 목도리를 두른 변진섭이 나타나자 입구에서 기다리던 세명의 여고생은 ‘진섭오빠’를 부르며 다가섰다. 이들 중 하나는 입술연지를 엷게 발랐으며 하나는 귀걸이를했다. 친밀하게 농담을 하는 품이 변진섭 무대의 단골임을 알려준다. 공개무대에 나가 ‘어떤이별’을 부르자 객석엔 ‘오빠’를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가 조그만 몸짓을 해도 하다못해 마이크만 바꿔들어도 객석은 자지러들었다. 카메라의 플래쉬가 쉴새없이 터졌으며 대행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듯 망원경을 꺼내보는 학생도 있었다. 노래 한곡이 끝나자 한 여학생이 나와 사탕 목걸이를 변진섭의 목에 걸어주었다. 변진섭이 악수를 청하자 객석에서는 부러움이 섞인 탄성이 터져나왔다. 인기가수가 출연하는 공개방송 때는 으레 입장권을 얻으려는 학생들이 경비원의 구박을 받으며 긴꼬리를 물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을 쫓아 정동으로 여의도로 떼지어 다니며, 기성을 지르며 ‘오빠 문화’를 창출해낸다.

 음반이나 테입의 주된 고객은 이들이다. 밤에도 심야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한다. 이들은 “스타를 독점하고 싶은 생각에 ”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이어폰을 꽂고 방송을 청취하고 소근소곤한 말소리에 “자기와 직접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워크맨’을 통해 좋아하는노래를 듣는 일 이외에는 모든 일이 방해 받듯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켜 놓는다.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길은 곱지는 않다. 라이브 콘서트 현장을 ‘광란의 현장’으로 간주, “정신적으로 허약해진 10대의 센터멘탈리즘과 매스컴의 동시다발적인 위력의 상승적인 만남” 이라고 풀이하는 이도 있다. 이들은 과연 ‘문제아’ 또는 ‘비행아’인가. 집단 중독을 일으킨 것일까

 “공개방송에 오는 학생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직접 보고 싶다는 소박한 동기에서 오며 어른들이 걱정하듯 공부하기 싫어 오는 학생은 별로 많지 않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을 맞고 있는 한 연출자의 말이다. 개중에는 출근하듯 자주 나타나는 학생도 있는데 이들은 대개 특정가수 팬클럽 회원으로 이들에게는 될 수 있으면 방청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인기를 과시하기 위해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는 등 방청 태도가 적정수준을 넘을 때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뛰어난 가창력이 가장 큰 강점
 전교조 문화국에 있는 주현신 교사는 구로중학교 재직 시절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공장지역의 이 학교에도 ‘변진섭파’‘소방차파’ 등 여러 파가 있어 서로 다투기도 하나 대개의 학생은 “차비가 없어” 방송국까지 갈 생각을 안한다. 공개방송에 가는 학생들의 성향은 “성적은 중간쯤이고 말발이나 하며, 개방적이고 트여있다.” 이들은 학교생활에서 다소곳하거나 모범적이진 않지만 명랑하고 활동적이다. 자기 생각을 표한하지 않은 ‘침묵의 문화’보다 자기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문화·사회적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주교사의 설명이다. 다만 내용과 방향에 있어서 관심의 대상이 변진섭만이 아니라 ‘노무현’일 수도 있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일 수도 있도록 선택의 다향한 방향에 제시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고려병원 신경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는 “선망의 대상으로서, 또는 안전한 애인으로서 스타 동경의 신드롬이 생긴다”고 분석하면서 이같은 현상은 “청소년 발달과정상 당연히 밟아가야 할 징검다리” 라고 말한다. 이어 “관객이 열광하는 무대 가수나 운동선수를 좋아하는 그룹과 만화가나 소설가, 탤런트 영화배우 같은 정적인 스타를 좋아하는 그룹의 심리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자신이 청중이라는 의식없이 그 순간 대상체인 가수·운동선수와 심리적으로 ‘하나’가 되어 고함을 지르면서 젊음을 발산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러나 드물게는 편집증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다. 이들은 스타의 웃음이 자기를 향한 것으로 착각하고 스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생활을 침해한다. 또한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등 자기의 건전한 발달을 해치기도 한다면서 “인기 가수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심야방송 MC로 내세우는 일은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조사개발원이 90년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 및 전국 대도시의 1만4백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남자가수는 변진섭이며 이어서 현철 이승철 김민우 조용필의 순이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연령별로는 십대 이십대가 그를 최고가수로 선정했다. 변진섭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그의 인기는 어디에서 연유할까.

 우선 뛰어난 가창력을 들 수 있다. 올해 연세대에 입학한 박종호군은 변집섭의 일상생활에 관심이 없으나 노래를 통해서 그를 만나는 경우에 든다. “그의 목소리를 수수하면서도 조미료를 부려놓은 득 감칠맛이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호감이 가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틀어주는 곡인데도 싫증나지 않는다. 마음이 울적할 때 들으면 위로가 되고 기쁠 때 들으면 즐거움이 더한다”고 말한다.

텔레비전 출연 가급적 삼간다
 ‘홀로 된다는 것’ ‘네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너에게로 또다시‘ 등 느리고 차분한 발라드에서 나타난 그의 강점은 긴 호흡과 자연스러운 고음처리, 도회풍의 블루스 창법이다. 높은음도 힘들이지 않고 잘 부르며 중음을 차분하게 끌고가는가 하면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부드럽게 올라가기 때문에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음악 평론가 이장직은 그의 노래들이 “평범하게 따라 부르는 사랑노래치고는 약간 전문성을 띨 정도로 선율의 도약과 현학적인 화성을 담고 있다” 고 평한다. 그의 노래 군데군데에는 진부함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음악적 정보가 숨겨져 있는 탓에 꾸준히 감상될 수 있는 구석이 있으며 바로 이런 점이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성공을 뒷받침해준다는 것이다.

 변진섭의 인기 요인으로 ‘성실한 인간성’을 꼽는 이도 많다. 잘생긴 얼굴도 아닌 그를 왜 젊은 여자들이 좋아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방송 출연시 그를 보면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겸손하고 솔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스타의식’이 없다. 거만하지 않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말솜씨 때문에 누구나 쉽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26세의 여사무원 천분선씨는 부담이 없는 그의 인상을 ‘희망사항’에 대비시켜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아도 멋이 나는 남자“ 라고 말한다. 가수와 노래 내용의 유사성은 가수에 대한 배반감을 없애준다면서 변진섭이 ”책상 면적 때문에 싸웠던 국민학교 동창생이나 소꿉친구처럼 만나면 즐겁고 편안한 대상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모가 나지 않으며 수더분한 용모가 외모에 치우치고 있는 이른바 비디오형 가수에 식상한 청중에게 신선함을 준 것이다. MC 라디오 <우리는 하이틴>의 연출자인 김도현 프로듀서는 대마초에 강타당한 가요계에서 그의 소박한 이미지와 건실한 태도는 ”청소년이 좋아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또 그의 확고한 직업의식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점도 있다. 레코드 1,2집이 1백만장이상 팔려나가자 여러 레코드회사에서 4억 전속금을 놓고 전속 계약 경합을 벌였는데 그는 “자신의 노래를 위해” 이 제의를 뿌리쳤다. 그는 또 텔레비전 출연을 잘 안한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돈’ ‘인기’ 등 세속적 욕심에 초연한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를 10대 취향의 발라드 가수에서 온 국민이 좋아하는 대중가수로 발돋움하게 한 곡은 남성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만든 ‘희망사항’. 특이한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의 이 곡은 국민학교 1학년 한 학급의 40명 가운데 10명이 넘는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며 가사바꿔 부르기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한다,

 학사 가수가 희귀했던 70년대 중반까지도 젊은이들은 주로 팝송에 편향되어 있어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77년 MBC 대학가요제 및 대학생가수 등용문이 생기자 ‘학사 가수’는 더 이상 희소가치가 없어졌으며 이들이 부른 발라드 풍은 오늘날 가요계를 트로트와 발라드로 양분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발라드가 음반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원인을 80년대 이후 전자악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우리 대중가요가 외국음악에 손색없을 만큼 음악적 완결성이 높아졌다는 데서 찾는 이도 있다. 노래운동가 문승현씨는 변진섭이 “얼굴로 한몫보는 가수와는 달리 음악적 완성도가 높다”면서 그의 곡이 히트하는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고 평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가 “감각적인 음향으로 환상의 재생산을 부추기는 측면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고 지적한다.

 또 대중음악평론가 김창남은 “대중가요 음반의 가장 큰 소비층이 10대 청소년이고 따라서 대개의 대중가요가 10대를 겨냥해 만들어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래 속에는 청소년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 고 지적한다. 그 노래들에는 입시전쟁에 내몰리며 1년에 1백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귀중한 목숨을 버리고 많은 학생이 비행의 늪에 빠져드는 10대의 고단한 현실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환상의 세계는 각박한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 날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주기는 하지만 그 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순간이 지나면 각박한 현실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고 그러면 곧 다시 한번 환상으로의 도피를 꿈꾸게 된다. 그런 식으로 수요의 재창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학 합격이 계층상층과 출세의 유일한 수단이 되는 사회에서 청소년이 탈선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문화환경은 없는가. 한 교사는 대학 합격하는 10명말고 낙방하는 90명의 건강한 삶을 회복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특별활동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서조차 소외되어 있는 왜곡된 청소년 문화를 탈춤반 문학반 노래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자신이 주체가 되는 문화를 꽃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