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못할 거라고? “어림없는 소리”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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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담배 전쟁/FDA, 연방대법원 패소 불구 새 법안 추진할 듯

‘식품의약국(FDA)은 담배를 규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미국 행정부와 담배 제조사 간의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는 현행법에 따른 결과일 뿐이고, 담배 규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의지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 직후 클린턴 대통령은 “담배의 해약으로부터 우리 자녀를 보호하기 원한다면 의회는 지금 바로 식품의 약국에 담배 규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해, 앞으로도 담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1996년 8월부터 담배를 ‘습관성 마약 물질’로 보고 이를 규제해 왔다. 1950년대 초 담배가 폐암의 원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과 영국에서 거의 동시에 발표된 이후 미국 정부와 담배 제조사 간의 담배 해약 논쟁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계속되어 왔다.

그러다 1995년 이 논쟁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 발생했다. 다배 회사의 내부 비밀 문서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사람에 의해 소포로 미국 의학협회에 배달되었다. 이 문서로 인해 담배 회사들의 불공정하고 비윤리적인 행태가 밝혀졌다. 담배 해솨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자체 연구를 통해 담배가 건강에 해롭고 니코틴이 중독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대외비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각주에서 합동으로 담배로 인한 질병에 대한 정부 지원 진료비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식품의약국은 담배 규제 조처를 마련했다. 담배 판매를 억제 하기 위해 약품으로 분류한 다음 27세 이하 담배 구입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하고 담배 자동판매기를 술집 등 성인 전용 시설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다.

공화당이 로비에 넘어간 탓
이러한 조처로 인해 매출과 수입에 큰 타격을 받게 된 담배 제조사들은 곧바로 담배 규제 조처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 1997년 4월 첫 소송에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해를 유발하기 때문에 행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로 식품의약국이 승리해 담배 규제 조처가 더 힘을 얻었다. 하지만 1998년 연방항소법원과 지난 3월21일 연방대법원에서 식품의약국의 권한이 인정되지 않음으로써 담배 회사가 승리했다. 이 판결로 말미암아 식품의약국은 일단 담배 규제 조처를 철회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

식품의약국의 담배 규제 조처가 ‘청소년 흡연 감소를 위한 기념비적업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철회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배 회사롲부터 정치 자금을 받아 온 공화당 의원들이 의석의 다수를 점하고 있어 담배 규제 조처를 부결시켰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미국 행정부가 더 이상 담배를 규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우리나라 흡현 피해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배금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현행법에 따른 결과일 뿐, 담배와의 전쟁에서 담배 회사가 최종 승리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의회에서 승인을 얻어내거나, 우리나라의 청소년 보호법과 같은 법안이 제정되면 얼마든지 담배 판매를 규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종 판결문을 발표한 연방대법원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도 “청소년 흡연 등 담배가 공중 보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라고 말해 다른 방법으로 담배를 규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 세계 최대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가 지난해 10월에 담배가 중독성이 있고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인정했고,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 사는 지난해 4월 흡연이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시인했다.

1998년에는 50개 주정부가 담배 회사를 상대로 흡연으로 인한 의로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해 2천4백60억 달러 배상금을 받기로 했다.

따라서 담배와의 전쟁은 새로운 법안 마련에 따라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여전히 공화당이 미국 의회의 다수파이지만, 담배의 피해와 중독성을 심각하게 여기는 여론에 위배되는 결정을 공화당의 의원들이 쉽사리 내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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