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 鄭周永 정치에 건다
  • 정주영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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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李明博씨가 민자당 전국구 의원 후보로 당선 안정권의 순위에 등록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민자당이 무엇 때문에 그 분에게 전국구 자리를 주었는지 모르지만 잘됐다는 생각부터 했다. 이명박씨는 나와 27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어느 기업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분이 이제는 기업을 떠나갔으니까 자기네 형제(민자당 李相得 의원이 이씨의 친형)가, 또는 그들의 집안이 발전하는 길로 가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사실 그 분에게 별 관심이 없다.

  우리는 선거중에 아파트 값을 서울은 반 값으로, 지방은 3분의 2값으로 내릴 수 있다고 정책광고를 내놓았다. 이명박씨는 민자당으로 가고 나서 이 정책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했다. 아파트 값을 반으로 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두어 차례 말했다는 것이다. 그 분이 민자당 당 체제에 의해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아파트 값을 우리가 말한 대로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거다. 민자당 정책을 옹호하고 나를 좀 깎아내리기 위해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씨는 사실 부지런하고 판단력이 좀 빨랐다. 그런 점이 인정되어 승진도 빨랐다. 사실 사람은 그렇다. 기용하는 사람이 그 사람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으면 재능이란 것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서울대학 출신의 많은 선배들을 물리치고 그 분을 기용했기 때문에 많이 클 수 있었다.

 

“이명박씨는 내가 그 분을 기용했기 때문에 많이 클 수 있었다”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가 그 분을 너무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정말 작가의 장난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이명박씨가 소양강 댐이다 뭐다 해서 다 한 것처럼 나오고 박대통령앞에 가서 으르렁으르렁거린 걸로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 소양강 댐 만들 때 이명박씨는 간부도 아니었고 참여도 하지 않았다. 설계에서부터 설계 시공에 이르기까지 전부 서울공대 패거리들이 했다. 모두 이씨의 선배들이다.

  현대건설이 65년에 태국 파타니 나리왓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이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칼을 든 폭도들이  금고를 열라고 요구했으나 이명박씨 혼자 끝까지 금고를 지킨 무용담이 있는데 이씨는 사실 금고를 지킨 많은 사람 중의 한명일 뿐이었다. 현대건설은 생긴 지가 40년이 넘는다. 그런데 현대건설 초반기에 맡았던 공사에 그분이 주역을 담당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분이 사장 이상의 위치에 있었던 것은 한 10년쯤이나 될까말까이다.

  물론 이명박씨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지만 다라마상으로는 조선소 건설이나 자동차 등등 다 그 분이 한 것처럼 나오니까 사내에 보이지 않는 위화감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 분이 여러가지로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다. 나는 밑의 직원이 매스컴에 나오면 그걸 좋게 보지만 같은 동료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 때 저 밑에서 서류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다 한 걸로 나오고, 그건 좋은데 중동건설도 다 자기가 한 것처럼 나오니, 그 때 이명박씨는 참가할 자격도 못 됐다. 서울대 선배들이 다 한 건데 서로 말은 못해도 회사 내에서 분위기가 아주 어색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해서 그 분이 떠날 분위기를 자초한 거다.

   내가 작년 10월쯤 동생들에게 창당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낸 후, 12월 초쯤에 이명박씨에게도 의논했다. 그랬더니 그 분은 “정당을 만들지 말고 무소속 후보들을 지원해서 당선시킨 다음에 당선된 사람들을 모아 당을 만드는 것이 현대그룹에 더 탈이 없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 분의 말은 진심으로 현대를 위한 말이었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이 처음부터 소극적인 자세로 나가면 그 효과가 3분의 1밖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왕 시작하려면 바람을 맞으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되는 거지, 3분의 1효과만 거두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결심했다.

  이명박씨가 현대를 그만 둔 것은 나하고 뭐 정책이 틀리거나 의견이 대립되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현대그룹은 매년 인사를 1월에 한다. 그래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혼자 구상을 해서 정월 초사흗날 회사에 나와서 이명박씨 등 현대 사장단들을 다 불러 놓고 단안을 내렸다.

  “자, 정치할 사람은 정치로 떠나자. 매스컴에 누가 뭘하고 또 누구는 뭘하고 말 나오기 시작하면 정치와 경제가 혼동돼서 아무 것도 안된다. 떠나자. 현대를 떠나자. 이명박씨도 서울시장에 출마한다, 서울 강남구에 출마한다 말이 많은데 떠나자. 작년 12월말로 모두 해직이니까 떠나자.”

  사실 나는 이명박씨 본인 의사는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李來炘 현대건설 사장에게도 “종로에 출마한다고 말이 나왔으니 떠나자”고 말했다. 내가 떠나자는 말을 한 바로 그날 모두 인사발령이 내려졌다. 사실 이명박씨는 조금 놀랐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다 자기하고 의논했는데, 그래서 조금 섭섭한 생각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건 누구하고 상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가 이명박씨에게 당을 만든다는 이야길 처음 꺼냈을 때 “연말까지 답을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때까지 답이 없었다. 뜻이 없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그 분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다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도 현대에 있을 때 현대가 중요한 거지, 현대를 떠나면 자기네 형과의 관계가 더 중요할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아무 말 안했다.

  내 동생인 鄭世永 그룹회장이 고대를 나왔는데, 고대 출신들은 형제보다도 더 친하게 지낸다. 이명박씨하고 같은 고대 출신이니까 정회장이 나보고 “이명박씨가 현대를 떠났어도 잘 대해 주십시오. 많은 것을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하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명박씨는 총명한 사람인데, 자기가 뭐 없는 말 하고 다닐 사람도 아닐 거다. 그 분은 민자당으로 갔고 나는 통일국민당의 책임자니까 개성이 다른 점은 서로 존중하고 지내면 된다.

 

“이주일씨는 등록마감 전날 안기부원을 따돌리고 도망쳐 왔다”

  코미디언 李朱一씨는 이제 국회의원 鄭周逸씨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 국민당이 당선자 대회를 열던 지난 3월28일이었다. 다른 당선자들은 시간에 맞춰 모두 자리에 나와 있는데 유독 그만 20분이 넘어서 도착했다. 내가 왜 늦었느냐고 물었더니 차가 많이 밀린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이제부터의 삶은 그 이전 연예인으로서의 생활과는 다른 겁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에 이 점을 조심하기 바랍니다.“

  사실 정주일씨의 갑작스러운 출마는 그 과정이 아직까지 한번도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에 궁금한 부분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그 분이 홍콩에 다녀와서 “앞으로는 연예계 일에만 평생 종사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더 의혹스런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주일씨가 출마하기까지의 과정을 처음으로 밝히자면 이렇다.

  정주일씨는 구리시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 분은 나에게 “옛날 제가 구리시에 살 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어린 시절에도 할 수 있는 거는 다 했습니다. 당이 성립돼서 국회의원 후보자를 공천하게 되면 바로 저를 구리시에 공천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 분이 창당 발기인에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후 鄭夢準 의원이 지구당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데 정주일씨가 찬조연사로 나갔다. 그때부터 그 분과 연락이 딱 두절되고 행방불명이 됐다. 아무리 연락을 해도 “지방에 내려가 없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 때 이미 안기부 직원이 붙어 있었던 거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난데없이  홍콩에 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내 언론이 일제히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정주일씨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고 하니 외국에 데려간 것’이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다시 홍콩에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씨가 홍콩에서 도착하는 날 내가 공항에 나갔는데 카메라맨으로 가장한 기관원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내 눈에 대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바람에 눈을 뜰 수 없어 정씨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 정씨를 빼내가 SBS에 데려가서 우리도 쫓아 보도국장실로 갔더니 방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였다. 그 방송이 뭐냐. “나는 국회의원 출마할 의사가 없다. 일생 연예인으로 살겠다”는 것을 발표하는 거였다. “강제로 나간 게 아니다. 내 뜻으로 나갔다가 내 뜻으로 돌아왔다”는 걸 발표시킨 거였다. 그 후로 정씨는 또 행방불명이 됐다. 그래서 그날 밤 우리는 거기서 밤을 샜다. 이주일씨 내놓으라고.

  그 다음날도 농성을 계속 하려고 했는데 정씨의 절친한 친구라는 웬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바로 그날 정씨가 갔다고 하는 북아현동 어디 산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이주일은 절대 안전하니까 찾기 위해서 나서지 마십시오. 이주일은 절대 안전합니다”라는 거였다. 나는 그 때 정씨의 안전을 위해서 그 분을 찾았던 거였다. 정씨가 선거에 나가고 안나가고는 나중 문제였다. 그래서 일단 고맙다고 하고 그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동안 정씨는 계속해서 안기부가 싸고 돌아다닌 거였다. 그런데 등록을 마감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정씨가 허겁지겁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안기부원 셋이 자기를 감시하는데 그들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 자기가 도망쳤다는 거였다. 정씨는 “오늘밤 여기서 재워주시고 내일 등록해 주십시오. 입후보 안 하면 또 (외국에) 나갈 겁니다”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가 공천장을 주고 서류를 다 만들어 내 차를 태워 선관위에 가서 등록시켰다. 경호원도 한 열댓명 붙였다. 다시 못 붙들어가게. 그래서 선거 잘 치르고 당선됐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등록하지 않을 줄 알았다는데, 도대체 매스컴이 척보면 알지 그렇게 센스가 없는가. 하여간 정씨가 홍콩 나갔을 때 매스컴이 일제히 자기 의사가 아니라고 보도해준 덕에 그것도 된 거다. 그럴 땐 참 센스가 있었는데.

  사실 이제야 말하지만 정씨는 출마 등록을 하기 전에 한번 나를 찾아왔던 적이 있다. 정씨는 참 수단이 좋은 사람이다. 기관에게는 “절대로 출마하지 않는다는 걸 정대표에게 가서 말하고, 정대표가 나를 찾지도 않게 만들고 오겠다”고 한 다음에 날 찾아온 거였다. 그래서 성북동에 있는 영빈관에서 밥을 같이 먹었는데 정씨가 “나는 절대로 출마할 의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십시오”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거였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이 정말 걸작이었다. 누가 들을세라 정씨는 내 귀에다 대고 몰래 “구리시는 아무도 공천하지 말고 남겨두십시요”라고 말하는 거였다.

  정주일씨는 참 수단이 대단하다. 안기부 사람들에게는 “거기 가서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왔다”고 안심시킨 거다. 나에게는 “절대로 구리시 공천은 딴 사람 하지 마십쇼. 꼭 내가 나갑니다”라고 말해놓고 그 사람들을 안심시켜 놓은 다음 등록 전날 나에게 다시 도망온 거다.

  나도 그렇고 정주일씨도 그렇고 초선의원이니 앞으로 다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을 거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지도할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국민당 의원들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정치에 큰 획을 긋게 만들 것이다. 정주일씨는 국회 상임위 중에서 내무위를 택하겠다고 말한다. 선거를 치르다 보니 공무원들에게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이 경찰인지 안기부원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상임위 중에서 경과위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무위는 자금 취급을 하는 건데, 돈이라는 건 부수적인 거지 경제의 근본이 아니다. 나는 경제를 잘 할 수 있으니까 상임위도 경과위에 들어갈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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