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전대협’ 변신 꾀한다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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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출범, 과격 정치투쟁 일변도 탈피…‘대선 전술’ 놓고 갈등

  지난 8일부터 3일 동안 인천 인하대에서는 제6기 전대협 총회가 열렸다. 전대협 총회는 해마다 이맘 때면 한번씩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는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학생운동의 대응방향이 결정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인하대에는 전국 1백32개 대학 총학생회장들로 구성된 전대협 대의원과 이들을 호위하는 사수대 2천여명이 모여 사실상 전국의 핵심 학생운동 세력은 다 모인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부착된 대자보와 현수막 내용은 요즘 학생운동권의 모든 고민과 주장이 집결된 느낌이었다. “민주정부 수립하고 조국통일 안아오자” “민중 독자 대통령후보 추대해자” 등과 같은 정치적 구호에서부터 “보은이와 진관이에게 백만학도의 사랑을” “30분 투쟁 더하기운동으로 전대협을 강화하자” 등 사회문제와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익살스런 구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었다.

  또 최근 들어 전대협 행사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관심이 부쩍 떨어진 것을 의식한 탓인지 행사장 분위기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총회장 곳곳에 수십여개의 노점이 설치되어 행인의 발길을 끄는가 하면 사수대원들을 중심으로 장기자랑 등 각종 오락행사를 벌여 얼핏  보기에는 인하대 축제기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대선 승리·전총련 건설 기초 마련이 목표

  총회 행사는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올해 학생운동 방향을 둘러싼 마라톤 토론과 사수대원들의 집회 분위기 돋우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진입에 대비해 사수대원들은 각목으로 무장했으나 인천시경측이 행사를 제지하지 않음으로써 다소 맥빠진 듯했다.

  반면 인하대 대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3일간 계속된 총회는 전대협 총노선을 둘러싼 열띤 논쟁의 자리였다. 전대협측은 그동안 학생운동이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성을 닮아간다고 비판해온 언론을 의식해서인지 이례적으로 일반 기자의 총회장 출입을 허용했다.

  총노선 발표 시간에 전대협 중앙위원회는 올해 학생운동 방향으로 “대중노선에 입각한 민주정부 수립운동”을 내놓았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당·재야단체 등과 연대해 ‘민주연립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후보단일화에 적극 노력함과 동시에 그동안 약화된 전대협의 조직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일반 학생들의 일상적인 요구까지 수렴할 수 있는 전총련 건설의 기초를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대협 중앙위의 이런 노선에 대해 즉각 이견서가 나왔다. 서총련 북부지구 의장인 허 영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전대협 주류측의 노선에 반발하는 이유는 대강 이러했다.

  “전대협은 1백만 학도들의 선봉대로만 기능할 것이 아니라 전체 변혁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동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재야는 선거연합을 서둘러야 하고 그 방안은 대통령선거에서의 민중후보 추대이다.”

  두 의견을 놓고 5시간 동안 마라톤 토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토론은 각각의 입장을 강변하는 수준에만 머물렀을 뿐 의견일치를 보기 위한 양보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양측 모두 자신이 주장하는 대통령선거 전술의 논거로 14대총선 결과를 끌어들였는데 큰 시각차를 드러냈다. 전대협 주류측은 “반민자당 운동의 승리지만 국민은 범민주진영에게도 단결을 요구하는 심판을 내렸다”고 평가한 반면, 민중후보를 주장한 쪽에서는 “민자당은 패배했으나 반동진영은 승리했다.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협하는 14대총선 결과의 큰 책임은 민중후보를 밀지 않은 운동진영 내부의 ‘민주당 외사랑’에 있다”고까지 평했다.

  결국 9일 밤 9시가 지나도록 의견 접근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태재준 전대협 의장은 표결을 선포했다. 표결 결과 전대협 중앙위원의견 찬성 89표, 이견서 찬성 18표, 기권6표로 올해 학생운동 총노선은 전대협 중앙위원회안으로 결정되었다.

 

4~6월 ‘반민자당 시위’에 총력

  전대협 지도부는 국민이 학생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도 비교적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나친 좌경화로 기울 경우 탄압의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는 점을 의식해 특별히 좌경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투쟁방법을 둘러싼 ‘비폭력노선’의 공감대가 넓혀진 것도 그 일환이다. 태재준 의장은 “앞으로 전대협은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틀 안에서 다양한 투쟁방법을 개발할 것”이라며 “지난 총선에서 화염병 투척과 같은 상투적인 투쟁보다는 부재자투표 참가하기, 유세장에서 반대후보 연설 때 등돌리기 등을 펼친 것도 그중 하나”라고 밝혔다.

  전대협은 대통령후보 전술을 둘러싼 탁상공론식 내부분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4~6월에는 ‘반민자당 시위’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거기에 국민이 얼마나 호응하느냐에 따라 범민주단일후보든 민중후보든 판가름이 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출범 여섯 돌을 맞는 90년대 학생운동의 산실 전대협은 변화하는 국내 정세에 적응하는 문제로 갈등과 진통을 겪고 있다. 그들이 그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앞으로 학생운동 실천과정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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