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부정 발각 “이것은 서곡”
  • 김당 기자 ()
  • 승인 199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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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사건에선 “아마추어만 걸렸다”…제도개선에 예술인 ‘양심회복’ 밑받침돼야
 “한꺼번에 왕창 살림이 거덜나려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천천히 거덜나려면 딸자식을 음악대학 보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 사건이 터지고 나서 찾은 서울시내 한 예능계고등학교의 교사는 이렇게 꼬집어 밝혔다. 이를테면 쥐뿔도 없는 사람이 금배지 한번 달아보려고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거나, 딸자식을 억지로 남들 다 한다는 고액 레슨시켜가며 음악대학에 보내려고 설치다가는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음대입시 뒷바라지의 경우 실패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요행히 성공한다 하더라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에는 한이 없다.  이른바 걸프전쟁 후속타로 ‘터지고 있는’ 국회의원 뇌물성 해외여행 사건과 예체능계대학 입시부정 사건은 몇 가지 닮고도 다른 점으로 관심을 끈다. 우선 그 첫째 관심은 관행과 공공연한 비밀로 간주되던 것이 뒤늦게 발동이 걸린 검찰의 ‘의지’로 밝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달 게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두 사건은 또한 시들해진 걸프사태로 갈증이 난 언론매체와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뉴스’가 되었다.

음악인들 사이의 진흙탕 싸움
 서울대 입시부정을 수사한 서울지검 특수1부(이명재 부장검사)에서는 사건 발표 초기에 “지난해 연말에 입수된 제보에 의해 수사했다”고 동기를 밝혔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앞선 1월16일 건국대 음악교육과 입시부정사건으로 구속된 음대 시간강사 손형원(36)씨의 제보에 의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손씨는 당시 건국대 음악교육과 안용기 교수(60)에게 2천만원을 전해주고 오보에를 전공한 황모씨의 아들을 합격시킨 혐의로 안씨와 함께 구속되었다. 한편 건국대 입시부정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도록 진정서를 낸 사람은 이번 서울대 음대 실기시험에 심사위원으로 참여, 부정입학에 개입한 혐의로 수배중인 한양대 음대 전임강사 박중수(48)씨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검찰은 박씨가 자신의 딸이 건국대 음악교육과 오보에 부문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자 앙심을 품고 1월초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안 교수의 비리사실을 진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 담당검사는 “합격자 발표 전에 ‘서울음대 목관전공 응시자 중 아무개가 합격하고 아무개가 떨어질 것인데 이는 아무개와 아무개가 짜고 한 짓’이라고 제보를 해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발표가 난 뒤에 보니 제보내용이 너무 정확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손씨가 자신이 구속된 데 대한 보복으로 박씨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을 폭로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결국 검찰은 음악인들 사이의 낯뜨거운 진흙탕 싸움에서 어부지리로 개가를 올린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건에서 검찰이 세운 공의 빛이 바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과연 검찰수사가 앞으로 얼마나 공정하고 형평에 맞게 확대, 집행되느냐에 있다.

  두 번째 관심거리인 두 사건의 닮고도 다른 점은 당사자들이 “억울하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수사는 한쪽은 축소될 조짐이고 다른 한쪽은 확대될 조짐이다. 

 서울대 입시부정 사건이 터지자마자 언론과 그 바닥 사정을 환히 꿰는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거나 “프로는 다 빠지고 아마추어만 걸려들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구속된 학부모 김정숙(42)씨가 거간을 맡은 목원대 조교수 최용호(47)씨에게 전달했다는 현금 8천5백만원은 대개 온라인으로 입금하는 관례에 비추어 서투른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 규모 있는 프로는 아예 실기 채점자격을 가진 심사위원 대상자 - 그래봤자 일부 악기의 경우 대상자가 몇 안되므로 - 전원에게 입시 전 ‘낯 익히기’ 순례레슨을 통해 공을 들여놓으므로 굳이 새벽에 전화통을 붙들고 지망대학 심사위원 배정자명단을 알아내느라 잠을 설칠 필요도 없이 발뻗고 잔다는 것이다. 

  다행히 검찰에서는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이 발표되자 연일 걸려오는 격려성 제보에 힘입은 탓인지 다른 예능부문, 다른 대학, 예능계 중고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더구나 대학교수 출신인 노재봉 국무총리가 1월24일 국무회의에서 “음대 입시부정은 액수가 굉장히 많고 체육·무용계쪽에도 많은 부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지목해 밝히면서 “이런 부정을 방지할 수 있는 혁명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만큼 총리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검찰에서 이를 모른 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대학에 붙거나 떨어지는 양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예체능계 교사들은 “이번 기회에 환부를 도려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칼을 댈수록 한때 유행했던 이른바 ‘민나 도로보데스’, 즉 ‘모두가 도둑놈’으로 드러날 판인데 과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예능계 교사들이 말하는, 이른바 특별취재반이 이 잡듯이 훑은 신문에 나지 않은 특별한 사례만 밝히면 이렇다.

  “ㅅ대 미대 디자인과의 경우, 그 대학 심사위원으로 간 교수에 따르면 그 대학당국에서 교직원 자녀라면서 부탁을 넣었는데 알고 보니 고위층 자녀였다.” 

  “ㅅ대 미대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석고데생 실기문제가 유출된 것이 확실하다. 어느 여고에서는 미리 문제(석고데생 대상)를 다 알고서 시험장에 갔다.”  “실기시험도 보지 않고 들어간 인문계 학생도 있더라. 일반계 입시에서 떨어진 학생의 학부모인데 그 대학교직원이 전화로 접근, 일반계는 티오가 없고 예능계 중 한 군데를 찍으라고 해서 다른 재주는 없고 대학은 보내야 하겠고 해서 할 수 없이 무용과를 찍어 입학시켰다. 결국 예체능 계의 경우, 정원보다 모자라게 학생을 선발해 결원 티오를 가지고 대학에서 장난을 친 것이다.”

“실기시험 안보고 들어간 학생도 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1월24일 치러진 후기대 실기고사부터 당장 적용된 교육부의 ‘비교육적 땜질’과 국무총리의 ‘혁명적 개선 지시’에도 불구하고 음악계 일각에서는 더 이상의 ‘혁명적 개선책’은 없다고 말한다.

  노동은 교수(목원대·음악학) 같은 이는 오히려 “시험장에서 교수와 학생을 가로막는 ‘불신의 장막’과 새로 생긴 교수와 교수간의 ‘불신의 칸막이’를 없애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주장한다. 노교수는 또 “그러려면 연구를 통한 제도 보완말고도 음악인들의 자성운동을 통한 양심회복이 밑받침되어야 하되 이것들조차도 대학자율에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라는 비유에서 드러나듯 보호받아야 할 예술이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격차를 도리어 증폭시키고 천민 자본주의의 도구로 이용되는 사회구조와 분리해서 대학만 고결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두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국민의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지대한 관심 탓인지 검찰뿐 아니라 언론사에도 많은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그중 중학생 딸을 둔 한 회사원의 소박한 소망은 이렇다. “어디 이게 학생이 실력으로 치르는 시험입니까, 학부모가 재력으로 치르는 대리시험이지.” 남들 다하는 레슨시켜달라고 보채는 딸아이와 은근히 조르는 아내의 등쌀에 주눅이 들었을 이 중산층 가장은 내친 김에 말끔히 파헤쳐 말발 좀 세우자고 하소연했다. 그 말발이란 이런 것이다.

  “아서라 얘야, 이래도 음악대학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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