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 박권상 편집고문(런던)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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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은 더 계속된다”

  지난 10일 오후 4시(현지시간) 나는 런던의 고급주택가인 체샴플레이스 35번지에 있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 사무실을 찾아 ‘鐵의 女人’과 1시간 면담할 기회를 가졌다. 대처여사는 선거날인 4월9일 한달간에 걸친 미국방문에서 돌아왔는데 1만6천마일, 40회의 순회강연에 지쳤는지 심한 독감에 걸려 있었다. 그의 보좌관에 의하면 선거 다음날이라 미국의 3대 텔레비전 방송사를 비롯한 67개 언론기관으로부터 인터뷰 신청이 쇄도했으나, 모두 거절하고 오래 전에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신과의 인터뷰에 응한다는 것이었다.

  대처 여사는 재작년 총리에서 물러났고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으나,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명성과 발언권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이 이긴 것도 포클랜드전쟁과 노동조합의 횡포에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영국 사람의 가슴속에 자신감을 불러일으킨 ‘대처리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가까운 시일 안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표시하였으며, 아마도 금년 가을에 그의 한국방문이 실현될 것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이 의외로 성공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우리당이 집권하여 영국을 쇠퇴의 기간으로부터 끌어내고 기업의 원칙 속에 끌어들였으며 노조에 매우 불공평하게 되어 있던 법을 개정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당은 대중의 소비를 통제하지 않으면 안되고, 세금을 낮추며 국민들에게 동기를 주이야 하고 재산의 사적 소유를 늘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당은 영국적 특성에 맞는 최상의 삶의 질을 제공하는, 모두에게 잘 맞는 정책을 폈습니다. 영국은 1천년 동안 점령당하거나 침략당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 관습에 따른 행동양식을 발전시켜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오래된 의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산업혁명을 겪었습니다. 노동당 아래에서는 나라의 모든 것이 쇠퇴했는데 우리 당이 그것을 건져냈고, 외교정책·방위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해왔으며, 우리당에 의지해도 될 만하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메이저 총리를 후계자로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가 어떤 총리가 되리라고 보십니까?
글쎄요, 그는 내가 그에게 넘겨준 모든 주요한 원칙들을 끝까지 추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원칙들이란 정부는 국민에 봉사해야지 다른 방법으로 침해해서는 안되는 경제의 자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원칙, 우리가 도전받을 때마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세웠던 원칙 따위를 말합니다.

  ‘대처리즘’이란 단어는 지난 10여년 동안 그 의미와 관련성이 반드시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도 포함해서 어디서나 일반적인 정치어휘의 하나로 통용되게 됐습니다. 대처리즘의 핵심을 무엇이라고 표현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방향, 힘(모멘텀) 그리고 견고함의 감각입니다. 우리는 그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정책이고, 우리는 그것에 매달릴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수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신의 ‘혁명’을 지켜보았습니다. 산업 선두주자로서의 영국의 오랜 쇠퇴를 막거나 되돌리려는 당신의 노력을 세계를 일부 언론이 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한 평가를 옳다고 보십니까. 또한 그 혁명이 성공적이었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처리즘으로 영국 산업의 쇠퇴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재정 서비스와 통상은 매우 좋은 상태에 있습니다. 연구면에서도 우리는 몇몇 뛰어난 과학자를 거느리고 있지요. 우리 영국인들은 신뢰할 만한 사람들입니다. 영국이 어떤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하면 영국은 그것을 할 것입니다.

  총리로 계셨을 때 거둔 가장 큰 승리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한가지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국제법을 지지해 포클랜드로 갔습니다. 침략을 통해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포클랜드 사람은 영국인입니다. 그들은 영국인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고,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보살핀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돼, 당신은 이 문제를 깔끔히 해결할 수 없을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결정적이었던 것은 석탄노조의 파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석탄노조의 파업은 테드 히스 정부를 무너지게 했지요. 노동당은 늘 그들에게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싸웠습니다. 1내년이 꼬박 걸린 투쟁 끝에 우리는 이겼습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한 자질 때문이었습니다. 파업을 원하지 않는 광부는 아주 많았습니다. 그들은 그보다는 좀더 나은 날을 위해 일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은 내 곁에 머물렀습니다. 영국인의 기질 중에는 뛰어난 이런 자질이 있었고, 이 자질은 나를 결코 좌절하지 않게 했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가장 큰 패배는 무엇이었습니까?
일종의 히스테리가 있었기 때문에 브리티시 레이랜드를 민영화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미국의 어떤 기업에도 팔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많은 히스테리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그것을 민영화했지요.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급수시설도 민영화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참 어려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당신도 아다시피 민영화하면 사업 경영을 하기에 훨씬 유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에 투입한 돈을 가지고 성공여부를 평가하지 않고 나온 결과가 얼마나 가치있는가를 평가합니다.

  통합된 유럽이나 유렵연방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리는 통합 유럽에 대해 혐오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라는 말은 한번도 정의된 적이 없습니다. 그 영토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서안에서 시작되어 태평양으로 확장되고 있지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항상 모스크바 페테르스부르크 바르샤바 프라하 등을 모두 유럽국가의 도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이 단지 12개국뿐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지요. 동쪽과 서쪽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아메리카나 러시아와는 전혀 다릅니다. 아무도 캐나다와 미국·멕시코가 연방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요. 우리는 유엔에서 서로 협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요. 걸프전의 경우 우리는 유엔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했지만, 걸프전에서 승리한 것은 유엔이 아니라 개별국가들이었습니다. 거기서 외교정책의 도덕적 기초에 대한 믿음이 그 독재자를 눌러버린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완전 독립국가로서 상호협조하는 것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1215년 마그나카르타의 자유, 구 영연방법정으로 소환되기 전에는 누구도 구금당하지 않도록 규정한 인신보호영장 즉 하비에스 코퍼스, 의회가 우세하게 된 1689년의 권리장전 등의 가치를 신뢰합니다. 다른 유럽국가가 히틀러의 발길 아래에서 파괴될 때 역으로 우리는 싸웠습니다. 그보다 훨씬 중대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결코 영국이 파시스트적 독재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공산독재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두 가지는 모두 전제정치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영국의 덕성은 매우 가치있는 것이지요. 나는 글로세스터부대 군인을 보러 한국에 갔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들은 유엔군으로 거기서 싸웠지요. 그러므로 당신은 영국을 믿어도 괜찮습니다.

  아시아의 문제로 눈을 돌려봅시다. 한반도의 상황, 특히 최후의 스탈린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들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메시지를 확보할 통로가 없을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곳 라디오방송밖에 들을 수 없으며 그것이 그들이 가진 유일한 통로라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와 같은 체제를 결코 신뢰하지 못합니다. 설사 당신들이 북한사람들에게 동의하는 무엇이 있다고 하더라도 철저히 확인해보아야만 합니다. 철저히. 사담 후세인의 경우를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국제감독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들의 핵제조능력과 관련하여 걱정하는 점입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그러한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한반도 통일의 기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반도에 전혀 다른 두 체제가 존재하는 한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한쪽은 자유 신장·기업 발전·생활수준 향상·개인의 존엄과 번영 등에 기초하고 있으나 다른 한쪽의 개인에 대한 완전한 독재에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사람들에게 충고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당신은 한국과 서방국가들이 좀더 유연한 모습을 갖고 북한을 원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언론의 자유·신앙의 자유·거주이전의 자유·다른 방송을 들을 자유·다른 책과 기사를 읽을 자유 등 인권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한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련과 씨름하면서 취했던 자세입니다. 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느냐, 왜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느냐, 너희는 왜 이동할 자유를 주지 않느냐, 사람들에게 왜 외국방송을 듣거나 자기 나라를 떠날 자유를 주지 않느냐 등을 다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권위를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체제가 북한사람들이 살고 있는 체제라는 것도 현실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북한의 행위가 문명화된 국제사회에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여 그와 같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조만간에 한국을 방문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방한 계획은 없습니다. 있다면 언제가 될는지요?
한국에 정말 가고 싶습니다. 1986년 일본과 경제정상회담을 한 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요. 정말 오랜만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아주 잠시였습니다. 이제는 강의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있을 것이고, 언제가  될 것입니까?
아직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올해 언제가 될 것인지요?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지역 여러 나라에서도 초청을 해왔기 때문에 다소 조정을 해야 할 듯합니다.

  어떤 사람 혹은 어느 기관에서 초청을 했습니까?
글쎄요, 자세한 일정을 다시 한번 알아봐야겠군요. 굳건한 외교적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온 데 대해 명예학위나 트로피 기념상 등을 수여하겠다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동유럽 공산정권의 붕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거기에 상당한 기여를 했지요. 그러나 동유럽의 장래는 대단히 불투명합니다. 동유럽 혁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그렇지요. 專制政을 타도하는 것은 언제든 가치있는 일이지요. 특히 국민이 뜻을 함께 한다면 어떤 쿠데타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곳 국민은 스스로 자유를 원했던 것입니다. 70년간의 공산통치 아래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한 국민이 해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요. 동유럽은 지독한 전제정치체제였습니다. 국민은 모든 땅과 소유물을 빼앗기고 직업도 잃었으며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기업을 세우고 완전히 새로운 법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새로이 독자적이고 적절한 법률을 마련하고 법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낮은 세금과 기업을 키울 법체계를 필요로 했습니다. 뭔가를 세우는 것은 무너뜨리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지요.

  서방측은 닉슨의 주장처럼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까요?
나는 전적으로 닉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사실 나 자신도 그런 주장을 해왔지요. 금세기초 우리는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두개의 전제정의 발흥을 목도했습니다. 파시즘은 독일과 일본에서 각각 일어났지요. 이를 타도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생명과 자산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몸을 돌려 독일과 일본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도와주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피를 흘린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공산주의 붕괴에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에 대해 생명과 재산을 건 전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서유럽식 기업과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더욱 지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르바초프와 당신은 기존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어떤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역사는 기본적으로 자유와 의회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당이 국유화와 통제로 자유를 축소시키기는 했지만 앞의 원칙에 비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함에 따라 아시아 각국은 경제대국 일본의 점증하는 군사적 위협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본경제는 놀랄만큼 강대합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한 해 경제성장 규모는 한국의 전체 경제 규모만큼이나 됩니다. 며칠 전 중국 강택민 총서기는 대놓고 “우리는 일본의 군사적 위협을 우려한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일본이 실제로 군사력을 키우지는 않았지요. 또 그래서도 안됩니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대답합니다. 일본은 세계가 까무러치게 놀랄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일본인들도 스스로의 군사력 팽창을 우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이런 징후를 보인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질서 하에서 일본과 중국의 적절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이 거대한 군수산업을 건설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정말 경각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반면에 당신도 아시다시피 중국의 등소평은 가능한 한 경제개혁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고 노 심초사하고 있고 또 꽤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중국 내의 홍콩과 같은 새로운 경제특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업의 일부를 사유화하고 있고 외국인도 땅과 사유재산과 기업을 살 수 있습니다. 인민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데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경제개혁운동이 꽤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중국인들은 세계 어디에 있건 간에 선천적인 장사꾼이었다는 사실도 감안할 만합니다. 이 사실은 대만이나 홍콩·싱가포르는 물론 말레이시아의 많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건 확인됩니다. 그들은 타고난 장사꾼이어서 나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공산주의를 없애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정치적 개혁도 원하고 있습니다.

  그점에 대해 정말 낙관하십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태평양지역에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력균형을 보게 될 겁니다. 중국에 실질적으로 부유하고 강대한 국가가 형성될 때 일본도 번영할 것이며 한국도 그럴 것이고, 인도네시아라는 거대한 국가도 큰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이른바 ‘태평양시대의 개막’이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그것은 세계의 중심축이 수세기 후에 유럽에서부터 동쪽, 태평양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세계의 중심축이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국이 전세계에 걸쳐 가장 강대한 자유국가이며, 우리는 미국이 세계경찰역을 받아들인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외교정책은 도덕을 기준으로 행해집니다. 우리는 도덕적 명분 때문에 걸프전에 달려갔습니다. 온세계에 노예상태가 강요된다면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정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외에 미국도 이런 역할로부터 얻는 것은 없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당신이 국제사회에 계속 공헌해나가기를 원합니다.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상원의석을 받아들이실 깁니까? 
 내가 계속해서 말할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 그런 제안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발언하게 될 겁니다.

  지도자, 특히 한국처럼 권위주의적인 체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민주국가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믿는 기본적이고 철학적인 원칙을 결정해야 합니다. 자유는 도덕적인 자질입니다. 신은 자질과 능력을 가진 개개인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을 개발할 권리를 주셨읍니다. 법이 없으면 자유를 가질 수 없고,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없으면 자유를 가질 수 없으므로 언제나 그것을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행동의 근거가 될 원칙들을 정해야 하고 그러한 원칙들을 행동으로 옮길 방법에 관한 완전한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 때문에 이런 원칙과 프로그램을 중단해선 안됩니다. 경제병이라 할 만큼 경제적으로 곤란한 병자가 회복하는 데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견뎌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를 거쳐야 더 넓은 세계에서 더 큰 경제적 힘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어 당신들이 되고자 하는 그런 나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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