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의 꿈’ 깨지는가
  • 앙드레 퐁텐느 <르 몽드>지 고문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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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대륙이 대서양에서 우랄까지 뻗어 있다고 학교에서 배웠던 드골 장군은 그의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 같은 사정을 실현하는 데 두었다. 그는 이데올로기란 조만간 사라지게 돼 있으나 국가는 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드 골은 유럽이 둘로 갈라진 사실에 만족할 수 가 없었다. 미·소 두 나라는 유럽문제에서 손을 떼고 둘로 나뉘어진 유럽은 세계 문제에 다시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같은 지론은 드 골 장군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서양조약에 통햅돼 있던 군사령부에서 프랑스를 탈퇴시킨 후인 1966년 드 골이 소련을 방문했을 때 소련지도자들은 그를 시베리아의 보보시비르스크까지 안내했다. 인도의 캘커타와 같은 경도에 위치한 이 거대한 도시가 모스크바나 키예프만큼 눈으로 덮여 있고 또 슬라브적이라는 사실을 드 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드 골은‘유럽은 대서양에서 우랄까지’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유럽은 이미 우랄산맥 건너편까지 연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폴란드를 소련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드 골의 노력은 당시 소련의 원수 블리디슬라프 고물카의 ‘절대불가’로 저지됐다. 드 골이 적극 지원했던 차우셰스쿠의 ‘독자’정책은 그후 루마니아 국내에서 또 KGB와의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도 이제 사람들은 알게 됐다. 소련의 체코침공은 비록 당시 프랑스에서는 ‘단순히 지나는 사건’정도로 분석되었지만 살아 생전에 자기 정책을 실현코자 했던 프랑스 5공화국 창시자의 위대한 꿈에 조종을 울렸다.

 다음의 여러 사건들은 드 골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바르샤바조약은 산산조각이 났다. 소연방은 사라지고 그 잔해 위에 생겨난 독립국가연합은 심각한 모순과 갈등을 겪고 있어 지구상의 어떠한 기구도 그들을 중재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공산주의 멍에에서 벗어난 우크라이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소비에트헌법에 따라 연방을 결성할 수도 있는 여러 공화국과 자치지역에 대해 통치권조차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유고연방에서처럼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유고에서는 유엔의 평화유지군조차 공화국간의 휴전의 준수를 감독하는데 실패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와 헝가리 소수민족들은 형제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슬로바키아민족 대부분은 체코인들과 결별하고 싶어한다.

 이같은 민족주의의 재등장은 서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통일된 독일은 다시 강대국이 됐다는 사실을 매일 조금씩 강도높게 보여주고 있다. 각국에서 극우세력은 점차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 심하다. 민족적 또는 종교적 소수집단에서 이같은 현상은 더 심하다. 벨기에의 플라망 극우주의자, 코르시카·스코틀랜드·카탈란의 분리주의자, 이탈리아 북부의 지역주의자, 이들의 목소리는 몇달 전부터 실시된 선거에서 눈에 띄게 커졌다.

 이같은 움직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차이는 있으나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다. 물론 모든 대륙이 경제 문제에서 예외는 아니지만 이같은 현상이 그대로 발전된다면 유럽은 점차 정글처럼 변할 것이다. 유럽 재편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분명해 보인다. 그 필요성이 신속하게 구체화될 것인가는 분명치 않다.

 얼마전에 체결된 마스트리히트조약으로 결정적인 일보는 내디뎠다. 이 조약은 EC가 단일 화폐와 은행을 갖고 공동의 외교 및 방위정책을 갖는 유럽연합으로 변화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함께 적극적으로 유럽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입지는 사회당이 선거에서 참패함으로써 약해졌다. 독일 총리는 통일에 대한 대가가 너무 크다는 여론 때문에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다.

 EC의 문을 두드리는 국가는 많다. 특히 경제회복이 어려운 옛 소연방의 위성국가들은 무엇보다 고립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당분간은 현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1975년 헬싱키협정에 따라 창설된 유럽 안보협력회의(CSCE)에 모두 가입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구가 ‘유럽적’이라는 명칭을 받을 만한지는 의문이다.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구실로 미국과 캐나다도 회원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태평양까지 뻗어 있는 러시아는 물론 옛 중앙아시아 소비에트공화국들까지도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기구는 유고 위기 때 수없이 보여준 바대로 아무런 힘이 없다. 현 동구 지도자들이 미국을 제외한  채 유럽 연합을 창설하자는 프랑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러시아도 가세해서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떠들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재정상태와 미국의 여론이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이 나라들에게 지극히 인색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이는 동안 동구인들은 미국을 자기네 자연스러운 보호자로 간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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