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시장, 철옹성 아니다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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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서’보다 실리를…감정싸움 美ㆍ日 무역마찰 거울삼아야



 ‘일본은 정말 닫힌 시장인가’ ‘일본의 무역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이런 물음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담은 ≪일본과의 무역(Trade with Japan)≫이란 책이 지난 3월 시카고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편집을 맡은 MIT의 폴 크루그만 교수(경제학)는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에 대한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지금까지 진지한 분석은 많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진 미ㆍ일 무역분쟁은 경제학자들의 치밀한 분석이 결여됐기 때문에 오해와 왜곡으로 얼룩진 측면이 없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일본의 무역장벽 때문에 미국의 무역 적자폭이 커지고 있고, 무역적자는 실업률의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들은 무역적자와 실업률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고용의 규모는 국내총생산과 직접적인 함수관계에 있다. 한편 무역수지는 그것이 적자이든 흑자이든 국내총생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프린스턴 대학의 앨런 블린더 교수는 최근 ≪비즈니스 위크≫에서 다음과 같은 통계를 들어 설명한다. 88년과 89년 사이에 미국의 실업률은 60년대 이래 최저인 평균 5.4%를 기록했다.(미국에서는 경제학 원론시간에 5~5.5%의 실업률은 사실상의 완전고용이라고 가르친다) 당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88년과 89년 두 해에 걸쳐 국내총생산의 2.3%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무역적자가 더 줄었다고 해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겠는가”라고 그는 반문한다.

 미ㆍ일의 무역마찰은 경제적인 이해와 분석 부족으로 불필요하게 증폭되어 왔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미국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수출총량 중 겨우 10% 정도가 일본으로 가는 물건이다. 미국에겐 유럽이나 캐나다가 일본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그럼에도 일본과의 무역마찰이 주요한 현안으로 등장했던 것은 “일본의 부상이 미국의 쇠퇴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라고 크루그만 교수는 지적한다.

 천연자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일본은 원료를 외국에서 전량 수입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으로선 무역흑자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동정론을 펴는 미국 학자들도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미국과의 단순 비교는 정당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수입은 일본의 경제규모에 비해서는 역시 너무 적다는 것이 미국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88년도에 일본의 수입은 국민총생산의 2%수준에 그쳤다. 같은 해 미국은 7%였고 유럽공동체는 14%였다. 하버드대학의 로버트 로렌스 교수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데다 유럽 국가들처럼 교역을 확대해갈 선진국이 이웃에 없는 일본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본의 수입은 역시 너무 적다는 입장이다. 로렌스 교수는 ≪일본과의 무역≫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 상품은 일본 시장에서 해외에서보다 더 높은 가격을 유통되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일본기업으로부터의 역수입이 매우 활발하다는 점 등을 들어 일본의 여러 가지 비관세 장벽이 관세적인 효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렌스 교수는 85~87년 엔화가 크게 절상되었을 때 일본의 수입도 크게 증가했다며 일본시장이 고립된 철옹성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크루그만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일본은 뭔가 다르다 △다르다는 것이 무역마찰을 더욱 고조시킨다 △일본체제의 독특성은 일본경제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일본의 고유한 경제체제는 그 나름의 방식대로 매우 효율적이다. 제2의 일본으로 한때 세계의 기대와 경계를 함께 받았던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의 경제체제도 변화하고 있다”는 그의 결론이다. 일본의 공업제품 수입은 증가하는 추세이며, 독특한 경제질서도 경제의 국제화와 더불어 보편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10년 전의 일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변화하는 지금의 일본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경고한다.

 미국과 일본의 비생산적인 무역마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한국과 일본의 경제현안도 감정보다는 경제적 이해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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