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 들꽃 찾아 하룻길
  • 려운연 차장ㆍ사진 김봉규 기자 ()
  • 승인 1992.05.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생화 탐사 여행 성황…영상에 담는 재미도



 “이게 바로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할미꽃입니다. 흑자색 꽃이 지고 나면 암술날개가 하얗게 부풀어 마치 흰 머리칼을 풀어헤친 모양 같다 해서 백두옹이라고도 하죠. 다시 며칠 지나면 이 날개들은 까만 씨앗을 하나씩 달고 바람에 멀리 날아가 볕 좋은 잔디밭에 떨어집니다…” 지난 4월19일 한국야생화연구소가 경기도 양평군 벽계구곡에서 마련한 봄철 야생화 탐사의 한 풍경이다. 무덤가에 서서 할미꽃 설명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귀한 보물’을 발견하기라도 한 양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할미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생김새를 아는 도시인들은 많지 않다.

 신록의 계절을 맞아 이처럼 대자연의 품에 들어가 무심코 스쳐버렸던 풀과 나무를 관찰하는 도시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제비꽃 민들레 꽃다지… 모두가 친숙한 이름들이지만 이런 들꽃은 언제부터인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들녘에 나가보면 풀과 꽃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그 가운데 정작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몇 안된다. 식물탐사란 오솔길 한 켠에 수줍게 피어 있는 작은 풀꽃을 일일이 확인하는 일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작업이다. 길을 걷다 이름 모를 식물을 발견하고 함께 간 사람들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낼 수도 있다.

 야생화 탐사는 한국야생화연구소가 87년부터 해마다 봄ㆍ가을 두차례씩 갖는 행사이다. 한국자생식물동호회도 달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참가한 식물 애호가는 70여명으로 식물학자는 물론 교사 작가 직장인 등 일반인들도 많이 참가했다. 이번 탐사는 물 좋고 산 좋은 곳을 알려진 북한강변 낮은 골짜기 2km 길을 따라 들꽃을 감상하는 하룻길이다. 특별히 벽계구곡을 고른 까닭은 서울에서 가깝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가 안다닌 오지로서 들꽃이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야생화연구소 김태정 소장에 따르면 ‘깊은 산골이 아니면서도 深山과 같은 곳’인데 봄에는 남쪽보다 북쪽 산등성이 응달에 들꽃이 활짝 핀다는 것이다. 양쪽 길섶에는 제비꽃이 널려 있다. “요즘 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팬지의 할아버지가 바로 제비꽃입니다. 제비꽃은 씨름꽃이라고도 부르는데 2~3포기가 껴안은 모습으로 피지요.”

 민들레와 함께 봄의 들꽃을 대표하는 제비꽃은 60가지 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계곡 주변 몇군데서 발견된 알록제비꽃과 남산제비꽃은 그중에서도 희귀한 종류란다. 또한 흰민들레꽃도 민들레는 노란색이라고만 아는 사람에게 흔치 않은 대단히 반가운 손님이다.

 70여명이 함께 계곡 주변에서 이름을 확인한 들꽃으로는 봄구슬봉이 꽃다지 산괴불주머니 솔붓꽃 솜나물 양지꽃 솜방망이 조팝나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나하나 이름을 대조하는 ‘작은 작업’을 통해 아마추어 식물학자들은 비할 수 없이 ‘큰 기쁨’을 얻는다. 탐사여행에 세번째 참가했다는 주부 윤세자씨(39·서울 강남구 도곡동)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하잘것없는 들꽃을 보면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장비는 카메라·식물도감이면 충분”

 식물관찰에 필요한 장비로는 카메라와 식물도감 정도. 물론 맨손으로 떠나도 지장은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들꽃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는 즐거움이야말로 당사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신비로운 체험이라며 카메라 휴대를 권한다. 때로 깨알 만한 꽃잎속에 펼쳐진 오묘한 조화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는 게 사진애호가들의 얘기다. 이러한 취미가 아예 전문영역으로 확대돼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야생화만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 꽃사진회ㆍ생태사진 작가협회 등이 생겨났다.

 야생식물 탐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희귀한 식물을 봐도 자연보호 차원에서 채집하지 않는다는 것. 식물 하나하나에 생명의 가치를 느끼며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호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저 카메라에 담아 나중에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밖에 야생식물 탐사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서울대 김태욱 교수는(임학과)는 이날 참가자들에게 “야생식물 탐사는 자연보호 차원을 한단계 넘어선 ‘자연 사랑’ 이다. 들꽃의 이름을 알면 그만큼 자연과 가까워지고, 자연을 이해하면 결국 사고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꽃의 아름다움만 카메라에 담지 말고 꽃의 존재가치를 통해 자기의 참모습을 찾아내라고 권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