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복 받은 자의 ‘스포츠 만만세’
  • 고지훈(서울대 강사 · 한국현대사) ()
  • 승인 2006.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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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났다. 사우나 들르기 귀찮으니 그냥 집에서 해결하자. 월드컵 공식후원 회사라기에 어제 백화점에서 ‘질레트’ 4중 면도기를 괜히 사봤다. ‘질레트 면도기’ 광고에 나오던 베컴의 면도 모습을 떠올린다. 비슷한 데라곤 없지만 45도 얼짱 각도로 거울을 보는 나는 어느덧 베컴과 동급. 잠시 나르시시즘에 빠져본다. 그 찰나 아차차, 야구!

술 마시느라 놓친 어제 프로 야구 재방송할 시간이다. ‘롯데’가 이겼다! 내 직업과 비슷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더 정이 가는 기업이다. 제2 롯데월드, 그게 100층이라던가? 좀 시끄러운 모양인데, 뭐 땅 가지고 있으니 언제 지어도 짓겠지. 땅은 거짓말 안 하는 법이다. ‘스카이라이프’ 접시로 느긋하게 ‘롯데 대 삼성’ 경기 재방송을 시청하며 무릎 위로는 ‘도시바’ 노트북을 켠 채 생방송으로 메이저 리그를 본다.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인터넷 중계로 대박을 본 ‘야후’에서는 메이저리그 경기도 해주기로 했단다. 마침 오늘은 LA 다저스 서재응 등판일. 기나긴 로딩 끝에 시작된 경기는 살얼음이다. 마운드에는 서재응이고 묘하게도 타석에는 이치로네. WBC의 그 환상과 달리 이치로는 메이저 MVP 출신. 안타 맞곤 동점을 허용한다. 아, 아침부터 ‘쪽바리’ 설치는 꼴이란. 점심때 부동산 김사장이랑 땅 보러 가기로 했으니 나가야 한다.

슈르릉~. 새로 뽑은 ‘현대차’ 시동 소리는 생각보다 괜찮다. ‘렉서스’를 살까 했는데, 아직 내 명의로 남아 있는 강남 아파트 두 채가 맘에 걸려 국산으로 뽑았다. ‘망할 노무’ 국세청놈들···. 하긴 예전처럼 국산이 싸구려 같지는 않다. 자랑스런 글로벌 브랜드 ‘횬다이’ 아닌가? 세계 최고 기업들과 함께 두 달 뒤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알리안츠 아레나’ 광고판에 내걸릴 ‘횬다이 마크’를 떠올리니 괜히 감정이 북받친다. 나 애국자 맞지?

운전대 옆에 놓인 큼지막한 ‘애니콜’ DMB 폰을 켠다. 프리미어 리그 첼시 경기 하이라이트가 송출 중이다. 젠장 맨체스터 스폰서를 왜 ‘LG’가 안한 거야? 첼시의 저 고급스런 파란색 유니폼에 ‘삼성모바일’이 떠억~허니 찍혀 있으니 얼마나 좋아? 크게 투자해야 크게 버는 법인데, 부동산이건 뭐건 말야. 첼시를 보니 런던 유학 시절이 생각나서 ‘맥도날드’에 들르기로 했다. 런던엔 왜 그리 ‘맥도날드’ 찾기가 힘든지. 여기에도 월드컵 공식 엠블럼이 나붙은 지 이미 오래다. 이 글로벌한 ‘맥도날드’랑 ‘횬다이’랑 동급이란 거 아냐? 족벌경영? 그깟 비자금? 개나 물어가라 그래. 짜식들이 경제 논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단 말야.


DMB 폰으로 프리미어 리그 보고…

햄버거와 음료 해서 겨우 2천5백원을 ‘마스터 카드’로 지급하는 나는 또 잠시 그 회사 광고 모델(펠레)처럼 황제가 된 기분이다. 청소년 월드컵 대회 명칭을 아예 ‘FIFA-코카콜라컵’으로 만든, 또 다른 독일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코카콜라’와 ‘맥도날드’를 아작거리며 느긋하게 운전하던 순간. 비교적 잘 뚫리던 길은 시청 앞 근처부터 막히기 시작. 웬일일고 했더니 “광장을 시민들로부터 빼앗은 서울시와 SKT 컨소시움은 각성하라~”라며 붉은악마 떼들이 대낮부터 지랄이다. 저런 백수 새퀴덜~ 기업 후원 없으면 축구고 나발이고 다 끝장인 줄 모르는 한심한 놈들. 경제를 너무 몰라. 정말 몰라.

땅 보러 간 이야기는 관두자. 영업상의 기밀이니까. 마음이 급하다. 오늘 저녁엔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이 있다. 49인치 초대형 ‘엑스캔버스’가 설치된 강남 카페에서 유학 동창들과 함께 보기로 했다. 우리 입에 착착 달라붙는 ‘버드와이저’를 홀짝이면서 말이다. 물론 ‘나이키’의 그 날렵한 로고가 그려 있는 국가대표 유니폼은 필수다. 강팀 프랑스와 평가전이라지만 뭐 별거 있겠어? ‘아디다스’의 그 ‘Impossible is nothing’이란 구호는 원래 우리 거였어.

“하면 된다!” 이거 몰라? 짜식들이 하면 되는 줄도 모르고 만날 불평들이나 하니 인생이 그 모양이지 말이야. 애들이 스포츠를 몰라도 너무 몰라.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단 말야. 인생을 정말 몰라요. 인생 뭐 별거 있냐고? 세계 최고의 이 IT 문화를 여유롭게 즐기며, 그걸 가능케 해준 분들께 감사하는 맘으로 말야, 즐겁고 유쾌하게 사는거 이게 21세기형 삶 아니겠어?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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