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당 둘로 갈라서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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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실험' 실패 '발전적 해체재창당' 제갈길



“이척박한 땅에 진보정당의 싹을 틔우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렇게 몰라줄 수 있습니까." 324총선의 뚜껑이 열린 다음날,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여의도 민중당 당사를 혼자 지키던 한 민중당원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항변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바로 그 무렵 민주당과 재야운동권 일각에서는 "민중당이 이번 총선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민주당 후보들이 최소한 8명 이상은 더 당선됐을 것이다. 민중당은 이제라도 분열의 과오를 뼈저리게 뉘우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보적 운동진영의 정치세력화라는 명분을 내건 민중당은 법적 정당 유지 조건에도 못미치는 1.5%의 지지율만을 획득해 패배의 쓰라림과 분열의 책임이라는 두 멍에를 함께 뒤집어쓴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 마침내 민중당은 그 간판을 내렸다. 지난 4월23일 민중당 이우재 상임 대표를 비롯해 장기표 정책위의장 이재오 사무총장 등 당 수뇌부는 민중당 해체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2년 반에 걸친 '정치실험'이 일단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하고, 준정치단체인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이하 민사협)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4일 민중당 내의 또 다른 세력은 "민중당이 이룬 성과를 잇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정당을 창당하기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는 요지의 성명서와 함께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이하 진정추) 결성을 단언했다.

진보정당이라는 한 배에 탔던 옛 민중당 세력이 좌초 이후 '민사협'과 '진정추'로 양분된 것은 총선을 파악하는 인식이 차이 때문이다. 즉 민중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는 민사협측은 총선 패인을 대중의 정치적서와 동떨어진 채 지나치게 소수 정파에 머무른 데서 찾고 있다. 따라서 무조건 민중당의 유지를 고집하기보다는 전체 민족민주온동 진영의 논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우재 전상임대표는 "재야로 다시 돌아가거나 재창당을 하거나 간에 우선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서 "민중당의 틀을 고집하는 것은 좀더 큰 틀에서 진보진영을 결집하는 데 오히려 장애요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재창당을 주장하는 진정추측은 총선 결과를 실패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진정추 관계자들은 진보정당이 뿌리내릴 수 있는 개관적 조건은 형성됐는데도 주체적인 역량 부족과 함께 부수정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한 게 패인이라고 본다. 진정추 최 윤 대표는 "무조건 더 넓은 세력을 포용한다고 진보세력이 확장되는 건 아니다"라고 전제, "노동자 농민 소시민의 편에 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그 중심을 견고히 한위에 지지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전보정당의 진로를 둘러싼 이런 갈등은 근본적으로는 진보정당에 대한 견해차에서 연유한다. 민중당은 출범 이후 '대중정당으로의 변신'을 추구하는 당권파와 '계급정당으로의 확고한 중심'을 요구하는 소장파의 갈등으로 표류했던 게 사실이다. 이 갈등의 골은 지난 2월 민중당이 계급정당으로서의 노선을 추구하는 '노동자정당추진 위원회'(이하 노정추)와 급격히 통합하면서 더욱 깊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옛 민중당의 한 관계자는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한 대중정당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으나 어느족에 더 비중을 둘 것이냐를 놓고 늘 갈등이 빚어졌다"고 털어놓았다.

 

‘진정추’의 대통령후보 백기완 가능성

결국 근본적 갈등이 선거 참패를 계기로 노출돼 당권파의 지나친 대중영합 노선을 비판하던 소장파와 노정추 세력이 재창당을 주장하는 쪽으로, 소장파의 모험주의 노선과 편협성을 못마땅해 하던 당권파들이 발전적 해체쪽으로 갈려 이번의 '합의이혼'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다가올 대통령선거를 놓고서도 두 세력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민사협쪽은 전국연합에서부터 경실련에 이르기까지 진보적인 모든 세력과 의견 교환을 한 후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데 반해, 전정추쪽은 일단 대통령선거 이전 창당을 목표로 하는 만큼 독자 후보를 내세울 계획이다. 진정추쪽이 독자 후보를 내세울 경우 백기완 전 민중당 고문이 나오리라는 관측도 있다.

“이 땅에 진보정당의 첫발을 내딛는 위대한 정치실험"을 외치던 민중당은 자금과 조직력이 총동원된 제도정치권의 두터운 장벽과 유권자들의 외면을 뚫지 못한 채 일단 그 간판을 내렸다. 그러나 진보정당을 향한 모색과 그를 둘러싼 민중민주 운동세력의 갈등은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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