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발뺌에 세입자 겹설움
  • 박중환 경제부장대우 ()
  • 승인 1992.05.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세값 뛰어도 주택임대차보호법 '유명무실' 여전

회사원 이용욱씨(37)는 꼭 2년 만에 국민학교 3학년짜리 아들로부터 "아빠 또 이사가야 돼"라는 질문을 다시 받아야 했다. 그는 90년 봄 '살인적인' 전세값 폭등 때 서울 잠실동 27평짜리 아파트에 세들어 살다 천호동에 있는 25평짜리 연립주택으로 밀려와 살아왔다. 그가 살던 잠실 아파트 전세값은 3천5백만원이었으나 그 해 봄 무려 6천만원으로 오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2평을 줄이고 5백만원을 더 얹은 4천만원에 지금의 연립주택으로 옮긴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서울에서 내쫓겨 인근 경기도 하남시로 이사하게 되었다. 천호동 연립주택의 전세값이 5천5백만원으로 올라 더 버틸수 없게 된 탓이다. 이씨는 지난 4월말 화창했던 휴일에 "이사 가지 말자"고 칭얼거리는 어린 자식을 달래다가 그만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분통을 터뜨리며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이씨가 분통을 터뜨린 것은 내집없는 설움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3월 중순 집주인으로부터 전세 시세가 6천만원을 호가하는데 최소한 5천5백만원으로 올려야겠으니, 1주일내에 그 값에 계약을 갱신하든지 아니면 나가라는 통첩을 받았다. 그는 2년 전 천호동으로 이사를 오고 난 뒤에야 알게 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2조 '전세보증금의 인상을 5% 초과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들어 37.5% 인상은 지나치다고 집주인에게 항변했다. 그는 법원에 5%만큼(2백만원)을 공탁한 뒤 법투쟁을 해볼 양으로 이곳저곳에 알아봤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이 민사문제이기 때문에 소유권자에게 이기기 어렵다고 말해 포기해야 했다.

해마다 봄 가을이면 어김없이 이씨와 똑같은 고통과 좌절을 겪어야 하는 세입자들이 전 가구의 30%에 이르는데도 이렇다할 대책은 마련되자 않고 있다. 지난 89년 경제정의실천연합회(경실련)가 유명무실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추진했으나 잘못 다뤄지는 바람에 되레 전세값 폭등을 부채질했다. 경실련 정책실 양혁승 부장은 "약자인 세입자의 법률적 대항력을 보장하기 위해 임대등록제와 임대차자동갱신제를 신설해 무리한 임대료 인상을 통제하고 분쟁시 이를 도와주는 조정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전세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오히려 부작용만 낳았다"며 이 때문에 법 개정운동을 다시 벌이는 데 부담만 안게 됐다고 아쉬워한다.

90년 2월16일 정부가 발표한 전세값 안정대책을 보면 전월세등록제를 실시하고 분쟁조정센터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요즘 집없는 서민은 여전히 '살인적'이라 할 20~30%의 전세값 인상을 강요받고 있는데 정부도 정치권도 별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건설부 주택국 한관계자는 "법안심의가 올라오지 않으니 검토할 수 없지 않는냐"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용욱씨의 좌절은 정부가 정당의 '나 몰라라'에 집없는 서민들이 기댈 곳도 없는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