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床異夢’ 남북관계 재확인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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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회담 분과위 중간 결산 협상 창구 제도화 의미뿐

 

5일부터 나흘간 서울에서 열리는 7차 남북총리회담은 어느 때보다 실무적 성격이 강한 자리이다.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정치군사교류협력 등각 분과위에서 협의해온 남북한 기본합의서 실천과제와 이행방안을 중간결산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과위 활동결과를 점검해보면 합의서 채택 당시와 같은 축제분위기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별다른 결실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북은 합의서에 발효 1개월 이내(3월18일 이내)에 3개 분과위원회를, 발효 3개월 이내 (5월18일 이내)에 연락사무소군사공동위경제교류 협력공동위 등 3개 실천기구의 구성운영을 규정하여 합의서가 사문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그 이행과 실천을 보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에 따라 구성된 분과위는 1차회의 때부터 부속합의서의 숫자문제로난관에 빠졌다. 남측이 '件別합의 -단계적 실천' 원칙에 따라 합의된 사항부터 부속합의서를 채택하자고 주장한 반면, 북측은 모든 합의사항을 단일한 합의서에 담아 일괄 타결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충돌이 생긴 1차적 원인은 분과위원회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제2조2항의 해석차이이다. 즉 "각 분과위는 해당부문의 구체적인 이행대책을 협의한 데 따라 각각 부속합의서를 작성한다"는 문장에서 '각각'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가 사안별 합의서인지, 분과위별 합의서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원인은 남측의 기능주의적(인적물적 교류를통해 점차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한다는) 접근방식에 대한 북측의 우려에 있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북한의 체제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통일은 무의미하다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반면 북측은 양체제 유지를 전제로 하는 연방제 실현을 위한 정치군사적 안전판을 확보하고서야 교류에도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북측은 분과위에 제출한 부속합의서 초안에서 기본합의서의 이행방안을 담기보다 기본합의서에 제시된 협의의제를 좀더 구체화하는데 머무르면서 그 안에 합의서 채택당시 철회했던 항목들-가령 법제도적 장애제거나 상대방 찬양 보장 등을 들고나와 남측을 당혹스럽게 했다. 남측 역시 범민련해체 등 강경한 정치적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맞대응하고 나섰다.

 

“합의서는 남북 묶어주는 마지노선"

따라서 분과위 활동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도 절차상의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변화냐 고수냐 라는 근본적 대립을 조금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는 교류협력분과위 역시 이산가족 상호방문을 위한 '人道공동위' 구성문제 등에서는 전혀 의견접근이 안돼 부속합의서 채택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일각에서는 양측이 과연 합의서 채택 당시부터 남북 신뢰구축과 통일의 의지를 갖고 있었느냐는 회의론도 일고 있다. 고려대 韓昇洲 교수 (정치학)는 합의서 채택에서 북측이 얻고자 한 것은 ?핵문제 희석 ?김일성 80회 생일 축제분위기 유도 ?남한의 북한체제인정 ?대북정책 가시적 성과 획득 ?북한체제 변화 유도 ?합의 거부시 예상되는 북한의 비난 회피 등에 있다고 분석했다. 한교수는 "그렇긴 하지만 합의서가 양쪽을 묶어주는 틀 역할은 하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마지노선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진전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북관계에서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합의서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는 없으며,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제도화된 남북협상이 계속될 것임도 분명하다. "지금 남북관계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단계에 와 있다"는 한 협상관계자의 말은 남북회담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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