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식 춘투’노조가 승리
  • 베를린·윤도현 통신원 ()
  • 승인 199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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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경제 재건에는 무관심”비난도… 금속 부문 등 파업 불씨 남아



 1백3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독일 공공부문 노조의 대대적인 파업은 결국 노조측의 승리로 끝났다. 18년 만에 벌어진 이번 파업은 국가 공공부문 관련종사자 2백30만명의 임금인상률을 5.4%로 낮춰 제시한 노조측과 최종 4.8%를 주장한 정부측 간의 협상이 끝내 실패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관청뿐만 아니라 공공 교통기관 · 경찰서 · 우체국 · 청소부 · 국공립병원 · 교육기관은 4월26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가 독일은 통일 이후 최대의 사회적 위기를 맞았었다.


독일 전역에는 도처에서 쓰레기가 쌓이고, 대중교통수단이 끓겨 시민들의 발이 묶이고,유치원 · 탁아소 보모들이 파업을 하고 대학업무가 중단됐다. 25만여명이 파업에 참가한 5월4일부터는 전국 주요도시의 공항업무까지 마비됐는가 하면 다음날인 5일에는 급기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운항마저 파행을 겪었다. 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시민의 기본생활이 불편해졌으나 노조와 정부측은 협상실패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해왔다. 그러나 사태가 다급해지자 정부는 노조측에 협상재개를 요청했다. 파업가담 인원이 전국적으로 거의 50만에 육박한 파업 10일째인 5월6일부터 정부와 노조는 다시 임금폭의 조정에 나섰다. 정부측은 한발 양보하여 이번에는 중저소득층에는 5.6% 인상, 그리고 고소득층에는 4.8% 인상안을 주장한 반면, 노조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전체 5.4% 인상에다 추가로 지난 1/4분기를 위한 5백마르크 일시지급 그리고 휴가비 1백마르크 인상을 고집하였다.


5월7일 저녁에는 노조측의 입장을 대폭 수용한 상호 절충안이 거의 타협점을 찾았으며 결국 노조측의 입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져 파업은 5월8일 새벽부터 중지됐다. 인상률 0.6%,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25마르크(1마르크는 한화 약 4백80원) 때문에 임금인상이 결렬되었지만 결과는 엄청났다. 그러나 파업에 임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은 폭발적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사용자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왔기 때문이다. 지난 1974년에 독일의 공공부문 노조는 3일간의 파업끝에 임금인상 13%라는, 독일 노동운동사에서 보기드문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공공부문 노조는 연평균 4.8%에도 못미치는 정부측의 임금인상안을 감수해왔다. 따라서 이번 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들이 원래 제시한 9.5% 인상안에서 대폭 양보한 5.4% 인상안도 과중한 세금부담과 인플레에 비하면 실질구매력 상실을 메우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가 노동자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고 말하고 있다. 협상 초부터 콜수상은 "나는 빌리 브란트(1974년의 파업 당시 수상)가 아니다. 4.8% 이상으로 절대 임금을 더 올릴 수 없다"라면서 임금인상에 강하게 대처할 것을 강조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측은 장관의 월급을 5% 줄인다고 발표했으나 오히려 노동자들의 노여움만 샀다. 장관의 평군 월급 2만2천마르크는 30여년 경력의 청소차 운전사가 한달에 받는 실질수령액 2천6백마르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최고 행정실무자의 월급인하는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년째 공공부문 노조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불프마터에스 여사는 '정부는 쓰라린 후회를 할 것’이라며 응수했다. 현재 공공부문 노조원 중에는 중하소득층이 약 70%나 된다. 당연히 대부분의 시민은 이번 파업에 별로 불평을 하지 않고 잘 참으며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정부 기업 노조 모두 '통일비용'엔 무관심


 정부가 노조의 제안을 적극 수용할 수 없었던 나름대로의 사정도 있었다. 구서독의 공공부문의 임금인상은 이미 4월 말부터 시작된 구동독 지역의 공공부문의 임금협상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며, 따라서 국가재정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독일 전체 국가 재정 적자는 이미 약 1조3천억마르크에 이르렀다. 동독 지역의 재정지출 또한 늘어나고 있다. 만약에 서독 지역의 임금인상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구동독 지역의 임금인상은 불가피해지며, 이에 따른 복지비용(예를 들어 실업자 수당)의 증가를 예상해야 하기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은 거의 향상되지 않았는데 임금만 계속 올라가고 있어 국가재정뿐만 아니라 동독의 사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의 주장에 대해 노조측에서는 '전투기 90' 같은 계획에는 1천억마르크를 책정해 놓았으면서 22억5천만 마르크밖에 소요되지 않을 임금인상률 0.6%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또 중저임금 생활자에 대한 과도한 과세, 간접세 확대, 기업세 인하 등의 불평등한 조세정책을 공격했다. 공공부문 노조와 정부의 싸움, 그리고 그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타 부문의 임금협상은 통일비용을 누가 더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바닥에 깔고 있었다. 정부와 기업가측은 통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고 노조측에서는 기업이 이윤을 더 많이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확실한 구상을 갖고있지 못했다. 콜정부는 비록 독일의 통일은 실현시켰지만 통일 이후의 과제들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콜정부는 통일비용을 어디서 충당해야할 것인가 구체적 대안은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한 형편이다. 서독 지역의 각 주는 저마다 '구동독 과의 분배'를 입으로는 주장하지만 막상 자기 주의 재정에서 동독지원금을 분담하는 데는 지극히 인색하다.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독일의 연방주의와 각 주의 이기주의가 상충하는 것이다. 서독의 기업들 역시 통일을 전후해서 근래 드문 호황을 누렸음에도 동독지원에는 지극히 인색하다. 여태까지 동독에 대한 재정지원은 주로 연방정부가 자체 재정의 범위안에서 해왔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대하는 구동독 지역의 재정수요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채울 것인가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서독 지역의 임금억제가 동독 지역의 재건에 과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자민당 당수인 람스도르프도 "정부가 어떻게 일을 해나가겠다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고 실토한 바 있다.


한편 독일 노동조합들의 임금인상 투쟁은 비록 그 자체는 정당한 것이지만 통일독일의 앞날을 위한 노력에서는 정부나 기업보다 나을 것이 없다. 통일 경기로 인해 서독의 경제상태가 호전되었는데도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들을 만족시켜줄 임금인상과 조합원 수의 확대에만 관심을 쏟을 뿐, 동독의 경제재건은 노조의 임금정책과 무관한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일례로 통일 이후 동독 지역에서의 급작스런 임금인상 투쟁에 대한 서독 노조들의 지원은 동독 기업의 경쟁력을 처음부터 약화시켜 서독 기업들과의 가격경쟁을 처음부터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가뜩이나 취약한 동독 경제구조의 활성화를 방해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는 중하층의 임금수준과 비교되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가재정에 여유가 없는 데 의사(월급 약 8천2백마르크)나 엔지니어 · 고급관리직과 동일한 임금인상률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많았다. 오히려 차등 임금인상을 통하여 저임금생활자들에게 훨씬 유리하도록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은 조합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파업으로까지 치달은 공공노조의 임금협상은 우여곡절끝에 타결을 일단 보았지만 독일식 춘투가 이것으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유럽 최대의 단일노조인 금속노조도 원래 제시했던 9.5% 인상요구에 크게 못 미치는 3.3% 임금인상안을 거부하면서, 의무쟁의 조정기간이 끝난 다음날 4월28일부터 부분적인 경고파업에 들어가 5월7일에는 약 10만여명이 이에 가담했다. 임금협상안을 5월16일로 연기한 건설노조 역시 현재 노사간에 인상률을 두고 큰 이견(건설노조측 9.8% 사용자측 3.4%)을 보이고있다. 언론노조 역시 사용자측의 3.3% 인상안을 "전혀 타협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일축했다. 파업의 분위기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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