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노사분규 길어야 반나절
  • 벨파스트.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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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정부 혜택 많고 임금 싼 ‘투자 천국’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1시간 거리인 북아일랜드의 주도 벨파스트는 썩 유쾌하지 않은 방법으로 여행자를 맞았다. 여행자는 출입국 관리로부터 자신의 몸을 샅샅이 수색당하는 봉변을 겪었다. 공항에서 벨파스트 도심으로 들어가는 접경지역에서도 유럽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삼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장갑차가 서 있고 중무장한 군인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극우 세력인 아일랜드 공화군(IRA)과 이에 반대해 폭력을 일삼는 극우 세력인 얼스터 자유 수호대(UFF) 간에 서로 죽이고 죽는 테러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어온 여행자들은 자기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 현실이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북아일랜드는 영국 정부가 계엄령을 내린 상태다.

 그러나 북아일랜드에서 며칠을 보낸 사람들은 그같은 부정적 이미지와 현실이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북아일랜드의 안전은 알려진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 마틴 그레이엄이라는 북아일랜드의 한 젊은 공무원은 테러 세력이 인구의 1%도 안되는 극소수라고 강조했다. 절대 다수가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을 원치 않아 이들 극우 세력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며 테러도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현지의 한 한국인은 “이들의 테러가 있다 하더라도 영국 정부를 상징하는 건물과 사람이 표적물이며 사전 경고를 하기 때문에 외국 기업에게는 거의 위협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북아일랜드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은 한국 기업에 이점이 될 수 있다. 북아일랜드 주정부는 나쁜 이미지를 상쇄시키려고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 등 영국의 다른 주정부보다 훨씬 나은 투자 혜택 조건을 외국 기업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으로 인해 유럽 어디인가에 교두보를 마련해야 하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이런 유리한 투자유치 조건이 매력적이다.

연장근로 안하지만 국민성은 합리적
 실제로 대우전자 영국 현지법인(DEUK)은 이런 혜택을 제대로 누린 기업이다. 대우전자는 공장을 가동한 지 불과 2년 만에 흑자를 냈다. 현지법인은 본사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을뿐더러 한국 가전업계의 해외투자 공장 가운데에서 보기 드문 성공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경영을 잘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투자혜택 덕을 톡톡히 보았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우전자 영국 현지법인 천상영 공장장은 “현지법인을 세우려고 88년 초부터 유럽 열 두 나라를 샅샅이 훑었다. 결국 영국에 왔고 그 중에서도 북아일랜드를 택한 것은 이들의 투자조건과 입지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조건은 대우로 하여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다.

 북아일랜드 앤트림에 자리잡은 대우전자 영국 현지법인에는 노랑머리에 파란 눈의 북아일랜드 아가씨 4백30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3개 최종 조립 라인과 4개 PCB 조립 라인에서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 43만대를 만들어냈다. 연간 생산능력이 60만대인 이 공장은 올해 총 생산 능력을 모두 채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공장은 근로자가 외국이라는 것말고는 한국의 공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영 방식과 이곳의 제도가 조화를 이뤄낸 것이다. 처음에는 현지인들을 관리하는 데 꽤 애를 먹었다. 천상영 공장장은 “현지법인의 성패는 사람 관리에 달려 있다. 문화와 제도가 너무 다른 선진국 국민을 후진국 사람이 부리는 격이어서 동남아시아보다 어려움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주당 39시간의 법정 근로시간 외에 연장근로란 영국인들의 머리에 아예 없고, 감기 몸살 정도에도 결근하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천공장장은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적절히 당근과 채찍을 구사하는 꾀를 냈다고 말했다. 실업률이 높아 일자리가 아쉬운 점도 도움이 됐지만, 개인적으로 차분히 설득하면 따라와주는 합리적 국민성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대우전자 영국 현지법인은 북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B)과 88년 9월 가계약을 맺은 이후부터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투자서비스를 받았다. 산업개발청이 공장부지를 물색해 주었고, 공장을 짓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5만㎡에 이르는 공장이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좀처럼 드문 야간작업과 토.일요일까지 강행한 공사였다.

 올 3월에 산업개발청과 투자 계약을 맺어 던개논에 짓고 있는 카멘전자 공장은 더 빠른 속도로 세워지고 있다. 이 공장은 착공한 지 불과 5개월 만인 올 9월에 공장을 완공하고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던개논에는 카멘전자의 직원이 한 사람도 없었다. 산업개발청의 관리가 나와 공사 진척을 독려하고 있었다.

대우전자 몇푼 안들이고 현지화 성공
 산업개발청의 투자지원금 규모도 파격적이다. 대우는 최초 투자금 1천7백만달러 중 절반이 넘는 돈을 지원받았다. 이 돈은 갚을 필요가 없는 무상이다. 나머지는 장기 저리 자금을 받았는데 4년반 만에 이 돈도 다 갚아 이 공장은 완전히 대우 소유가 됐다. 대우가 현금으로 낸 것은 처음의 자본금 1백만달러 뿐이다. 카멘전자의 경우는 현재 진행중이어서 투자지원 규모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대우에 준하는 조건일 것으로 보인다.

 산업개발청이 제시하는 투자조건은 이같은 무상 투자보조금(Grants)외에도 마케팅.판매관리.훈련.연구개발 같은 다양한 분야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금 및 금융 상의 여러 지원책도 외국인 투자자를 손짓하고 있다. 투자시에 좋은 조건을 내거는 나라들도 투자가 끝나면 손을 떼는데 북아일랜드의 경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투자자가 현지의 사업 현장에 빠르게 적응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투자후의 서비스’라는 독특한 지원을 하고 있다. 주택이나 교육 문제에까지 대우의 직원들은 산업개발청 관리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혜택은 고용 인원에 따라 다르다. 현지 고용인 수가 많을수록 혜택의 폭은 넓어진다. 산업개발청이 유일하게 투자자에게 요구하는 게 있다면 고용 규정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영국 전체의 실업률(10.5%)도 높지만 북아일랜드는 훨씬 높은 13.7%(5월말 현재)나 된다.

 영국으로서는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 최대의 경제현안이다. 영국에는 4개 주정부에 산업개발청 같은 투자기관이 10개 있어 서로 자기네 땅으로 오라고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북아일랜드로서는 4백30명을 고용하고 있는 대우와 95년까지 2백63명을 쓸 카멘전자가 고마운 기업일 수밖에 없다

시간당 임금은 독일의 절반
 천공장장은 대우가 북아일랜드행을 택한 것은 산업개발청의 좋은 지원책 외에, 양질의 인력을 싼값에 쓸 수 있고 노사관계가 안정돼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영국은 유럽 국가 중에서 임금과 사회보장비가 낮은 수준에 속하며 북아일랜드는 더욱 낮다. 북아일랜드의 시간당 임금은 9.5달러(약 8천원)로 잉글랜드보다 20% 가량 싸고 독일에 비해 절반에도 못미친다.

 한국 기업들이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노사분규가 없다는 데 있다. 북아일랜드 산업개발청의 노먼 휴스톤 홍보 책임자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 기업인 미국의 듀폰사는 35년이 지난 현재까지 반나절의 노사분규를 겪었을 뿐이다”라며 하루를 겪은 노사분규는 단 한건도 없었다고 자랑했다. 유럽 카 스테레오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작지만 ‘무서운’ 기업인 카멘전자의 조경호 사장은 “투자지원책도 우수하지만 인건비가 싸고 노사관계가 안정돼 투자를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카멘전자는 놀랍게도 겨우 4개월 만에 투자 결정을 해 버렸다.

 북아일랜드에는 2백50여 외국 기업이 단독 또는 합작투자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을 5만5천명 고용하는데 이는 총 고용자(51만명)의 10%를 넘는 수치이다. 영국은 사회보장비 등을 투자지원에 돌려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어렵게 외국 기업을 유치할 게 아니라 그 돈으로 국내 산업을 개발하면 뒤탈도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산업개발청 존 루베리 이사는 “그렇게 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새로 시작하기에는 산업 기반이 너무 허약하다”라고 짧게 답했다.

 영국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빨리 와 섬유산업 등 몇 개를 빼고는 자동차.전자산업 같은 첨단산업은 급속히 경쟁력을 잃고 있다. 영국이 자랑하는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기껏 연간 6천대를 생산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암울한 영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존 메이저 행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21%로 최악의 수준을 보였다. 영국 국민들은 녹음이 우거진 하이드 파크에서 누워 지내도 실업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최저의 생계는 꾸릴 수 있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일자리를 달라고 외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외국투자를 반기는 것은 이런 위기 의식에서이다.

 주영 한국대사관 김수동 상무관은 “블록화 현상 속에서 한국이 생존 영역을 찾는 길은 현지에 진출하는 길뿐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유럽공통체 12개국 중 최적의 투자지는 영국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상무관은 세계 교역량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단일 시장인 유럽공동체에서 빨리 교두보를 마련하지 못하면 지금도 12%에 불과한 유럽 시장을 그나마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투자액 일본의 0.8%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서정락 런던 무역관장은 “반덤핑 등 각종 규제를 벗어나는 길은 현지화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밝히며, 한국은 일본에 비해 유럽에 대한 투자가 미미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본이 유럽통합 전에 전략을 수립해 치밀하게 준비해왔고 특히 영국을 전략 거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업체 수로도 일본은 1백98개 업체가 영국에 진출했지만 한국은 삼성 금성 대우 등 9개 업체로 일본의 4.5%(투자액 누계는 0.8%)에 불과하다. 영국 어디엘 가나 빌딩의 전광판에는 일본 업체의 광고 선전이 요란하다.

 영국은 정부가 보조금 지원 등 적극적인 투자유치 정책을 펴고 있을 뿐 아니라 임금과 금리가 싸 기업을 하는 데 비용이 적게 들며 부동산 투자와 과실 송금도 자유롭다. 또 풍부한 천연자원과 전세계를 잇는 교통망 등 사회간접시설이 잘 돼 있으며, 국제어인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특히 북아일랜드는 본토보다 더욱 임금이 싸고 활용할 수 있는 인력자원이 풍부하다. 영국 본토인 잉글랜드.스코틀랜드를 ‘점령’한 일본이 안전을 문제삼아 북아일랜드에 적극 진출하지 않는 것도 이곳에서의 한국의 입지를 넓혀준다.

 6월초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북아일랜드 산업개발청의 데즈몬드 멕베이 청장은 ‘대우로부터 시작된 아.한 경제협력’을 거론하며 한국 기업이 북아일랜드에 투자해주기를 희망했다. 북아일랜드는 남북이 분단돼 있고 기질도 한국인과 비슷한 데가 있다. 한국 기업은 이곳의 ‘테러’와 ‘투자조건’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다는 일이 남았다. 대우와 카멘은 투자조건 쪽을 택했다.
벨파스트.張榮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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