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者’ 중국이냐 통합유럽이냐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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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레스터 서로 교수에 의하면 21세기는 1993년에 시작되었다. 즉 연초에 이루어진 유럽통합과 함께 21세기 경제 전쟁의 막이 올랐다는 것이다.

 작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대접전(HEAD TO HEAD)》은 이 경제 전쟁의 승자로 유럽공동체(EC)를 꼽고 있다. 이유는 세계 최대의 역내 시장을 갖추게 될 유럽공동체가 미국·일본을 제치고 21세기의 경제 법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공동체 역외권 나라들은 지금부터 유럽식 법칙을 배우지 않으면 2`세기 경제 전쟁에서 낙오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그는 이 책에서 경고하고 있다.

 서로 교수의 이같은 주장은 지난해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이 ‘21세기는 일본의 세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경세의 서’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결론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도 크게 작용했다. 경제력이 쇠퇴하고 있는 미국이 21세기에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다는 것은 일리가 있지만, 기술 대국 일본의 落日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일본인의 반응이었다.

“중국, 이미 세계 제3위 경제대국”

 그렇다면 다가오는 21세기의 경제적 패자는 관연 어는 나라가 될 것인가.

 이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의 하나가 최근 영국 국제전략연구소가 발표한 예측 결과이다. 이 연구소의 <전략개관 92~93년>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제전략연구소는 그 근거로 최근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 속도를 들고 있다. 이 연구소는 등소평의 개혁·개방 노선에 딸라 중국은 작년 국내총생산(GDP) 신장률이 12.8%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기록했으며, 이미 미국·일본에 다음가는 경제 규모를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또 현재의 성장률이 약간 둔화한다 하더라도 중국은 2010년까지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중국의 현재 경제력이 미국과 일본 다음가는 규모일 수도 있다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서도 지적되었다. 국제전략 연구소의 예측 직후 나온 국제통화기금 보고서에 의하면, 구매력 평가 방법으로 경제력을 산정할 경우 중국은 이미 세계 제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중국의 작년 국내총생산은 공식 환율로 산정할 경우 4천3백억달러에 불과해 세계 10위권 정도의 규모였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은 중국의 元을 국내 시장에서의 구매력으로 평가하면 중국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1조6천6백억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5조6천억달러), 일본(2조3천7백억달러)에 다음 가는 규모로 중국의 실질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가 아니라 3위라는 것이 국제통화기금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또한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가 중국이 21세기에 경제 초강국으로 떠오른다고 예측한 결과도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80년대 후반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연 8%의 성장을 계속한다면 2000년에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 합계를 능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또 2020년에는 국내총생산 총액이 5조6백억달러(80년도 달러 가격)에 달해 세계 최대의 경제 규모를 갖출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세계은행 역시 최근 이와 유사한 예측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세계경제의 전망과 발전 도상국>이라는 보고서는, 중국·홍콩·대만을 합친 이른바 ‘중화 경제권’의 경제 규모가 2002년에 9조8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여기에는 중국 경제가 앞으로 연7% 이상씩 성장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으나, 중국이 21세기 초에 경제 초강국으로 떠오른다는 결론은 앞서의 예측들과 같다.

‘탁상공론’ 예측 될 수도

 그러나 모순투성이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 21세기에 경제 초강국이 된다는 이런 예측들은 단순한 탁상공론으로 끝날 가능성도 매우 크다.

 먼저 중국 정부 스스로가 현재의 경제력이 세계 3위라는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국제통화기금 보고서가 보도된 이후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국제통화기금이 중국의 국내총생산을 과대 평가했다”라고 크게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중국은 11억의 인구를 안고 있는 발전도상국에 지나지 않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중국 정부의 발전 전략으로 보더라도 중국 경제가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21세기 중엽이다. 중국은 87년의 제13차 공산당대회에서 채택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입각해 3단계 발전 전략을 추진중이다. 즉 80년의 국민총생산(GNP)을 90년에 두배로, 금세기중에는 네배로 늘려 21세기 중반에 중진국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90년의 목표는 달성했으나 발전 속도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작년 제14차 당대회에서는 공산당 정권이 자본주의화를 추진한다는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중국은 일본의 50년대 후반기에 버금가는 고도성장기에 돌입했다고 한때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일치된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경기 과열로 인한 부작용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중국 경제의 큰 두통거리이다. 예를 들어 두자리 숫자에 이르고 있는 인플레이션 및 수송수단·에너지·원자재 등의 부족 현상이다.

 중국 지도부는 최근 이러한 경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공산당중앙위원회전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정치적 이유로 무기 연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구난방인 지방 간의 개발 경쟁을 억제하고 경기 과열에 제동을 걸어 문제 전체를 재고한다는 이른바 ‘顧廬全局을’ 제안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은 이런 단기적 문제에 국한한 것만은 아니다. 주용기 부수상의 지적처럼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실험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5년의 유예 기간은 필요하다. 또 그 사이 외자 도입을 촉진해 어떻게 국제 경쟁력을 높여 가야 하 것인가라는 문제도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큰 짐이다.

美 서로 교수 “통합유럽이 21세기 주도”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어떤 21세기를 맞게 될 것인가.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 교수가 《디스 이스 요미우리》 8월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두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중국의 시장경제 실험이 성공하고 그 위에 임해공업 지역의 고도성장이 내륙으로 전파되는 경우다. 그러면 중극은 균형적 경제 발전과 함께 완만한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된다. 즉 급격한 체제 변동 없이 거대한 시장경제를 구출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지역 대국’의 위치를 확보한다.

 그러나 케네디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즉 임해공업 지역과 내륙의 지역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경우다. 그러면 중국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양분될 수 있다. 게다가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이전의 군벌체제가 부활해 중국 정체가 사분오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의 장래에 관해 이런 비관적 관측이 우세한데도 앞서와 같은 예측들이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다가오는 21세기 경제 전쟁에 대비한 포석일 수도 있다. 서로 교수는 3억8천만 인구를 안고 있는 유럽공동체 경제가 21세기에는 러시아 동유럽권이 가입함으로써 9억 시장으로 확대되어 세계 무역의 법칙을 지배한다고 예측했었다.

 만약 중국의 시장경제가 성공한다면 중국경제는 21세기에 인구 15억의 성숙 시장으로 확대된다. 이 경우 21세기의 세계 경제 질서를 좌우한 것은 통합유럽이 아니라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시장 규모가 통합유럽을 능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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