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총동원령에 야권 공조로 ‘맞불’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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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을 향한 진군 나팔 소리가 요란하다. 대구 동을 보궐선거에서 기선을 잡기 위해 달구벌로 내달리는 여야의 총력전은 마치 내노라 하는 천하 검객들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한 지역의 선거가 이처럼 치열한 모습을 띠는 것은 물론 보궐선거가 발휘하는 정치적 위력 때문이다. 선거가 ‘정치 행위의 꽃’이라면, 보궐선거는 ‘선거의 꽃’이다. 보궐선거는 한 지역에서 치러지는 선거이면서도 운명적으로 ‘전국 선거’의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金泳三 정부가 출범한 뒤 치러진 두 차례 보궐선거도 정국의 흐름을 일정 정도 좌우하는 ‘주요 변수’ 노릇을 했음을 물론이다. 집권당에 승리를 안겨 주기를 전통적으로 거부해 온 까다로운 수도권 지역인 광명시 보궐선거를 맞아 김대통령은 서강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재야 운동권 출신 孫鶴圭씨를 공천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그 결과는 예상을 뒤엎은 압도적 승리로 나타났고, 김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는 더욱 가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김대통령이 측근인 金命潤 전 민주산악회 고문을 내세운 명주·양양 보궐선거는 김씨의 의회 진입 좌절에 그치지 않고 민자당에 뼈아픈 타격을 안겨 주었다. 선거 후유증은 정부 각료들의 정책 부조화, 불협화음과 함께 김대통령의 정국 운용 구도에 상당한 난기류를 형성해 냈다. 반면 이 선거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래 개혁의 주도권을 완전히 뺏긴 채 휘청거리던 민주당에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대구 동을 보궐선거를 향한 여야의 총력전과 정가의 관심은 단순히 보궐선거의 보편적 특수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열기의 배경에는 김대통령 집권 이후 처음으로 집권 세력이 정국 운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김영삼 정권 하의 호남’으로 불릴 정도로 현정부에 대해 가장 유보적인 민심을 보이는 민감한 지역에서 치러지는 선거라는 특수성이 깔려 있다. 여당으로서는 결코 져서는 안되는 선거이고, 야당으로서는 가장 욕심나는 선거판인 셈이다.

 대구 동을 선거의 판세를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시각은 ‘매우 어려운 선거’라는 데에서부터 ‘다소 걱정하지만 결국은 낙관한다’는 데에 이르기까지 관측자에 따라 다소 편차를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인 기류는 ‘걱정스럽다’ 쪽으로 집약된다. 민자당 내에서는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털어놓는 당직자들도 있다.

대구 ‘정서’가 심상찮은 까닭

 걱정하는 근거는 이른바 ‘대구 정서’로 불리는 이 지역 민심에 있다. 대구·경북 세력의 중심 근거지인 대구 시민들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뒤로 ‘심리적 박탈감과 미묘한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관측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모아준 결과가 바로 이것이냐는 피해 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대구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던 朴哲彦 의원이 슬롯 머신 사건으로 구속된 것을 비롯해, 이 지역 정치인 상당수가 현정부의 사정과 개혁 바람에 휩쓸려 정가에서 밀려났다. 남아 있는 경우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미 정치 생명이 끊겼거나 정치적 상처를 입은 부상병으로 잔명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동을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직접 원인도 이 지역의 朴浚圭 의원이 공직자 재산 공개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권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 대구 지역에 ‘김대통령 집권 이후 대구·경북만 고통을 전담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형성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박철언 의원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 지역을 향한 박의원의 진영의 맹렬한 무죄 주장이 상당 부분 먹혀들면서 ‘정치 희생양’이라는 동정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비단 정치만이 아니다. 이 지역의 가중되는 경제난도 현정권에 대한 대구 정서를 악화시키고 있는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번듯한 대기업 하나 없이 사양 산업인 섬유업을 축으로 한 중소기업과 영세업체들로 겨우 유지돼온  이 지역의 경제는 최근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경북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 지역의 정치적 박탈감과 경제적 위기감이 현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놓은 상황이라고 진단하다. “소수의 기득권층 지배세력이었던 정치 TK와 일반 시민들의 이해가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이 대구·경북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는 심리적 자부심과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심리적 분리가 안된 채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지역 경제의 위기는 과거의 누적적인 결과일 뿐 현정권의 탓은 아닌데도 현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전이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구는 대구 정서를 달래고 설득하려는 민자당과 대구 정서를 야당표로 묶어내려는 민주당의 총력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민자당의 대구 정서 달래기는 지난 16일 대구 귀빈예식장에서 열린 민자당 동구 을지구당 임시 대회장(위원장 盧東一)에서 극명하게 표출됐다. 金瑢泰 선거대책위원장·金潤煥 의원 등 대구·경북 출신 소속 의원 전원이 참석한 이 대회에서 金鍾泌 대표는 “뜻하지 않게 박 전의장이 자리를 비우게 된 데 대해 대구 시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잘 알며, 나 또한 가슴이 아프다”라면서 “김영삼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준 대구 시민 여러분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계속 김대통령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黃明秀 사무총장은 “노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대통령께 각종 개발 공약이 실천되도록 건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개혁 동참 ‘전도사’는 김윤환 의원

 민자당의 대구 정서 달래기는 대구·경북 중진들을 동원한 ‘개혁 동참 호소’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 전도사는 虛舟 金潤煥 의원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3일 김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하면서 대구 보궐선거에 대해 깊숙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어서 9일 김대통령의 측근인 崔炯佑 전 사무총장은 민주계 인사들을 불러모아 민정·공화계를 싸안고 당을 운영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한 데 이어, 다음날인 10일에는 김의원을 저녁 자리에 초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입 기자들에게 김대통령과 김의원의 오찬 회동 사실을 알린 것도 최의원이었다. 결국 김대통령의 의중을 전달받는 최의원이 김의원이 일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치는 정지 작업’에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虛舟에게 대구 정서를 달래고 설득하는 역할이 맡겨진 사실을 두고 김대통령의 측근인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그동안 대구·경북 세력 내에서 허주가 취했던 독특한 입장과 역할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의원은 3당 합당후 바람 잘 날 없었던 당 내분 속에서도 일관되게 김후보를 밀어 정상에 오르는 데 기여했고, 그 과정에서 고비마다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민정계에서 대권 주자가 나와야 한다”는 대구·경북 세력의 정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이번만은 대구·경북이 양보해야 한다” “군 출신 인사와 대구·경북 출신 인사는 대권 주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는 민정계 10인모임을 주도해 김대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경선 정국의 우열을 가른 분기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구·경북 출신은 기득권 세력이므로 검증을 받아서 개혁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서 민주계의 개혁 행보를 가볍게 해준 것도 김의원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의원을 내세운 것도 바로 이런 김의원의 일관된 입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김의원은 11일 이후 대구 지역에 내려가 새 정부의 개혁이 결코 대구·경북 지역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혁에 동참하자는 ‘개혁 대세론과 TK 대망론’을 열심히 전파했다. 16일 일본 총선을 지켜보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김의원은 돌아오는 대로 다시 대구 현지에서 막후 지원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구·경북 중진을 총동원한 민자당의 대구 정서 달래기에 맞서 야당 역시 총력전을 펴고 있다. 민주당 이기택, 국민당 金東吉, 새한국당 李鍾贊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대구 동을과 춘천 보궐선거에서 연합공천을 하기로 약속했다. 회담후 이대표는 “형식은 연합공천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민주당의 공천자가 3당의 공동 공천자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세가 취약한 만큼 민주당을 통해 ‘박철언 의원의 억울함’을 갚겠다는 게 국민당의 내부 전략이고, 민주당은 이 점을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보궐선거는 항상 의외성을 지닌 채 정국의 흐름을 갈라 놓는 변수가 되어왔다. 더욱이 이번 대구 동을 선거는 그 성격상 어는 보선보다도 더 의미심장한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한여름 복더위에 치러질 달구벌 보선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徐明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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