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킬레스건’ 언론개혁
  • 문정우 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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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의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도 언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김대중씨와는 달리 정치 공백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야당 정치인으로서 활동해온 지난 30여 년 동안 수많은 언론인과 지속적으로 교분을 맺어왔다. 김대통령이 정치 초년병 시절 설움을 함께 나누던 햇병아리 기자들이 이제는 각 언론사에서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김영삼 대통령이 대권을 잡는 것을 음으로 양으로 도운 것이 사실이다. 또 그들 중 상당수는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아예 보따리를 싸서 김대통령 곁으로 간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래서 현재의 정부와 언론을 ‘살을 섞은 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언론이 김대통령에게 항상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5공 시절 연금 상태에서 김대통령이 목숨을 건 단식에 들어갔을 때 언론은 철저히 그를 외면했다. 87년 야당 대표로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도 그는 언론의 편파성을 톡톡히 경험했다. 또 본질적으로 그가 30여년 동안 저항해온 군부세력이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언론이 큰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언론은 개혁 대상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김영삼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자리매김될지 큰 관심거리였다. 새 정부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난 지금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김대통령은 언론을 개혁의 도구로서 철저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언론인들과 잇따라 접촉을 가졌다. 3월에는 각 언론사 사장, 편집·보도 국장, 주필, 정치부장을 만났으며 4월에는 경제부장·사회부장·여기자·시사만화가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특히 시사만화가들과 만났을 때는 청와대 정문까지 배웅하는 특별 배려를 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취임하고 나서 과거의 어떤 청와대 주인보다 훨씬 많은 언론인을 만났다.   대통령은 이들 언론인과 만난 자리에서 언제나 “역사적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의 아름답지 못한 전력과 과거 비리를 밝혀내 장관 3명과 서울시장이 도중하차하게 하는 ‘불경’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언론은 김대통령의 주문에 화답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공직자 재산공개 때는 김영삼 정부의 개혁 이미지와 맞지 않는 문제 인물들을 제거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만약 언론의 도움이 없었다면 김대통령은 그들을 몰아내는 데 큰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대통령이 언론도 개혁 대상의 하나로 보고 환부를 도려낼 의지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취임 초기만 해도 김대통령은 확고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김대통령은 취임하고 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사이비 언론의 폐해를 지적했다.

 그러다 4월7일 신문의 날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언론의 문제점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는 4월6일 언론학자들과 가진 오찬에서 “발행부수의 80% 정도가 읽히지 않고 쓰레기통에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또 “신문이 남의 재산은 공개하면서 자신의 부수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모든 부분이 변하진 않을 수 없다. 신문의 공개도 시간 문제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다과회에서는 “신문들이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과당 경쟁을 하고 있다. 신문도 일요일은 쉬는 때가 빨리 와야 한다”고 말하며 신문사 간의 과열 경쟁을 비판했다.

사이비 지방 언론 척결엔 성과

 김대통령의 이런 의지는 오인환 공보처장관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표현됐다. 오장관은 4월17일 사이비언론 근절대책을 발표하는 한편 “미정간·미창간 간행물 등록 말소를 위해 정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장관은 이어 4월19일 신문 발행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혁에는 성역이 없다. 언론에 강요할 수는 없고 자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감면과 일요일 휴간을 주문하면서 처음으로 언론인도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는 뜻을 비쳤다.

 오장관은 4월23일 언론사 지방부장과 가진 오찬석상에서 언론인 재산공개 문제에 대해 한결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언론사주들이 그동안 언론이란 힘을 이용해 재산을 축적한 부분에 관심이 있다. 언론이 계속 재산 공개를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50여일을 참고 있다. 언론이니까 무지하게 참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을 개혁하겠다는 김영삼 정부의 의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뒤 한달 두달 지나면서부터 그런 의지는 현저하게 퇴색하는 기미를 보였다. 결국 모든 부문이 변했지만 언론만은 변하지 않은 형국이다. 발행부수 공개는 언제 실시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며, 언론사 사주들이 언론을 이용해 재산을 축적한 부분에 대해서 정부는 1백50일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저 ‘무지하게 참고’ 기다리고만 있는 모습이다.

 다만 사이비 언론의 척결에 대해서 만큼은 그동안 괄목할 성과가 있었다. 6월 현재 사이비 언론인은 모두 1백25명이 입건돼 그 중 1백1명이 구속됐다. 지방 언론사 사장·사주의 경우는 무려 12명이 구속됐다. 구속된 지방 언론사 사장 가운데는 전직 국회의원, 지역 상공회의소 의장 등 거물급이 많이 포함돼 있다(표 참조).

 사이비 언론을 척결하는 문제에서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측면이 있다. 사장이건 기자건 구속되는 사람은 지역 언론인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앙 언론에 문제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슬롯 머신 업계의 대부인 정덕진씨 형제가 구속됐을 때 그 비호 세력 가운데 중앙 일간지의 언론인이 다수 끼여 있다는 얘기가 수사당국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마땅히 처벌할 법규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돼 버리고 말았다.

 카지노 업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카지노 업계의 비리에 한 언론사 사주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전되지 못했다. 중앙 언론에 대해서 수사당국은 이런저런 소문을 퍼뜨리며 긴장감만 조성하고 있는 꼴이다.

“5·6공 언론인 추방하라”

 권영해 국방부장관 관련 보도로 <중앙일보> 관계자들이 권장관으로부터 피소됐을 때도 이중 잣대가 적용됐다. 발행인이나 편집국 간부들은 모두 무사하고 담당기자만 1주일 동안 서울구치소 신세를 져야 했다. 언론노련이나 한국기자협회에서 언론사 사주들의 비리를 수차례 폭로했으나 수사당국은 귀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원종 공보처 차관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정부가 언론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매우 유감된 일”이라고 말했으나,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만 보면 그런 얘기가 안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의 개혁이 아직 다 끝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현정부가 언론을 개혁의 도구로만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의 언론개혁 의지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날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사법부 소장 판사들의 개혁 촉구 선언을 계기로 언론계에서도 다시 과거 청산을 회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 돌렸던’ 정치 언론인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신과 5·6공 시절 권력 편에 서서 해괴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퇴진해야 한다면, 당시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보도를 했던 언론인들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6공 때는 언론계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노동조합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방법으로 정치 언론인들의 편을 들어주곤 했다. 언론계 노사 간에 단체협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언론계의 과거 청산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김영삼 정부의 선택이 무엇일지 지켜볼 일이다.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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