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분규, 끝내 벼랑에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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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3일로 예정된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 노동조합의 제2차 연대파업을 며칠 앞둔 19일 청와대의 분위기는 마치 폭풍 직전의 고요함을 연상케 했다. 이번 사태의 최대 분수령이 될 19~20일의 현대자동차 및 현대중공업 노사협상 결과를 예의 주시하는 한편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파국에 대비하는 분위기였다. “청와대로서는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한 관계자는 19일 현재 청와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과 내일 있을 협상력을 발휘해 주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는 희망 사항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희망사항은 19일의 현대자동차 노사협상이 결렬되고 뒤이어 노동부가 긴급조정권 발동을 서두르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좌절을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측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파국에 대비해 그동안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해 왔다. 노동쟁의조정법상 명문화돼 있는 긴급조정권은, 공권력의 직접 개입에 비해 법적인 절차에 따른 평화적 해결 방안이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검토돼 왔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후에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이다. 노동쟁의조정법에 따르면 노동부장관이 직권으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노사 양측은 20일 동안 쟁의 행위나 이에 맞서는 대응 행위를 못하도록 돼 있다. 또 이 기간에 전개될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과 중재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청와대는 할일 다했다”

 그러나 노사협상이 결렬된 첨예한 상황에서 노사 양측이 법적인 절차에 따른 문제 해결에 순순히 응하리라는 보장이 현재로서는 거의 없는 점에 청와대측의 고민이 있다.

 우선은 노조측에서 조합원들의 분위기에 떠밀려 총파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고 회사측도 이에 맞서 강경대응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나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로서도 공권력 투입이라는 ‘재래식 해결 방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 노사분규에 대해 청와대 측은 그동안 ‘문민 시대에 이해 당사자들의 대립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폭넓은 시각으로 보아왔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도 직접 개입보다는 이해 당사자 간의 대화와 타협이라는 새로운 방식에 의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노사분규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경제가 엄청난 손실을 입을 상황에 이르면서부터는 자율적 해결을 기대했던 청와대의 입장은 퇴색학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현대그룹의 노사분규가 낙후된 기업 문화와 노동 문화에 책임이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선진적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청와대의 최근 입장이다.

 청와대측의 이러한 초강경 입장은 지난 7월7일의 총파업 이후, 울산 지역 현대그룹 노사 양측의 분위기를 지배해 노사 양측 모두 청와대의 강경 조처에 의해 파국이 초래되기 전에 분규가 타결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회사측은, 문제가 생기면 노조측에만 책임을 묻던 그 전과는 달리, 회사측에도 일정한 책임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청와대의 초강경 분위기가 감지되면서부터 협상을 서두르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일 있었던 현대자동차 노사협상에서 양측은 마지막 입장 조율에 실패하고 말았다. 노사양측은 이 날 밤늦게까지 임금 및 단체교섭을 잇달아 열어 그동안 쟁점이 되었던 임금 인상 및 해고자 복직문제 등에 대해 마지막 절충을 벌였으나 끝내 서로의 입장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이 날 오후부터 긴급조정권 발동에 따른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정부는 20일 황인성 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열어 현대사태에 대한 정부의 최종 입장을 밝혔다.

 한편 노조 측은 현대자동차 노조의 21일 총파업을 필두로 그룹계열사 노조들이 예정한 대로 23일 연대파업을 벌일 가능성이 커져, 현대사태는 최악의 국면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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