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에 보내는 ‘공개 질의서’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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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는 깃발을 흔들고 있다. 그 깃발을 수식하는 표어는 ‘문민 정부’라는 네 글자다. 김영삼 대통령이 재야 시절에 노상 흔들던 네 글자 대도무문(大道無門)과는 억양이 사뭇 다르다. 문민 정부라는 말은 짙은 냄새를 풍긴다. 강한 정치적 상징어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7월 들어 문민 정부 홍보 강화에 관한 국무총리 훈령을 발령했다. 공보관 직제를 활성화하고 각 부처 차관이 홍보 계획·보도 자료, 기자 회견, 텔레비전 출연 등 정부 홍보 활동을 조정·감독하며 오보 여부에 대한 판단과 시정 조처까지 책임지는 체제를 갖추겠다고 한다. 김영삼 문민 정부가 사장 정국 4개월을 넘긴 후 수립한 언론 대응 정책이다. 문민 정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되 언론에 당당히 대응하고 오보에 단호히 대처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것이다.

 문민 정부란 무엇인가. 새로운 언론 정책을 보고 이런 물음부터 나온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통성과 도덕성 그리고 대표성을 갖는 것이 문민 정부라고 정의했다. 당초 김영삼 대통령의 대도는 정권 획득에 이른 큰길이었다. 그렇지만 대도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그 앞에는 새로 출발해야 할 대도가 다시 놓여 있다. 문민 정부를 자처하려면 개조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는 장치를 아직도 고장난 채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낭패할 것이 분명하다.

정보 자유화, 민주 大道의 핵심

 ‘민주주의의 시장 통화는 정보’라는 표현은 민주 대도의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도덕성의 근원을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두지 않는다면 무슨 문민 정부인가. 민주주의 통화 원리에 근거하지 않는 문민 정부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문민 정부의 흐름 장치는 아직도 5·6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정보 통제 장치’로 남아 있는 꼴이다. 김영삼 정부의 문민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병소가 관료제에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두려운 노릇이다.

 ‘관료 비리가 개혁을 망친다’는 현직 구청장의 고백 기사(《시사저널》 제 194호)가 공무원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들린다. 정부 각 부처 장관은 물론 홍보 업무를 맡은 공보 담당자들도 5·6공 식의 틀에 박힌 사고로 못된 관료주의 근성을 발휘하면서 개혁을 일그러뜨리는 모양을 우리는 체험으로 알고 있다.

 정부 각 부처가 국민에 대한 홍보를 위해 만드는 보도 자료와 브리핑 자료는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보도 자료, 홍보 자료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에 근거하여 요청을 받으면 언론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 차별 없이 제공하는 것이 문민 시대의 상식이 돼야 옳다. 이는 행정부의 도덕적 의무사항이 아니고 헌법에 명시된 법률적 의무사항이다. 헌법 제1조 제2항(국민주권의 원리)은 국정에 관한 의견 형성, 감시와 지지 및 비판, 과오의 정정 등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밖에 헌법 제21조 제1항(표현의 자유),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행복 추구권), 헌법 제34조 제1항(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헌법 제31조(교육을 받을 권리), 헌법 제22조 제1항(학문적 자유), 헌법 제8조 제4항(민주적 기본 질서) 등 여려 조항이 정보 수집의 자유와 권리를 지지하고 있다.

정부 부처, 공보 관행 뜯어 고쳐야

 김영삼 대통령은 7월14알 각 부처 공보관계관 조찬 간담회를 열어 “정부가 언론에 끌려가지 말고 정직하고 당당하게 대응하라” “언론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할 자유와 책임은 있지만 오보마저 신속하게 보도할 자유와 책임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문민 정부의 공보관은 부처 내의 가장 우수하고 능력있는 공무원으로 보임토록 한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다짐이 정부 각 부처 공보관료의 낡은 사고 틀을 얼마나 개조할지 아직 불안하다. 이 기회에 우리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과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중 모르는 각 부처의 나쁜 관행을 지적하면서, 문민 정부에 다음 네가지 사항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례 기자 브리핑이나 보도 자료 배포(특히 경찰청이 수사상 습득한 정보를 언론에 배포하는 것) 등 행정정보 제공을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한다’는 원칙이 있는가. 만약 원칙이 있다면 각 부처의 자체 판단인가, 아니면 공보처의 지침에 따른 것인가.

 둘째, 일부 부처 공보실 직원은 보도 자료를 ‘출입기자에게만 한정한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는 행정정보의 언론 공개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이것은 정부의 지침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출입기자들의 요구에 따른 것인가.

 셋째, 각 부처가 발행하는 출입증의 원칙·기준은 무엇인가. 만약 다른 언론 매체가 출입증을 요청한다면 발부해야 옳지 않은가.

 넷째, 정부 각 부처 청사 내에 있는 기자실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자실 비용은 어떤 예산에서 무슨 명목으로 지출하는가. 이 4개 항 질의서에 대한 문민 정부의 성의 있고 책임 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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