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버티면 쌀시장 개방 없다”
  • 남문희,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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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협상과는 무관…미국과의 쌍무협상일 뿐 방한 클린턴 ‘미소’ 의미심장, 밀실 흥정 막아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클린턴 대통령은 이번 한국 방문에 대해 ‘대만족,대성공’이라고 자평했다. 그래서인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방한 직전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선진 7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클린턴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초청 제의를 모두 물리치고 한국 방문만을 고집했을 때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한국 방문중에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협정을 서두르기 위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짧고도 바쁜 여정 중 클린턴은 우루과이 라운드나 쌀개방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방한 기간에 그는 주로 북한 핵 문제 및 신태평양 독트린을 발표하는 일에 심취해 경제 및 통상 현안과 관련해서는 뚜렷하게 챙긴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방한 성과에 대만족을 표시했다.

 클린턴의 미소에 담겨 있는 수수께끼가 풀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온 국내 농업관계 전문가들은 7월10일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중 한 항목에 그에 대한 해법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됐다. 이 날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여러 가지 합의사항 중에는 한국과 미국이 미래의 통상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경제협력대화기구(Dialogue for Economic Cooperation)’를 창설하는 데 합의했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 대화 기구는 겉으로 보아서는 그 책임자를 양국의 외무차관으로 지위를 격상하고 협의 범위를 금융 서비스 등 포괄적인 분야로 넓혔다는 점이 두드러질 뿐 그동안 있어온 한·미간 경협 관련 기구와 큰 차별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체가 다소 모호해 보이는 이 기구에 대해 농업 관계 전문가들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지난 7월4~7일 도쿄에서 열린 세계가족농 정상회담 석상에서 주로 미국측 참석자들로부터 클린턴 행정부의 새로운 통상 정책과 관련한 힌트를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가족농 정상회담이란, 현재 진행되는 우루과이 라운드내 농산물협상이 몇몇 세계적인 곡물 회사의 농간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전세계 가족농 단체 대표들의 정상회담이다. 이번 회담에는 13개국에서 23개 단체 대표가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한호선 농협중앙회 회장과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대표회의’ 집행위원장 김성훈 교수(중앙대·농업경제학), 소비자보호단체연합의 정광모 회장이 참석했다.

한국·일본에 ‘이중압력정책’ 적용
 미국측에서는 전국농민연맹의 스웬선 회장과 일본농협중앙회 고문이자 미국의 세계적인 통상 문제 전문가인 윌리엄 디바치씨, 미국 ‘사탕수수 및 땅콩 생산자 협회’ 고문인 토머스 카이씨가 참석했다. 이들 미국측 참석자들은 한국 및 일본 대표들에게 한결같이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이 타결되기 어렵다. 곧 타결될 것처럼 말은 하고 있지만, 사실은 각 해당 당사국과의 쌍무협상을 통해 미국의 통상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속셈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윌리엄 다바치씨는 우루과이 라운드와 쌍무협상을 병행하려는 클린턴 행정부의 전략을 ‘이중압력정책’이라고 불렀는데 그 우선 적용 대상은 한국과 일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정부가 새롭게 추구하는 쌍무협상이 차관급이 책임자가 되는 대화기구 형식일 것이라는 점은 최근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니흔 게이자이 신문> 보도에 의해 명확하게 밝혀졌다. 이 신문은 ‘최근 클린턴 행정부는 난항을 겪고 있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양국 간의 쌍무협상으로 전환할 것을 검토중인데, 한국·일본·캐나다와의 협상을 통해 개별 농업 분야의 타개책을 찾고, 그 성과를 지렛대로 삼아 농업협상 전체를 추진하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정황의 근거들을 살펴보면 클린턴 대통령이 왜 유독 한국 방문을 고집했으며, 방한 당시 우루과이 라운드나 쌀개방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돌아갔는지 그 이유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바로 차관급을 대표로 한 이 대화 기구가 쌍무협상을 통해 미국의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클린턴의 속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은, 지난해 연말부터 일부 국내외 농업 전문가들 사이에 꾸준히 제기돼 왔던 문제이다. 클린턴의 새로운 입장은, 지난해 연말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가 부시 대통령에게 농산물의 예외 없는 관세화, 즉 예외 없는 수입개방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던 던켈 사무총장의 초안을 더 이상 관철시키지 말고, 새 정부에 넘겨 달라고 요구하면서부터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올 연초의 클린턴 취임 연설에서 클린턴과 그의 새로운 농업정책 담당 관리들은 던켈 초안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 관심을 끌었다.

 미국의 농업평론가인 마크 리치씨(미국농업정책연구소 소장)가 일본 <농협 신문>에 발표한 기고문에 따르면, 올 연초 연방의회 연설에서 미키 켄터 통상대표부 대표가 특히 던켈 초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는데 ‘농업보조금을 삭감해 미국 농민들에게 부당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 사탕수수나 우유 같은 전통적인 수입제한 품목의 개방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 보조금을 삭감하는 기준 연도 설정에 따른 문제점’등을 주로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지난 수년 동안 미국의 농업교섭단장을 역임했던 조 오메라씨 역시 이 날 연설에서 던켈안이 지닌 문제점을 리스트로 엮어 발표했는데, 그 중에는 모든 농산물의 무조건적 개방을 담고 있는 예외 없는 관세화 조항을 폐기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던켈 드래프트라 불리는 던켈의 농산물 협상안은 미국을 위시한 케언즈 그룹(농산물 수출국 모임)이 제시했던 농산물 협상안(글로벌 디카풀링안)의 기본 골격에서 구체적인 적용 시기와 방법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그 골자는 첫째, 모든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화 즉 예외 없는 수입개방 허용 둘째, 각국의 농업진흥계획 포기 셋째, 농업 관련 생산보조금이나 수출보조금 삭감 및 철폐 넷째, 국경통과시 농산물의 검사·검역 기준 완화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클린턴 행정부의 새로운 농업 및 통상관계 고위 관리들이 지적한 문제점들은 던켈 초안의 핵심적 골격과 관련된 것으로 던켈안에 대한 새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협상에서 던켈 전 사무총장의 안은 부시 행정부에서는 미국의 국익을 잘 반영한 협상안이었다. 그런데 클린턴 정부에서 하루아침에 문제점투성이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한 국내외 통상전문가들의 지적은 한마디로 명쾌하다. 레이건-부시로 이어져온 공화당 정부에서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로 정권이 이양되면서, 미국의 대내의 농업정책에 대한 지지세력이 결정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협상안 창출자는 곡물 재벌
 공화당 정권의 대내의 농업정책에 대한 최대지지 세력은 미국 내에서도 주로 대기업농과 세계적인 거대 곡물 회사, 곡물 무역상들이었다. 이들은 △농업생산물이 공산품과 달리 무차별적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단순한 상품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식량안보 및 지역사회 유지, 환경보존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전통적인 가족농이나 소농들의 입장과 달리 농산물의 무차별적인 교역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이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국제무역 질서를 새롭게 확립하기 위해 47년 창설된 가트는 농산물에 대한 무제한적인 무역 확대가 각국의 식량자급 정책 및 식량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농산물 교역에 관해서만은 예외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이러한 정신은 수입제한을 허용하는 가트와 특별 규정 제25조(웨이버 조항)에 명문화돼 있다. 이조항은 가트에 가입하기 전부터 수입을 제한해온 농산물에 대해서는 가입한 후에도 수입제한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은 14개, 프랑스는 32개, 일본은 12개가 수입제한 품목으로 허용돼 있다. 그리고 대개 이런 품목은 각국의 가족농이나 소농 들의 고유 경작 품목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87년 11월 발표된 케언즈 그룹안은 자기 나라의 가족농과 소농의 생존 기반조차 철저히 묵살한 파격 제안이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측 대표로 참석한 한 협상 대표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의문을 품게 됐다. 미국이 주도해 내놓은 이 협상안에 대해 미국 국민들이 만족하고 있는지 어쩐지 궁금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을 방문해 농민과 농민 입장에서 주의회 의원, 그밖의 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미국의 제안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문자는 마지막으로 어느 거대한 곡물 재벌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그 회사 간부와의 대담을 통해 비로소 미국측 협상안의 출처와 지지자를 알아내게 되었다. 즉 미국의 다국적 곡물 재벌이야말로 가트에 제출한 미국측 안의 창출자요 숨은 실력자라는 사실이다.

 미국측 안의 실질적 작성자가 미국 곡물회사의 이익을 대표하는 인물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은 이미 87년 3월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로이터 통신은 이미 몇 개월전에 가트에 제출할 미국측 안의 골격을 정확하게 보도했다. 이와 함께 이 안을 작성한 사람이 미국 거대 곡물 회사인 카길사의 부회장이었던 대니얼 암스테드라는 인물이라는 점도 함께 밝혔었다.

 암스테드를 실무 책임자로 한 국제농산물 교역질서 재편 기도는 83년께부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공화당 실력자 중 암스테드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 뒷날 농무장관이 된 클레이턴 야이타이다. 이들 거대 곡물 회사의 대리인들의 그들의 구상을 일본의 나카소네 총리에게 뒤띔해, 그로 하여금 그들의 구상을 대변하게 하는 역할을 맡겼다고 한다.

 미국계 거대 곡물 회사의 치밀한 공작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들의 모임인 케언즈 그룹을 결성하는 과정에도 깊이 관여돼 있다. 케언즈 그룹이 결성된 것은 86년 9월 우루과이에서 1백8개국 대표 모임이 있기 약 3개월 전인 86년 6월이었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시 교외의 케언즈에서 있었던 이들의 조직자금 약 5백만달러를 미국계 거대 곡물 회사들이 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처럼 미국계 거대 곡물 회사의 장기간에 걸친 집요한 작업 끝에 나온 것이 케언즈 그룹안이고, 던켈 사무총장이 발표한 수정안은 케언즈 그룹안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제시한 농산물협상안에 대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공동체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격렬한 반대 운동이 전개돼 왔다는 점이다.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유럽공동체 국가들과 미국은 농업보조금 삭감을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또 미국 내에서는 주로 소농과 가족농 들이 중심이 되어 거센 저항 운동을 벌여왔다.

 현재 미국의 소농과 가족농 들은 약 25만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전국농민연맹(NFU)과 미국가족농협회(AFFA)에 소속돼 있다. 특히 1908년께 조직된 전국농민연맹은 미국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고 가장 많은 회원을 거느린 민간 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지만 90여년 동안 대외적인 정치 활동에는 거의 나서지 않았었다. 그러나 농산물협상이 거대 곡물기업들에 의해 왜곡되는 상황에 이르자,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UR보다 더 무서운 것이 쌍무협상’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이 두 단체는 민주당 클린턴 후보에게 △미국이 전통적으로 수입제한 품목으로 지켜온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수입개방을 하지 말 것 △그리고 농업에 대한 생산보조는 계속하되 수출보조는 줄여도 좋다는 것 △농업은 환경보호 효과가 크므로 대기업위주의 무차별 개발이나 무역 확대에 따른 개발 남발로 환경이나 생태계가 파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농산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검사와 검역 기준을 강화할 것 등을 골자로 하는 ‘7포인트’ 제안을 해 클린턴의 동의를 받아냈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는 이들 농민단체들의 강력한 지지가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클린턴이 선거공약으로 받아들인 ‘7포인트’는 그 발상의 출발점이나 구체적인 내용에서 거대 곡물 회사들의 입장을 반영한 던켈 사무총장안과 배치된다. 이런 이유로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곧바로 부시 대통령에게 던켈안을 관철시키는 것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했고, 올 연초부터 새 정부의 농정 담당자들이 던켈안을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비쳐온 것이다.

 국내외 통상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클린턴 정부에서는 던켈안에 기초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은 이미 물 건너 갔다는 판단을 계속해온 것이다. 그런데도 클린턴 정부는 아직까지 이런 입장을 대내외에 공식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곧 타결될 것처럼 계속 제스처를 쓰는 것이 자신들의 국익에 합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제스처와 함께 그들이 실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관계 당사국들과의 쌍무협상을 통해 미국에 유리한 형태로 농산물협상을 사전에 끝내버리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클린턴 행정부의 새로운 통상 전략을 예의 주시해온 국내 농업경제학자들 사이에는 ‘우루과이 라운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쌍무협상이다’라는 말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쌍무협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실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그 하나는 내년 3월1일까지 가트의 BOP(Balance of Payment) 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는 농산물 수입개방 목록이다. 우리 나라는 86~89년 간의 국제수지 흑자 이후 가트에 규정된 국제수지 적자국 조항(18조 B항) 해당 국가에서 국제수지 흑자국 조항(11조) 해당 국가로 변경되었다. 18조 국가에서 11조 국가로 바뀌면 그동안 수입제한을 할 수 있었던 많은 품목을 개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농산물의 경우 지난 90년부터 순차적으로 개방을 단행해 93년 현재 93.2%의 수입개방률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몇몇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1백42개 품목의 수입 개방 일정을 94년 3월1일까지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97년까지 완료하게 되어 있는 수입개방 절차가 끝나면 실제로 남는 것은 쌀과 보리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실정에 비추어 그동안 김성훈(중앙대)·장원석(단국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농업경제학자들은 지난 90년 이후 우리 나라가 국제수지 적자국으로 돌아섰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가트의 18조 국가로 복귀하기 위한 교섭을 다시 전개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외면하고 있던 정부에서도 최근 95년부터 97년까지로 예정되어 있는 농수산물의 2단계 수입자유화 조처를 늦추거나 예외를 인정받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정부내 개방 대세론자도 문제
 농업경제학자나 농민단체들이 BOP보다 더 위험한 요소라고 지목하는 것이 현재 정부내 일부 관료와 재벌기업 등이 주축이 된 수입개방 대세론자들이다. 정부 내의 수입개방 대세론자들은 주로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에 폭넓게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 밑바탕에는 이른바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한국농업 불가론이 짙게 깔려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농업은 투자에 비해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쌀시장 개방 문제가 협상의 걸림돌로 제기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가트 회원국 중에 한국과 일본의 쌀 문제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호주 두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쌀시장 개방 문제는 현재 미국과 한국, 미국과 일본의 쌍무관계 문제이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김성훈 교수는 “쌀개방 문제 때문에 우루과이 라운드가 좌초될 위기에 있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빌어 이 기회에 한국 농업을 안락사시키겠다는 음모가 깔려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또 장원석 교수는 “정부 내에 쌀개방 대세론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앞으로 본격화할 미국과의 쌍무협상에 대해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협상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밀실 흥정이 오고갈지 전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내 일부 개방대세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국내외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이 현명하게 버티기만 하면 쌀시장뿐 아니라 농산물 시장의 상당 부분을 지켜내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가트와의 재협상을 통해 국제수지 적자국으로 복귀하는 일이 시급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또 미국과의 쌍무협상에서도 이미 클린턴 행정부가 자국의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입 개방을 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우리도 형평성의 원리에 따라 같은 숫자의 품목에 대해 수입제한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번 도쿄 가족농 정상회담에 참석한 미국전국농민연맹의 스웬선 회장이 한국과 일본 대표에게 했다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양국 대표들과의 비공식 대화에서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굳게 버티기만 하면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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