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FBI 국장 “정치적 음해다”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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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통신

클린턴 미대통령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갈아치우는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우리 식으로 따져, 김영삼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교체하는 데 반년이 걸렸다고 생각해 보면 한결 빨리 이해할 수 있다.

 이토록 힘들고 신중한 인사인데도 썩 잘된 인사가 아니라는 평이 중론이다. 물러난 연방수사 국장이 특별히 잘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또 대통령의 인사 방식이 편협했거나 파벌 성을 띤 탓도 아니다. 우리 같으면 벌써 열 번은 더 바꿨어야 할 인물이었다. 연방수사국 윌리엄 세션스 전 국장이 저지른 죄목은 한마디로 공금유용이다. 그는 자기집 담에 특수방범용 전자장치를 설치하는 데 연방수사국 공금 1만달러를 썼다. 또 세션스 부부는 연방수사국 전용 항공기를 친척 집을 방문하는데 이용했다. 그는 리무진을 구입하면서 관용차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물지 않았으며, 그 차를 부인 앨리스가 미장원과 손톱 손질 가게를 오가는 데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입증된 비리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사정 대상이 되고도 남는 세션스 국장 경질을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 이후 6개월이나 뭉그적거린 이유는 단 한가지다. 연방수사국장 임기가 10년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션스가 지닌 개인적인 명성도 한몫을 했다.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 말기에 임명된 연방판사 출신인 그는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4년 동안 명국장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백인 위주의 연방수사국 안에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물론 여성 수사요원까지 대거 영입했다. 또 자칫 남용하기 쉬운 수사권을 엄격히 통제함으로써 미국 내외의 인권옹호론자들로부터 대대적으로 환영받는 인물이 됐다.

 클린턴 대통령으로서는 올해로 취임 6년째를 맞은 세션스 국장을 4년이나 앞질러 갈아치운다는 것이 큰 모험이었다. 더구나 엄격한 법 집행자로서 명성을 잃지 않아온 70년 역사의 연방사수국 총수라는 점에서, 잘못하면 정치 보복 인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대 연방수사국장은 본인의 뜻에 의하지 않는 한 임기 이전에 해임된 예가 없다. 이 점이 연방수사국의 정치 중립을 나타내는 상징적 관행으로 남아 미 행정부가 지금까지 세계에 드러내놓는 자랑거리가 되어 왔다. 이 관행이 깨진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한 지 만 6개월이 되는 7월21일 하오 세션스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귀하의 임무를 종료시킨다”고 통고했다. 또 4~5분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 “임무 종료는 지금 당장 발효한다”고 확인시켰다. 연방수사국이 법무부 산하 기관인 만큼 법무장관을 시켜 통보해도 괜찮을 경질 통보를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한 이유는, 세션스 본인이 대통령의 직접 해임 명령이 없는 한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노라고 다짐해왔기 때문이다.

 세션스는 그동안 법무장관을 통해 전달받은 클린턴의 사임 요구를 번번이 묵살하면서 해임되지 않는 한 사임하지 않겠다고 버텨 왔다. 권세가 탐이 나서가 아니라 연방수사국에 대한 정치력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법관 출신다운 신조를 안팎에 천명한 것이다. 이 신조를 결국 클린턴 대통령이 깨뜨린 셈이 되고, 이번 해임으로 연방수사국에 정치력이 개입한 책임 역시 클린턴이 지게 된 셈이다.

 후임 국장에는 판사 출신으로 뉴욕에서 검사와 연방수사국 요원을 지낸 43세의 루이스 프리가 발탁되었다. 클린턴 대 세션스로 대변되는 ‘정치’ 대 ‘법’ 사이에 벌어진 6개월 싸움이 일단 정치 쪽의 완승으로 판가름 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관행과 신조의 인물 세션스가 저질렀다는 비리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이 남아 있다. 장본인 세션스는 단언한다. “조작해낸 음해다.”그는 음해를 조작한 연방수사국 안의 인물로 자기 자리를 노리던 프로이드 클라크 부국장을, 밖의 인물로는 현역에서 물러난 부시 시절의 고급 관리들을 꼽는다. 현역시절의 비리가 들춰지는 것을 꺼린 부시 참모들이 그 비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세션스를 라인 밖으로 밀어내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또 세션스의 아내 앨리스의 반격도 날카롭다. “비리 내용 중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자존심을 먹고 살아온 우리 부부가 무엇이 궁해서 그따위 비리를 저질렀겠는가.”

 이 비리라는 것이 알고본즉 언론인 로널드 캐슬러가 집필중인 《연방수사국》이라는 저서 가운데 등장하는 미확인 사례로 밝혀진 것은 세션스가 해임된 지 사흘이 지나고 나서다.
 비밀 경찰 총수에 심복을 앉히고, 금고를 왕실 가까이 둔 절대왕조 유습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미 재무부(금고)가 백악관과 붙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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