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미국 병’ 한국 전시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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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 유색인종·여성 작가가 사회문제 여과없이 다뤄

한국은 미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러 매체를 통해 숱한 정보를 접하지만 그것은 결코 미국의 참모습일 수가 없다. 백인 우월주의를 바닥에 깔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나 신문·잡지가 보여주는 미국은 투명하지 않은 미국이거나 부분으로만 보이는 미국이다.
 7월31일~9월8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02-503-7744)에서 열리는 <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은 미국 사회의 진면목을 여과하지 않은 채 전면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4월부터 두달 동안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93 휘트니 비엔날레>는 그간 이 행사가 지녀온 나름의 전통을 산산이 깨어버렸다. 1930년 설립한 뒤로 67회에 걸친 전시회를 개최해 오기까지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미술이란 곧 백인 남성 위주의 미술이었으며, 이것이 국제 양식으로서 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형성했는데, 휘트니 미술관은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93 휘트니…>는 미국 사회를 사진 찍듯이 정직하게 반영하고, 유명 작가 위주에서 벗어나 20~30대 작가들을 대거 수용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엘리자베스 서스맨(휘트니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은 올해 비엔날레의 파격적인 성격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변화는 93년의 주제인 ‘경계선(The Border Line)’으로 드러난다. <93 휘트니…>는 그간 배제해 왔던 유색인종과 여성 작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여러 공동체 간의 문제 및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는 갈등을 다룬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인종차별·에이즈·동성연애·여성문제·환경문제 같은 미국 사회가 앓고 있는 병들의 증상을 짚는 작품들을 처음 수용한 <93 휘트니…>는 미국에서 ‘대학생 수준’ ‘백인 남성들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치부하는 기분 나쁜 전시장’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白南準씨가 주선해 사상 처음 미국밖으로 나온 <93 휘트니…>에 쏟아진 비판에 대해 기획사 서스맨은 ‘그동안 터부시해온 문제를 큰 미술관이 다룬 데 대한 놀라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2~3년 지나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전’ ‘일탈’ ‘파격’이라는 특징을 보인 미국 전시에는 82명의 작가와 단체가 참여했지만, 한국 전시에는 67명이 참여해 1백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은 작품의 내용 못지 않게 형식 면에서도 파격성을 보여준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원인이 되었던 로드니 킹 구타 장면을 담은 조지 할레데이의 비디오와 걸프전 기록 영상이 작품으로 채택되었는가 하면, 설치미술·사진·비디오·영화가 출품작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회화에는 캐빈 월퍼, 게리 시몬즈 등 8명이 참여한 반면 재현과 기록성이 뛰어난 사진이 소통을 위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 작가에 대한 제시 기회”
 <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을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崔泰晩씨는 “이 전시회는 미국이 지켜왔던 문화 색채를 포기하고 지금껏 숨겨온 개별 인종의 문화적 독자성, 곧 자기 정체성과 복합문화주의를 드러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그간 은폐되어온 그 문화들의 진정한 힘을 시험받는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 미술계 일각에서 제기된 ‘사대주의’라는 비판이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표피적이라고 지적한 그는 “한국 전시는 미술을 통한 사회적 발언의 방법에 대한 문제 제기와 논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정준모씨는 많은 경비를 들여 굳이 유치하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이라면서도 “<93 휘트니…>의 실험적 성향이 현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成宇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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