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개편은 국민만이 한다“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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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炯佑 민자당 의원

지금도 최형우 의원 주변에는 정치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몰린다. 아무런 직책이 없지만 그는 여전히 실세인 것이다. 자녀의 대학 부정 입학과 관련해 당 사무총장직을 내놓고 훌쩍 속초로 떠났던 그는 다시 부쩍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7월29일 여의도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공식으로 인터뷰에 응한 것은 장기간 칩거에서 돌아온 후로 처음이다. 재충천을 위해 경제와 역사를 공부하는 등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민주계와 민정·공화계가 대등한 입장에서 관계가 설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를 염색한 후 재미를 못봐서 다시 염색을 안 하느냐고 묻자, 그는 파안대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살기로 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제 ‘용장’에서 ‘덕장’으로, ‘투사’에서 ‘중후한 중진’의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최근 사람을 많이 만나시는데 어떤 이유라도 있습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무장관을 맡았었고,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을 치르고, 40일밖에 못했지만 사무총장을 맡는 등 근 2년 동안 한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오순도순 인간적으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초에서 두달 가까이 칩거하다가 서울로 돌아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옛 동지들을 만나 쌓인 얘기를 좀 나누었지요. 정치권 사람들과 만나서는 한마디로 말해 좀더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물론 사람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개혁이 지속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 운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이 적극적으로 개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이나, 그러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맹자 말씀에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이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원 각자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시간을 쪼개 많은 대화를 나눌 생각입니다.

김대통령의 지시 혹은 교감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요?
그 점을 많이들 물어오는데 말이죠, 제가 지난 30년간 김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셔왔습니다마는 반드시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것만은 결코 아닙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경들을 많이 겪으면서, 김영삼 총재님과 굳이 말을 나누지 않고서도 마음을 헤아려 밑에 있는 우리가 처리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김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교감은 있다는 말씀인가?
제가 알아서 하는 거지요. 다시 말하면 대통령을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정치적 재기를 위한 입지를 마련하는 목적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 자신 그런 시각을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입지 마련이란 말입니까. 저는 총장직을 내놓고 속초에서 칩거하면서 모처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어렴풋이나마 무심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모셔온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 것으로 저의 정치적 소망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김대통령에게 훌륭한 업적을 이루시게 하는 데 남은 힘을 쏟고 싶습니다. 요즘은 정말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매일매일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 행보의 시작이랄 수 있는 지난 7월9일의 민주계 인사 10여명 모임은 어떤 성격이었습니까?
그 분들과는 야당할 때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데모도 하고, 최루탄 냄새도 맡고, 닭장차에 실려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던, 사실 형제보다도 더 귀한 동지들입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저를 위로하러 속초까지 왔었어요. 그래서 한번 모인 거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잘해보자는 얘기는 굳이 모이지 않아도 서로가 절감하는 일 아닙니까. 저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김영삼 선장이 이끄는 배에 탄 공동운명체인데, 그분을 위해서 민정·공화계를 포용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분들도 모두 적극 동조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김윤환·이춘구·이한동 의원 등 민정계 중진들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서울에 돌아와 임시국회에 참석해 보니 당에 냉기류가 흘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여러 중진 의원들을 만났습니다. 저 같은 중진이 할 일이 뭡니까. 밥그릇 값은 해야지요. 사람은 역시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눠야 오해도 풀리고 정이 생겨 화합하고 단합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중진들은 모두 우리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공동운명체라는 데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단합해 김영삼 대통령을 역사에 남는 영광스러운 대통령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정치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또 이것이 국민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길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총장직을 그만둔 후 대통령을 몇번 만났습니까?
인간관계라는 것이 자주 만나도 미심쩍은 사이가 있고 만나지 않아도 한결같은 사이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대통령을 만났다 안만났다, 혹은 몇번을 만났다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려 총장직을 물러난 후 독대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안만나도 대통령의 구상을 알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만나지 않고 조용하게 물밑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전면에 나설 겁니까?
정치에 전면이 어디 있고 후면이 어디 있습니까. 또 정치는 장기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차를 두고 싶다고 차를 두고 포를 두고 싶다고 포를 둘 수 있습니까. 현실에 충실해 최선을 다한다면 제가 필요할 때가 올 수도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이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면에 나설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입각하실 거라는 말도 들립니다만.
한마디로 말해 사실무근입니다.

중국을 다녀오셨는데 한중의원연맹의 출범 시기는 언제이고, 연맹 출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제가 나서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지난번 중국 방문 때 그쪽 의회 지도자들과 만나 그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은 사실입니다. 금년 하반기에는 이루어지지 않겠나 예상합니다. 이번 중국 방문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것은 중국은 우리에게 있어 기나긴 역사가 아니라 닥쳐올 미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세계 경제의 블록화 추세나 한반도 통일문제, 또 급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와 관련해 중국은 우리나라의 장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경제를 중심으로 극히 부분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 교류가 필수적입니다.

중국 방문 때 중국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주용기 부총리를 위시해 강춘원 정치국원, 황국 상해시장 등 많은 요인을 만난 것으로 아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당초 개인적인 방문이었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들과의 대화 내용은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다만 그쪽 지도자들은 현정부의 개혁에 관해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중국 대륙 곳곳에 널려 있는 우리 문화의 흔적들을 돌아보면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또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도 일제치하에 중국에서 펼쳤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이역 땅에서 숨져간 독립투사들의 업적을 제대로 규명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중국의 조선족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서관에는 전부 북한에서 만든 책 뿐이었어요. 앞으로 책 보내는 운동도 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사무총장을 물러난 후 당이 더욱 위축됐다는 평들이 있는데, 당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당이란 회의체를 통해서 움직이는 거대한 정치 조직입니다. 한 개인이 잘한다고 당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지요. 문제는 팀워크입니다. 황명수 총장은 저의 오랜 동지이자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합니다. 황총장은 인간성으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당을 이끌기에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개혁 정국하에서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당을 잘 이끌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당의위상을 높이기 위해 보이지 않게 적극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앞으로 민주계와 민정·공화계는 어떤 형태로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늘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적어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는 민자당에 계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선거를 치른 후에 민주산악회도 해체했어요.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배출한 마당에 계파나 사조직이 용납될 수 있나요. 축구 경기를 예로 들자면, 옛날에는 각 포지션이 정해져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공격수가 수비도하고 풀백이 공격도 하는 등 ‘올 푸싱’형태입니다. 3당 합당으로 물리적으로 통합된 민자당은 이제 화학적 통합이 이뤄진 겁니다.

민주계와 민정·공화계의 관계가 대등한 입장에서 설정될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민주계가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고 민정·공화계 중에서 사람을 골라 쓰는 형국이 계속 될까요?
물론 대등한 입장이지요. 지금도 보십시오. 당 대표는 공화계고, 당 3역 중 사무총장·정책위의장은 민정계이고, 민주계는 유일하게 사무총장뿐이잖아요. 앞으로도 각자의 능력과 애당심, 애국심, 그리고 국민의 존경과 신뢰도에 따라 당직을 맡으리라고 봅니다.

정계 개편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정치인은 공인입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그를 뽑아준 유권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정계 개편이란 국민의 의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15대 총선에서 국민이 심판할 일이지요. 일본을 보십시오. 어디 정치인들이 정계 개편을 원해서 됐습니까. 국민들이 자동으로 (정치를 개편)해 버렸잖아요. 15대 공천도 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이뤄질 것입니다. 그 원칙과 기준이란 것이 무엇이겠어요. 우선 당선 가능성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15대 선거 전에 인위적인 정계 개편 움직임이 있다면 반대하시겠습니까?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단호하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당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얼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야당도 그래요. 개혁 세력이 민주당을 그만두고 무슨 명분으로 (민자당으로)온단 말입니까. 또 우리는 어떤 명분으로 정당을 해산한단 말입니까. 결국 선거를 통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덕룡 장관과의 알력설이 여전한데, 차기를 위한 경쟁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이야깁니다. 김장관은 저와 김대통령을 모시고 함께 고락을 나눈 동지 중의 동지입니다. 지금도 자주, 적어도 이틀에 한번씩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어려운 일은 서로 털어놓고 상의합니다. 김장관과 알력이 있다는 말이 흘러 다니는 것 자체가 어쨌든 나잇살이나 더 먹은 제가 부덕한 소치입니다. 더군다나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나 됐다고, 차기는 무슨 차기입니까. 저는 30년간 모신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됐으면 할 일 다했지, 우리 같은 사람이 그 이상 또 뭘 바라겠어요. 저는 김장관이 잘하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빈 마음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도 진솔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속초에서 50여일 은거하면서 특별히 느낀 점, 또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많이 느꼈지요. 이 시점에 왜 내가 이렇게 됐느냐, 왜 여기에 와 있느냐,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지난 30여년간 정치 활동을 하면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칩거하는 동안 처음으로 살아온 세월들을 곰곰이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천길 낭떠러지에 밧줄 하나만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치던 것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밧줄을 놔 버렸더니 그렇게 여유가 생기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비우니 비로소 바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매일매일이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습니다.

정치권 사람을 만나는 외에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제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세계가 변하니 정치인들도 공부를 하지 않고는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시대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학자들을 자주 만나 경제·역사·환경 문제 등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7년 제가 살아온 얘기들을 모아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속초에 있으면서 그 이후의 것들을 정리해서 보완하는 작업을 좀 했습니다. 8월 말쯤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또 최근에 손을 댄 일이 하나 있는데, ‘한·베트남 직업훈련원 후원 사업회’의 명예회장을 맡아 베트남의 전쟁고아와 한국인 2세를 후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인 2세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라의 체면과도 관련되는 문제라 온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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