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말의 성찬이 아니라 제도 확립이다. 우리는 원칙의 단순한 확인보다 확실한 실천을 바란다.”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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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처가 보내온 ‘공개 답변서’

국민의 알 권리 원칙에 따라 행정정보와 보도 자료를 민주적으로 제공하라고 촉구한 공개 질의(본란 7월29일자 ‘문민정부에 보내는 공개 질의서’)에 대해 공보처가 답신을 보내왔다. 공보처 공보정책실 협력1과장 이름으로 된 답변서가 팩시밀리로 도달한 것은 7월31일 낮 11시56분이다. 즉시 공보처에 이것이 공보처장관의 입장인지, 공보정책실장의 입장인지, 일개 과장의 입장인지, 아니면 문민 정부를 대변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므로 이 점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자, 공보정책 실장은 ‘공보처의 견해’라는 점을 전화로 밝혔다.

 우선 정례 브리핑이나, 보도 자료 배포 등 행정정보를 제공하는데 어떤 원칙이 있는가, 공보처의 지침이 따로 있는가를 물은 질의 첫 항에 대해 공보처는 이렇게 답했다. “그에 대한 공보처 지침은 없었으며 전적으로 각 부처의 보도 자료를 요청하는 언론사에는 필히 제공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행정정보 공개 원칙 소상히 밝혀
 질의 둘째 항은 일부 부처 공보실 직원이 보도 자료 배포를 출입기자에게만 한정한다고 강변하는데, 이처럼 행정정보 공개가 폐쇄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정부 지침에 따른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답변은 “이에 대한 정부 지침은 없었으나 문민 정부의 행정정보는 배타적·폐쇄적으로 공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 부처가 종래의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개방적이고 공개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이다.

 각 부처가 발행하는 출입증의 교부 원칙과 기준에 대해 물은 셋째 항에 대해서는 “출입기자나 출입증 역시 다른 나라에는 별로 없는 우리나라의 오랜 관행으로, 각 부처가 중앙 및 지방의 종합일간지·종합경제지·방송 및 통신 등의 기자에게 우선적으로 발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언론계 내부나 정부 안에서도 출입기자제나 출입증제의 문제점이 많이 지적되어 오고 있는 바이므로 앞으로 공동의 노력으로 근본적인 개선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다만 부실 언론사와 사이비 기자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행정의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는 기자의 무제한 출입이 반드시 바람직한가 하는 점, 일간지 못지 않게 독자에게 영향력을 가진 주간지나 전문지가 있다는 점 두가지를 고려하여 각 부처가 융통성과 신축성 있게 선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답변했다.

 질의 넷째 항은 정부 각 부처 청사 내에 있는 기자실은 어떤 예산에서 무슨 명목으로 경비를 지출하여 운영하는가를 물은 것이다. 답변은 “기자실 운영 비용은 종전에는 전액 정부예산으로, 언론의 취재 편의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공보관의 특별 판공비 등에서 지원해왔으나, 문민 정부 출범 이후 언론의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일부 부처는 출입기자가 경비를 부담하고 있으며 일부 부처는 전환 과정에 있어, 현재로는 전적으로 출입기자단이 자체 부담하는 부처, 출입기자단과 정부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부처 등 세부류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러나 앞으로는 전적으로 출입기자단이 자체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되어 있다.

공개 답신 보낸 자세 긍정평가
 우리는 정부가 홍보 강화에 관한 국무총리 훈령까지 만들어 공보관직제를 활성하는 이 때, 공보처가 공개 질의에 ‘공개적’으로 답신을 보낸 점을 평가한다. 또 언론이 지면을 통해 공개 질의를 하고 이에 대해 정부가 공개 답변을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문민 정부 시대에 언론과 정부 관계가 바람직하게 변화한 모습이다”라고 공보처가 규정하는 데도 이의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질의와 답변이 아니라 민주적 정보 공개를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 공보처는 ‘가급적’ 성의있고 책임있게 답변하겠다고 했는데 ‘가급적’이라는 표현이 결정을 담은 내용이 아니어서 아무래도 석연치 못하다. 4개 항에 대해 시종 ‘이러이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로 일관하여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인 점도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 문제는 언론이 내부에서 스스로 개혁해야 할 부분이 있어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보처가 각 부처의 행정정보를 통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도 이해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 부처 장관은 공보관을 임명할 때 공보처 장관과 사전 협의하도록 되어 있고, 공보처장관에게 각 부처의 공보 업무를 평가하는 일이 주어져 있으므로, 공보처의 공보 방침은 곧 문민 정부 공보 방침을 가늠하는 나침반이 된다.

 중요한 것은 말의 성찬이 아니라 제도를 확립하는 일이다. 정보의 과도한 집중이나 정보로부터의 소외가 얼마나 큰 병독을 우리 사회에 뿌렸는가를 우리는 체험했다. 그런데도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할 정보 공개의 제도화(정보공개법)는 아직도 궤도를 잡지 못한 실정이다. 이런 때 문민 정부가 먼저 ‘공보의 문’을 대담하게 여는 것은 상징적 뜻이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긴요하다. 우리는 민주적 원칙의 부분적인 확인이 아니라 민주적 원칙의 확실한 실천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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