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레저 보물단지 중국 가고파 미치겠다”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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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명성 해체는 위헌”

89년 3월16일 포승에 묶인 채 국회 5공특위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나와 4시간에 걸칠 증언을 마친 金澈鎬 전 명성그룹 회장은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기에 앞서 마지막 발언을 했다. 김철호씨의 발언은 야당 의원들만이 참석했던 청문회장의 분위기를 한때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제 저는 하늘이 없고, 태양이 그리운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명성은 반드시 법 절차에 따라 회복되어야 하고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4년 만에 김철호씨는 돌아왔다. 그는 10년 동안 수형 생활을 한 사람답지 않게 건강하고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부인 申明眞씨가 발행하는 〈크리스찬 신문〉사옥 4층 집무실에서 만난 김철호씨는 명성그룹의 ‘공중분해’ 배경과 사업을 재개할 것인지 여부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했으나, 관광레저사업에 대해서 만큼은 강한 애착과 의지를 보였다. 그는 “중국에 가고 싶어 미치겠다”라고 말했다. 〈편집자〉

15년형을 선고받고 10년간 옥살이를 하다 가석방되었다. 건강해 보이는데 옥중에서 특별히 건강 관리를 했는가?
건강해 보인다니 다행이다. 감사하다. 형량은 모두 17년2개월이다. 15년형에다가 벌금형인 79억3천만원을 낼 수 없어 환형하다 보니 2년2개월이 추가되었다. 장기수의 정신적인 고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무거운 마음으로 나셨다. 사필귀정이고 정의는 산다는 소신 하나로 버티었다. 10년 동안 단 한번도 의무과에 가보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매일 1만보 걷기를 했고, 겨울에는 저고리를 벗은 채 冷氣마찰을 했다.

독서를 많이 했다는데.
3천권 가량 읽었다. 성경은 하루 2백쪽씩 정독했다. 하루에 그만큼 읽으려면 최소한 20시간 걸린다. 처음 3년간은 3~4시간만 잤고, 그후에도 4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다. 사업하다 망한 사람이 옥에 들어앉아 있으면 현실을 이기지 못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이기 십상이다. 나는 앉아서 책만 읽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과거에 구상하고 추진했던 관광레저사업이 여전히 유망하다고 보는가?
우리의 자연은 더 아름다워졌다. 관광레저사업은 전문 지식을 갖출 대기업이 추진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제 단순한 유적 관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내가 구상했던 관광레저는 휴식하면서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족 단위 휴식 개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내 생각이 옳았다고 믿는다. 이제는 10년 전하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개발은 좋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많다.
무작정 깎아내고 건물을 지으니 그렇다. 레저타운 건설비의 10% 정도는 환경보존에 투자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외국에는 자연 속에 인조물이 들어서면 자연이 더 아름다워지는데, 우리는 정반대다. 인구가 1천만명일 때는 자연에 손을 안대고도 보존이 가능하지만, 4천만명이 넘어서면 휴식 욕구를 건전하게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서울을 봐라. 건전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우나 등 왜곡된 형태의 여가 공간이 음습한 땅 밑으로만 스며드는 것이다. 사계절 관광 상품이 널려 있는 우리의 여건을 활용해야 한다.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해도 되는가?
지금은 시만 쓰고 싶을 뿐이다(김씨는 수감중이던 87년 시〈지리산〉을 발표해《예술계》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출감 후에는 부인 신명진씨와 함께《벽오동 자란 세월》이라는 문집을 출간했다). 이제는 김철호가 문인으로만 기억되어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렇게 훌륭한  우리 자연 자원을 그대로 놔둔 채 자원이 없다고만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꿰어야 구슬이다.

구슬 꿰는 일을 본격 추진할 생각인가? 출감후 명성이 건설했던 레저타운에는 가보았는지.
가보지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기업은 인격체다. 양평·용인·백암·설악·지리의 4개 레저타운은 내가 출산한 자식들이다.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친자식을 고아원이나 친척집에 맡겨놓았다면 그 자식을 다시 껴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심정으로는 자식들을 만날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가석방 상태다. 때를 기다리고 있다. 10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대륙이 열리지 않았는가. 중국이 열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사실이다. 이제는 통일 전에라도 얼마든지 백두산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지금 달러가 없기 때문에 주로 구상무역을 원한다. 그런 중국 입장에서는 관광산업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좋은 기회다. 게다가 서양인들은 중국을 신비롭게 여긴다. 중국은 관광산업의 최적지다. 만리장성만 하더라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건은 똑같다. 관광자원으로 개발이 잘 안되어 있는 셈이다. 산간 교통수단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기업이 나서서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도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자금성 규모보다 더 큰 동경성 터와 세계적 규모의 광개토대왕릉이 있지 않은가.

중국을 관광레저사업의 새로운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말인데.
중국은 지금 기업가를 찾고 있다. 며칠 전에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중앙진흥회와 연변대학 조선문제연구소에서 세미나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물론 경제 개발에 관한 것이다. 가석방 상태라도 법무부장관의 허락이 있으면 출국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 중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헌법재판소가 국제그룹 해체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명성도 헌법소원을 제출하고 재심을 청구할 계획인가?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 과거 명성 관계자들이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 같은데 좀더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다. 그동안 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법률 검토를 끝낸 것은 사실이다. 회사정리법으로 명성을 한순간에 없앤 것은 생체해부식 정치 탄압이므로 명백한 위헌이다. 명성이 가장 억울한 경우다. 헌법소원을 하면 밝혀질 것이다.

83년 명성 사건 당시 李圭東씨 등 권력층의 비호가 있었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지난해 12월24일 5·6공 관련 인사들과 함께 특사로 풀려나왔더라면 그런 오해를 벗지 못했을 것이다. 5공의 특혜를 받았다면 어떻게 경제사범으로서는 광복 이후 최대 형량인 15년형을 받았으며, 10년간 옥살이를 했겠는가.

명성 사건을 정치탄압이라고 했는데, 탄압의 주체는 누구라고 보는가?
어둡고 불순한 세력이었다. 명성은 당시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특정 지역 출신 기업인이 급성장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명성을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증거가 있는가?
증거를 다 밝힐 수는 없다. 일부 권력층 인사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신흥 기업에 대한 견제가 심했다. 83년까지 명성을 잡지 않으면 못잡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기업 쪽에서도 그런 말이 흘러다녔다. 83년 당시 명성이라는 기업의 성장 속도가 여러 계층을 자극했다. 과거 사건보다는 화진포 해변휴양지나 지리산 케이블카 건설 같은 레저타운 건설에 다시 뛰어들고 싶다. 나와 명성에 대한 이해나 오해는 그대로 수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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