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공개, ‘질’이 문제다
  • 안병찬 편집주간 ()
  • 승인 199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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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공보 물량 늘었지만 취재 여건 개선 등 개혁 과제 산적

새 정부 들어 각 부처의 ‘광고 물량’이 눈에 띄게 들고 있다. 공보처에 따르면 3월부터 7월 초까지 25개 중앙 부처의 홍보활동 총 건수는 2천25건으로 6공 말기의 1천5백85건보다 28% 늘어났다. 언론에 대한 브리핑은 월 평균 1백1건에서 2백46건으로 1백43%나 늘었다(23쪽 도표 참조).

 가장 보수적인 조직으로 꼽히는 대법원도 ‘법원 홍보업무에 관한 내규’를 만들고 법원 행정처의 睦榮埈 기획조정심의관(38·사시19회)을 첫 공보관으로 임명했다. 목판사는 “법원이 하는 일과 실상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어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인터뷰 기사 참조).

 공보처의 權寧厚 협력1과장은 이같은 변화가 “국민의 알 권리를 더욱 존중하고 행정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지향하는 새 정부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전국언론노동조합(언노련)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홍보 물량이 늘었다는 것만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신장됐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한국기자협회(기협) 白중奎 차장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새 정부 들어 외형적인 흐름이나 경향은 분명히 정보 ‘공개’ 쪽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공개의 질이다.”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국민에게 홍보하는 수준이라면 그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취재에 필요해서 정부 모 부처 공보실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미 신문과 방송에 제공된 자료들인데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 부처 출입기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모 시사월간지에서 일하는 ㄱ기자(31)의 체험담이다. 정보 공개의 통로가 돼야 할 공보실이 오히려 걸림돌 노릇을 한 셈이다. 이러한 일은 비단 ㄱ기자뿐 아니라 《시사저널》처럼 ‘종합 일간지와 방송’이 아닌 언론 매체에 몸담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두번쯤 겪게 되는 수모이다.

“일간지·방송 아닌 언론사 차별대우 부당”
 《시사저널》이 공보처에 공개질의서를 낸 것은 이 같은 정보 차단의 벽이 새 정부 들어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완강히 온존하고 있는 데 대한 문제 제기였다(제196·198호‘시론’ 참조). 공보처는 《시사저널》에 보낸 답변서에서 ‘보도 자료를 출입기자에게만 한정한다는 지침은 없으며 요청하는 언론사에는 모두 제공한다’고 밝혔다. 공보처는 또 ‘일간지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주간지나 전문지가 있는데도 단순한 획일적 분류에 의해 출입을 제한받는 관행은 문제’라고 인정했다.

 권영후 과장은 그러나 ‘공보처는 언론에 대한 원칙을 세워 그것이 각 부처에 확산되도록 유도할 뿐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는 없다. 5·6공 시절부터 누적돼온 오랜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정부의 이러한 ‘공식 입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바로 기자실, 또는 기자단 문제이다. 기자실이란 기자들의 취재 편의를 위해 해당 부처에서 마련해준 공간이며, 기자단은 취재 과정의 ‘교통 정리’를 목적으로 출입기자들이 결성한 일종의 친목단체이다.

 기자단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91년의 ‘보사부 촌지 사건’에서 드러나듯 그것이 본래 취지를 벗어나 언론 부패의 통로 구실을 할 가능성이 있을뿐더러,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이익 집단화함으로써 기자단에 들지 않은 매체들에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鄭晋錫 교수(한국외국어대학·신문방송학)는, 언론 윤리나 사회 기능적 차원에서 볼 때 단지 신생지라거나 일간지·방송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일간지·방송이 국민의 다양한 입장과 견해와 이익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매체가 많이 나와야 하고, 또 그런 매체들이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의 출발점이 의식의 개혁에 있다고 한다면, 기자협회가 일선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밝은 전망을 보여준다. 기자협회 조사연구분과위는 지난 90년 7월과 91년 12월, 93년 2월 세차례에 걸쳐 기자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언론 자정과 관련한 의식 조사를 벌였다. 여기서 눈길을 끈 것은 기자단 해체 등 취재 시스템 개선에 관한 2차 조사에서 ‘기자단을 해체하고 기자실을 취재 편의를 위해서만 이용’하자는 의견이 62.8%로 나타나, ‘기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던 1차 조사(필요하다 44.6%, 필요없다 41.3%)때와 현저히 달랐다는 점이다. 특히 3차 조사에서는 ‘출입처별 취재 방식’(9.9%)보다 ‘기능·분야별 취재 방식’(66.7%)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나 《시사저널》의 질의에 대한 공보처의 ‘공개 답변’은 분명 개혁의 앞길에 밝은 빛을 던져주는 것이지만 단순한 의식과 修辭만으로 정보 공개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제도로써 구체화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이다.

 지난 7월12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가 보유한 여러 정보에 대해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정보공개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청원했다. 총 25개 항의 본문과 부칙으로 된 이 법안은 우리나라 국민과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외국인이면 누구나 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언노련에서도 올해 안에 정보공개법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연구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활발한 움직임과 달리 정부는 여전히 ‘검토중’이다. 총무처의 한 관계자는 “입안을 위한 분비 작업으로 외국 사례를 연구중”이라고 밝혔다. 새 정부의 개혁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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