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거품 경제’ 터지기 직전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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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적자·물가고에 금융혼란까지…불만 고조, 곳곳에서 농민 봉기

서양의 주요 언론은 최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중국에 관한 대형특집을 쏟아냈다. 미국 경제지《비즈니스 위크》는 중국을 ‘경제 거인’이라며 대서특필했고《타임》은 ‘차기 패권국’이라며 한껏 치켜세웠다. 파리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중국은 1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다’라고 단언했고, <뉴욕타임스>는 아예 ‘이미 중국은 독일을 앞서는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이라고 선언했다.

과잉 예찬 속에 ‘신황화론’ 숨어 있어
 서양 언론의 중국 붐을 ‘新黃禍論’이라고 경계하는 시각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이들을 자극한 것은 세계은행이 내놓은 <세계경제의 전망과 개발도상국>이란 보고서이다. 세계은행은 지난 5월 실질적인 구매력 기준으로 평가하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일본 다음가는 세계 제3대 경제대국이라고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백70달러밖에 안되는 가난뱅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중국의 1인당 실질 구매력이 1천6백80달러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전통적인 환율 평가 방식과 새로운 구매력 평가 방식 간에 이런 극단적인 차이가 나타나는 일차적인 이유는 경제 통계가 갖는 모순과 한계가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급성장을 거듭해온 중국 경제는 그 내용도 두개의 극단적인 얼굴로 나타난다.

 소련을 위시한 옛 공산권이 무너진 탈냉전의 도도한 기류 속에서, 중국은 오히려 공산주의 체제를 더 공고히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12.8%라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달성했고, 올 상반기에는 13.9%를 기록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가 경기 침체기에 빠져 있는데도 중국의 공업 생산량은 78년 이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국유 부문의 고정자산 투자는 작년에 비해 61%나 늘어, 올해 투자할 총액은 중국 경제 규모의 절반에 맞먹는 1천7백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될 추세이다. ‘자본주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세계 최대 사회복지 국가에서 최대 이권을 보장 받는 공산당원의 인기도 나날이 치솟아 공산당 입당원서는 올해 들어 20%가 늘었다. 중국공산당 당원 수는 현재 5천2백만명에 이른다.

 투자와 함께 교역량도 급속히 늘어났다. 한국과의 교역을 보면 추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교 1년 만에 중국은, 홍콩을 통한 간접 교역액을 빼고도 한국의 세 번째 교역상대국으로 떠올랐다. 이런 성장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0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한국 재무부의 진단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사회주의 골격은 바꾸지 않은 채 외국인 투자가 주도하는 급격한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수반한다. 주행 능력 이상으로 달리는 자동차 엔진은 열을 받게 되어 있다. 홍콩의 한 증권 회사는 최근 내부보고서에서 중국 경제를 이렇게 평가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구조 조정은 반드시 문제를 야기한다. 이 간단한 경제 원리에 중국이 예외일 수는 없다. 문제는 등소평 한 사람만이 중국 경제가 과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 CIA “천안문 사태 때 상황과 비슷”
 그러나 12억 인구의 나라 중국의 경제 과열은 단순히 중국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진짜 심각성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최근 의회에 중국 경제에 관한 동향 보고서를 제출했다. 중앙정보국은 이 보고서에서 ‘성장이 너무 급속히 진행되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진전되고 있다’며 정치 불안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고속 성장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대표적인 경기과열 현상을 초래한다. 최근 중국의 인플레이션은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 도시 생활비가 20%나 올랐다. ‘경기 과열로 인한 부작용이 등소평의 건강이 악화된 미묘한 시기에 발생하고 있다’고 중앙정보국은 지적했다.

 승승장구하던 수출 전선에서도 중국은 갑작스런 적신호에 부닥쳤다. 올해 들어 중국의 무역 적자는 확대일로여서 상반기에만 35억4천만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홍콩 베어링 증권에서 중국 경제를 분석하는 아나벨 베츠씨는 “무역 적자는 올 하반기에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지금의 중국 경제 상황이 천안문 사태를 촉발한 지난 88년의 경제 상황과 비슷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때와 지금의 중국 경제 상황은 △비정상적 고도 성장 △천정부지의 물가상승 △급격한 수입수요 확대 △금융질서 문란 △국가재정 위기라는 유사점을 보인다.

 극심한 금융질서 혼란으로 농민에게 추곡수매가로 지불한 어음이 현금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지방 정부의 부패와 관련 깊은 금융 무질서는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대륙 곳곳에서 농민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중앙정보국은 최소 13회 이상의 대규모 농민 봉기가 있었다고 의회에 보고했고, 베츠씨는 시위 수가 2백회를 넘었다는 정보가 홍콩에 나돌고 있다고 전한다.

 럭키금성상사 芮載富 중국팀 부장은 “농민 시위는 개발의 혜택을 못받고 있는 내륙지방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농민들의 불만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중앙 은행인 중국인민은행 李貴鮮 행장을 해임하고 朱鎔基 부총리가 행장직을 겸임토록 했다. 베츠씨는 중국 정부의 노력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아직 효과가 나타날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갓 벗어나기 시작한 중국에는 아직 경제를 통제할 만한 재정 금융 정책 수단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체제 자체를 자본주의로 바꾸지 않고 시도한 ‘자본주의 실험’이 그만 정도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브레이크와 핸들이 없는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고온 셈이다. 중국 국가계획위원회는 주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금융질서를 바로잡을 강경 조처를 내놓고 있다. 강력한 긴축정책과 자금통제가 시작되고, 은행 대출자금마저 회수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중앙 은행은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중국은 우리에게 위협과 기회”
 당면한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이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을 아직 긍정적으로 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鄭永祿 북경지원장은 “1단계 개혁은 일단 성공했다고 본다. 좀더 자본주의 체제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2단계 개혁으로 넘어가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가 지금의 경기 진정책에 숨어 있다”라고 해석했다. 위기관리 능력이 있고, 대책도 충분히 강구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베츠씨도 어쨌든 생활 수준이 나아지고 있으므로 천안문 사태와 같은 정치 불안은 없으리라고 내다본다.

 중국을 보는 이웃 나라 일본의 시각은 중국 경제의 현상처럼 극단적인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양분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부정하는 뒤편에서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정박사는 지적했다. 통계를 보면, 지난 91년까지 일본은 중국 투자에 이상하리만큼 소극적이었다. 한 해 평균 4억달러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92년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투자는 22억달러로 갑자기 폭증한다. 최근 《타임》은 중국 특집에서 “일본 국내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91년에 비해 3배이상 늘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타임》은 일본 기업이 경기 침체 때문에 오히려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으로 대거 몰려갈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요인은 보지 못했다.

 지난 15년간 중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것은 외국인 투자였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는 저임금을 노린 경공업 수출산업에 집중되었다(한국의 투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중국 공업 생산량의 55%를 차지하는 중화학공업은 공산주의식 경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국영기업이 맡고 있다. 이들 국영기업이 도시 노동자의 70%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중국 사회주의는 사실상 국영기업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 원리가 조금씩 도입되면서 이 덩지 크고 둔한 국영기업은 생존경쟁에서 뒤지고 있다. 경영 악화는 계속되고 정부는 막대한 지원금을 지출한 까닭에 재정이 바닥난 지 오래다. 중국 경제의 미래와 공산당의 진정한 과제는 이 국영기업을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 시키는가로 집약된다. 중국이 21세기 강자가 될 것인가 아닌가는 사실상 이 문제의 성패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실 국영기업에 대한 ‘개혁’은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이다. 외국 투자가들은 작년에 총 1백10억달러를 중국에 투자했다. 그러나 중공업 부문의 국영기업에 대해서는 모두가 등을 돌렸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요구되는 중공업 부문에 투자하기에는 그 누구도 중국경제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박사는, 변화하는 세계 경제질서 속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위협’과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고 표현한다. 중국과의 교역 규모는 지난 90년 28억달어였다. 올해에는 그 3배가 넘는 1백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은 우리와의 교역 물량만으로도 국내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중국 경제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한국 경제는 어떤 형태로든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중국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 중국에 무엇을 팔고 어떤 투자를 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한·중 수교 1년 만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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