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자 입장 변함없다”
  • 김춘옥 부장 ()
  • 승인 1991.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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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乙炳 신임 성균관대 총장

정치학 교수로 활발한 재야 정치활동을 펴온 張乙炳 교수가 성균관대 총장이 됐다. 1월25일 참석 교수 1백90명 중 1백32명의 압도적 지지로 총장으로 선출된 장교수는 몇 안되는 ‘운동권 출신’ 총장의 한 사람이다.

자아총장은 3선개헌 때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해 80년에는 신군부의 권력장악 음모를 비판한 1백34인 지식인 선언문 작성과 관련, 해직당했다가 84년 복직한 바 있다. 장총장은 또 작년 말까지 야권통합을 위해 현실정치에 참여했다(‘통추위’ 간사).

●총장이 된 뒤로 무척 바쁘시죠?
전임 총장의 임기만료일이 2월19일 자정인데 제가 총장임명 통지를 받은 것이 19일 오전 11시여서 거의 아무런 준비없이 바로 집무에 들어가 계속 격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교수들의 총장선출 투표일이 1월25일 이었던가요?
임명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과거 민주화운동에 종사한 것 때문에 이에 대한 재단측의 반작용이 조금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학을 종국적으로 맡아야 할 재단으로서는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야권통합을 활발히 추진하셨는데 이제 총장에 입후보해서 임명까지 됐으니 ‘체제내화’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일부 언론에서는 ‘변신’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저는 그릇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저는 항상 비판자로서 소수의 입장에 서려고 했습니다. 미국의 언론인 월터 리프만은 이를 “항구적 소수파”라고 표현한 적이 있지요. 그는 언제나 소수파, 비판자의 입장에 서려고 했으며 사회가 잘못 흘러갈 때는 이를 교정하려고 노력한 사람이지요. 꼭 이를 흉내내려 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이끄는 주도세력은 다수지만 사회를 교정하는 역할은 소소 비판자의 몫이라는 전제 아래 저는 항상 스스로 소수의 입장에 서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성균관대 총장이지만 비판자로서의 입장에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총장직은 ‘항구적 소수파’와는 배치되는 자리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 두가지에 저도 갈등을 느낍니다. 한국사회 전체로 보자면 저는 항구적 소수파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성균관대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다수파를 대변하고 있고 또 대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균관대에 관한 한 저의 위상에는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있죠.

●총장선출 방식을 둘러싸고 학생들의 반발이 심했었죠?
대학은 교수 학생 직원의3요소로 이루어집니다. 무조건 학생과 직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결정권은 교수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역할의 차별성 때문입니다. 원래 저는 교수5 직원1 학생1의 비율로 총장후보를 추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교수15 직원1 학생1로 됐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불만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총장으로 임명된 후 이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습니다.

●학생들이 장총장을 신뢰한다고 보십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자화자찬일지 모르지만 제가 그동안 민주화투쟁을 해왔고 소수파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학생들이 저를 우군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만큼 학생들은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겠습니까?
제 나름대로 교육의 지표로 삼고 있는 것은 ‘자율적인 질서의 수립’입니다. 위에서 밑으로 내리누르는 기능은 상실되고 밑에서 무절제하게 끓어오르는 힘이 횡행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학원의 현실입니다. 그런 상향적 힘의 무절제한 폭발현상은 올바른 질서가 아닙니다. 그 속에서는 가치관이 정립이 어렵고 가치의 기준이 확립될 수도 없습니다. 혼란과 제한 상향적 힘의 폭발을 조절하고 타협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통해 이루어낸 질서, 저는 이것을 ‘자율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교수와 학생들간에는 단순한 세대차이만은 아닌 깊은 불신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초반 교수들 사이에는 “이 손을 어찌하오리까”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돌았습니다. 시위가 벌어지면 학교 당국은 교수들을 현장으로 내보냈는데 팔짱을 끼고 있어도, 뒷짐을 지고 있어도 학생들로부터 야유를 받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요. 많은 교수들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자신을 처량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회를 유지ㆍ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권위가 필요합니다.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도 “목욕탕에서는 설교의 효과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왜냐하면 교육의 효과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차별성 속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권위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마치 전통과 전통주의가 다른 것이듯이 말입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교수들이 자기의 소신을 밝힐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고 그에 따라 무너졌던 귄위도 회복되고 있다고 봅니다.

●‘운동권 출신’ 총장으로서 운동권 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제가 운동을 할 때는 ‘지지기반 확산’이라는 분명한 구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야만 그것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운동의 목표는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지기반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학생운동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말씀입니까?
아직 우리나라에는 민주화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비해 학생이 나서야 할 영역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가령 이번 수서사건 같은 때 ‘나서준다’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만 떠들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과격한 이데올로기 편향적 학생운동은 안됩니다. 이영희 교수도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저버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야권통합을 외치면서 ‘통추위’ 간사로 활동하셨는데 야권통합이 실패로 돌아간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당시 정치 지도자들은 이기심 때문에 대체세력을 만들지 못하고 국민의 여망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지금 그같은 활동과는 완전히 결별한 상태입니다.

●교수의 현실정치 참여는 많은 얘깃거리를 낳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현실정치에 상당히 깊이 개입되어 있어 이점이 이번 총장선거에서도 저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교수의 정치활동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총장선거 때 저는 “만약 총장직을 맡게 되면 정치활동을 일체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다만 변명을 한다면 제가 하는 학문이 정치학, 특히 한국정치론이고 민주주의 확립을 한국정치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저는 민주화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운동을 한 적은 있지만 결단코 정당활동을 한 적은 없습니다.

●현실정치에서 추구하는 이념은 무엇입니까?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이 나라가 유지ㆍ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와 독재의 구분 기준은 비판기능의 활성화 여부에 있습니다. 정치는 권력현상이기 때문에 잘못이 저질러 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과욕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잘못은 비판기능의 활성화를 통해 시정할 수 있습니다. 비판기능은 과오를 시정하고 사회병리를 자기 수정하는 수단입니다. 독재사회에서는 비판기능이 봉쇄됩니다. 그래서 정치에서의 과오가 시정되지 않고 자기수정 메카니즘은 붕괴됩니다. 독재는 자기과오의 누적 끝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盧泰愚 대통령은 그러한 민주주의 이념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말로는 열심히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외친 만큼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치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국민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저는 우리 국민이 일정수준에 올랐다고 봅니다. 문제는 지배층에 있습니다. 국민들이 겉으로는 우매하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모두가 좌절해 있을 때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국민입니다. 지난 85년 2ㆍ12총선을 통한 자생야당의 탄생을 누가 예상이나 했습니까. 저는 국민과 지배층의 괴리는 정치문화의 이원구조 때문에 생긴다고 봅니다. 대중의 정치문화는 복종형에서 소극형, 참여형으로 성장해나갑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지배계급의 정치문화는 지배형에서 조작형, 순응형으로 바뀌어갑니다. 즉 대중의 정치문화가 참여형으로 성장함에 따라 지배계급의 정치문화는 순응형으로 바뀌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민중도 없어지고 국민이라는 테두리속에서 지배-피지배의 자동적 원리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양자의 정치문화가 따로 놀게 되는 저항적 민중단계에 머물면서 양자를 이어주는 고리가 없습니다. 대중의 수준은 거의 참여형에 도달하고 있는데 지배계급의 정치문화는 말로만 순응형이라고 할 뿐 여전히 조작형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자간에 괴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요소입니다.

●교수가 안됐으면 정치가가 됐을 것 같은데…. 20대 초반에 품었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때는 정치에 뜻을 두었었죠. 그러나 제가 정치를 했다면 틀림없이 실패했을 것입니다. 대개 정치판을 “까마귀 싸우는 골”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교수들은 대부분 ‘백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를 하려면 백로의식을 버려라. 그렇다고 까마귀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비둘기 정도만 돼라”고 말합니다. 교수들은 대개 이 ‘백로의식’ 때문에 견뎌내질 못합니다. 그동안 수없는 권유와 유혹이 있었지만 저는 결단코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습니다.

●대개 20대의 급진주의자가 30대에는 진보주의자, 40~50대에는 개량주의자의 길을 걷는다는데 장총장의 경우도 그렇습니까?
제가 20대일 때는 냉전논리가 풍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급진주의자는 분명 아니고 개혁론자입니다. 저는 영국과 프랑스 정치사를 공부하면서 영국형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는 1789년 혁명 이후 15번 이상이나 정체가 변경되었습니다. 영국의 경우 명예혁명 이후 한번도 정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의 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제가 이렇게 온건한 점진적 개혁론자인데 당시와 같은 반동의 시대에는 제가 급진론자로 규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개량주의자는 아닙니다. 여전히 비판자의 입장을 견지하려고 노력하니까요.

●사립대 총장으로서 재단과의 관계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이 있습니다. 성균관대는 전통이 깊은 학교인데 최근 10년간 상당히 낙후됐습니다. 여기에는 캠퍼스가 이원화되어 학교가 엉성해진 이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요인 가운데 재단의 지원이 미흡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남의 탓으로 돌리고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지원이 없으면 정부와 상의해 차관이라도 받아내자는 입장입니다. 그 외의 문제는 별로 없습니다. 요컨대 학교시설 확충과 자율질서의 확립, 이 두가지가 과제입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입시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대학별로 자율화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대학은 자율적으로 입시를 감당할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혼란이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자율화의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80년대 초반 정부가 대학의 자율능력을 빼앗았지요. 얼마전 교육부장관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도 대학입시는 자율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총장이 된 후 생활이 많이 달라졌습니까?
피곤해 죽겠습니다. 저는 교수직의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로운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총장이 된 후, 비록 제가 택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제 자유를 속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12월 이래 원고도 못 쓰고 책을 볼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10여년 동안 매년 3천매 이상의 원고를 써왔는데 당분간은 힘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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