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 의심받는 언론의 수신제가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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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연말 5공청산의 회오리는 언론계에도 불어닥쳐 언론인 구속ㆍ고문, 대량 강제해직, 언론통폐합, 보도지침 등 언론말살의 실상이 국회청문회 도마 위에 올랐다. 이와 함께 언론계 내부에서도 지난시대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정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경향신문ㆍ한국방송공사ㆍ문화방송 노조 등은 사내비리척결특위를 결성해 기자해직 내부협력자, 왜곡보도 책임자, 권력형 특채자를 색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또 일선기자들 사이에서는 독재정권으로부터 받아온 각종 특혜와 촌지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관변보도의 본산’이라고 비판받던 기자단이 일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여. 수서사건이 터졌다. “뚜껑을 열고 보니 거기엔 5공언론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ㅈ일보 기자의 말대로 언론은 변한 게 없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서울시청 기자단이 지난해 7월가 9월 두차례에 걸쳐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는 사실뿐이지만 “일부 언론사 간부들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이 살포됐다” “한보의 언론로비 자금은 5억원에 달한다” “80여명의 언론인이 돈을 받았다”는 등 소문은 꼬리를 물고 있다.

그렇다면 3년 전 ‘혁명적 분위기’속에서 일어났던 언론자정운동은 결국 말 잘하는 언론인들의 말잔치로 끝나고 만 것일까.

88년 언론자정운동에 불을 당긴 경향신문 노조에서 사무장으로 있다가 해직된 朴仁奎씨(기자협회 편집국장)는 “촌지수수는 물론 변명할 여지없는 잘못이다. 그러나 그동안 기자들은 자정을 위해 힘을 모을 겨를이 없었다. 자정운동을 이끌어갈 노조를 지키기에도 힘이 벅찼다”고 말한다. 박씨는 “공안정국과 3당통합을 거치면서 5공청산과 함께 5공언론 청산도 물건너갔고 그 과정에서 언론노동운동이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 기자들이 자정의지도 시들어버렸다”고 말한다. 언론자정운동을 이끌었던 경향신문ㆍ조선일보ㆍ중앙일보에서는 노조를 중심으로 기자단 탈퇴, 촌지수수 배격 등 구체적 실천사항이 포함된 윤리강령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 문화방송 노조는 수서추문에 관련된 시청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3월5일자 노보를 통해 촌지수수 과정과 액수를 밝히고 “촌지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자정운동이 실효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기자들조차 회의적이다. 언론풍토가 깨끗해지려면 우선 사주가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사회적 경비(국민세금)로 신문을 제작하던 시대가 지났음을 역설하며 취재경비를 지불하라고 요구했으나 회사쪽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론사 사주나 간부가 정ㆍ재계와 연계하여 이권을 얻으려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신시절 방송사 경영을 맡았던 한 인사는 언론관계 세미나 석상에서 “언론사나 언론사 사주가 정부로부터 받는 특혜는 적지 않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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