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산 넘자 또 산
  • 모스크바.김성호 (자유기고가)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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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투표 이후’ 신연방 규정 조약 ‘입법전쟁’ 시작될 듯

 지난 17일 실시된 蘇연방 국민투표는 최종집계 결과 유권자의 80%가 투표에 참가했고, 투표자의 76%가 연방제유지에 찬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에서는 90%이상이 투표에 참가했으며 러시아공화국의 경우 몰고그라드?칼리닌그라드?몸스크 등 대부분의 도시에서 70% 이상의 투표율과 엇비슷한 수치의 지지율이 나왔다. 모스크바에서는 68% 투표율에 과반수가 연방지지, 러시아공화국 직선대통령제에는 78% 찬성, 레닌그라드의 경우 65% 투표율에 연방지지 61%,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제 도입 찬성 76%를 보였다.
 
소련 최초의 국민투표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발트3국과 몰다비아?아르메니아?그루지아 등 6개 공화국에서는 ‘숫자놀음’에 동참할 수 없다며 선거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다(표 참조). 그대신 중앙정부가 현지에서 직접 강행해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가 실시됐는데, 이는 아직 각 공화국정부가 그 위치를 확고히 굳히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러시아공화국의 경우 국민직선에 의한 공화국대통령제 도입 여부 질문이 투표자에게 제의 됐으며, 모스크바에서는 시민 직선 시장제도에 대한 물음도 덧붙여져 모스크바 유권자는 3가지 투표용지에 한꺼번에 답해야 했다.

 이는 사실상 현 러사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 보리스옐친의 신임을 묻는 선거였다. 고르바초프는 투표당일 내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투표결과를 존중하겠지만 이 법안은 예를 들어 공화국대통령이 군통수권을 갖는다는 등 연방개념에 어긋나는 ‘위험한 발상’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고르바초프의 사퇴를 촉구하는 텔레비전 인터뷰 이후 옐친은 현재 공산당으로부터 혹독하게 공격을 받고 있다. 3월 28일로 예정돼 있는 러시아공화국 임시의회에서 옐친을 의장직에서 몰아낼 준비가 한창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간부회 구성원31명 가운데 6명이 옐친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가가 주목된다.

 러시아공화국의 투표결과는 당장에는 이 의회분위기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러시아공화국 투표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연방존속안과 옐친의 러시아공화국 직선 대통령제 도입안이 모두 통과됐다. 따라서 러시아공화국은 앞으로 연방정부를 인정한고 협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의 ‘강력한 중앙과 들러리 공화국’의 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합정부 형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러한 형태는 앞으로 드러날 연방조약에 달려 있고 그것은 곧 새로운 ‘입법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민투표 결과는 어느 측에나 그 전쟁터에서의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일부 공화국 “우린 연방과 상관없다”
 앞으로 ‘신연방’을 규정하는 이 연방조약이 확실히 골격을 갖추지 않는 한 각 공화국은 자기 살길 마련에 나설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자신들의 운명이 ‘연방과 전혀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공화국들과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국경문제 등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상황을 진단하고 있는 중이다. 백러시아?카자흐?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은 4개 공화국 연방도 계획하고 있다.

 1억2천만루블을 들여 실시한 이번 투표는 그동안 정치권 내부에서만 증폭돼오던 갈등과 ‘권력쟁탈전’의 회오리가 그안에서 가라앉지 않아 결국 일반 국민에게까지 몰아친 결과였다. ‘예’하면 민족간 갈등이나 경제위기 등 그동안의 혼란이 사라지고 안정된 체제를 구축해 연방시민으로서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선동도 투표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투표결과에 상관없이 그 이후 전반적인 상황은 더 어렵고 복잡해지리라는 것이 여러 여론조사의 결과이다. 중앙정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불신당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더불어 정치적으로 어떤 단안을 내리지 않는 한 돌파구는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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