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강타한 ‘物價 지진’
  • 모스크바·김창진 (자유기고가) ()
  • 승인 199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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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들다” 불만 높아

 요즘 소련 텔레비전 뉴스의 대부분은 물가인상 문제에 할애되고 있다. 매일 3~4명의 기자가 물가인상 이후 시민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텔레비전뿐만이 아니다. 라디오와 신문 등도 얼마의 돈으로 무슨 물건을 살 수 있는가가 소련 국민의 최대 관심사라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소련연방정부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포고령에 따라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소매물가를 평균 60~3백%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물가인상 조처가 실행된 4월2일부터 거의 모든 생필품이 2~4배에서 최고 10배까지 인상됐다.

 소련의 물가인상 조처는 ‘사상 유례없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만하다. 모스크바 시민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물가지진’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듯 무감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하루이틀 지나면서부터는 생활의 어려움에 따른 긴장과 분노를 서슴없이 표현하고 있다. 물가인상 조처가 단행된 하루 뒤인 4월3일 국영상점에서 만난 한 주부는 “물가가 많이 올라 살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국영상점에서 2백루블의 월급을 받는 한 여직원은 “이제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됐다. 우리는 빵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인 계층의 반응은 날카롭다. 30대 후반의 대학강사이자 두 아이를 둔 주부인 따찌야나는 “나는 이번 물가인상 조처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긍정적인 의견을 한번도 듣지 못했다. 3백%씩 물가를 오리면서 60루블의 보조금이 뭔가. 정부는 서민에게 ‘동냥’을 주고 있는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광부들의 파업을 예로들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가를 설명하면서 “그러나 소련 국민이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는 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숨지었다.

 소련정부의 물가인상 조처는 심각한 국가재정상의 위기를 해소하고 상품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취해진 것이다. 4월2일부터 식료품은 1백~3백%, 의류와 아동용품은 1백~2백%, 공산품은 80~1백%, 지하철과 버스요금은 각각 3백% 인상됐다. 인상된 내역을 주요 품목별로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소련정부는 이와 같은 대규모의 물가인상을 단행함과 동시에 시민의 가계를 보조하고 물가인상에 따른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일종의 ‘보상조처’를 시행했다. 각 가정에 개인당 60루블씩의 보조금을 지불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보상조처는 시민의 불만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3백%의 물가인상에 더하여 5%의 세금인상분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 지금까지 내던 집세·전기료·전화료 등 직접세는 물론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물건 가격의 5%에 해당하는 세금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물가인상 조처에 대해 별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련에 사는 외국인들이다. 이번의 대폭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물가 자체가 서구 자본주의 나라의 그것에 비해 훨씬 싼데다, 그들은 루블화에 대한 높은 교화가치를 가지는 달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정부는 물가인상 조처와 더불어 달러화에 대한 루블화의 교환비율을 현실화했다. 즉 기존의 1달러당 5.99루블을 27.60루블로 바꿔 암달러 시장으로 유출되는 ‘지하달러’의 상당 부분을 국가재정에 귀속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희망대로 ‘지하은행’이 없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달러의 교화시세만 더욱 올라갈 것이 확실하지만 적어도 안정적인 암환전 루트를 확보하지 못한 외국인 여행자의 수중에 있는 달러 정도는 정부가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70여년의 ‘사회주의 소련’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번 물가인상 조처는 그만큼 심각한 경제상황에 직면해 있는 고르바초프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소련 국민은 모두 강력한 ‘경제개혁’을 원하지만 경제계획의 입안과 집행, 상품의 생산과 유통과정, 자발적인 노동의욕을 고취하지 못하는 현재의 고용구조 등 기본적인 경제메카니즘을 그대로 둔 채 ‘물가개혁’부터 단행해야만 하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더 이상 고기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동안 보던 잡지를 끊어야만 하는 소련 국민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페레스트로이카인가”를 심각하게 반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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