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계 침투하는 일본 우익 자금
  • 남문희,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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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일대에 불어닥친 국제화 분위기를 타고, 일본 보수우익 재단의 기금이 국내 학계에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다. 이 재단의 기금은 학술 연구비나 국제회의 운영비라는 명목을 띠고 북방 관계나 지역 문제를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 계열 학자를 주대상으로 하고 있다. 국내 한 대학에서는 석·박사 학위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재단측이 장학금 수혜자명단을 재단의 인맥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음이 드러나 일본 보수우익 세력의 조직적 침투가 아닌가 우려되고 있다.

 문제의 재단은 일본선박진흥회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사사카와 평화재단으로, 이 재단은 창업자인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라는 인물의 전력 때문에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경계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94세인 사사카와 료이치는 2차대전 당시 일본에 ‘국수대중당’이라는 극우 정치집단을 만들어 우익활동에 전념했고, 자신의 경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직접 만나 회담하는 등 스스로 파시스트를 자처해온 인물이다. 이런 경력 탓에 전후 A급 전범으로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30쪽 기사 참조).

백악관, 뒷조사 시키기도
 사사카와가 이끄는 재단에 대해서는 일본 학자들조차 기금 받기를 꺼리는 실정이다. 그것은 그의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그가 회장으로 있는 일본선박진흥회라는 단체가 일본에서 열리는 모터보트 경기의 도박 판돈 수입으로 운영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일본선박진흥회는 지난 80년대 초부터 사사카와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한다는 명목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각종 기금 및 재단을 설치하고 돈을 뿌려왔는데, 이미 국제적으로 몇몇 대학에서는 그의 전력이 문제 되어 장학금 수령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한때 미국 백악관은 미국 학자들에게 돈을 뿌리는 이 재단의 형태를 수상히 여겨 주일 미국대사에게 뒷조사를 하게 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이 재단의 정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어 일부 학자 및 대학에서 무비판적으로 연구 보조비 및 장학금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현재까지 파악된 내용은 지난 87년 고려대학교 인문 사회계열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지급된 1백만달러와, 지난 89년부터 장춘·평양·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두만강개발 국제회의’를 주재해온 국내외 학자들 연구모임인 ‘동북아 포럼’에 대한 연구보조 및 회의운영 지원, 그리고 최근 포항시를 중심으로 환동해권 개발 문제를 연구하는 일련의 학자 모임에 대한 지원 등이다. 그러나 관련 학자들은, 재단 관계자들이 3~4년 전부터 국내 각 대학 및 연구소, 그리고 학자 개인들에 대해 접촉해 왔기 때문에,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지원 형태도 상당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국립대학을 포함해 10여 연구소에서 기금을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려대학교에 지원된 장학금은 이 재단이 지난 87년부터 5개년계획으로 1백만달러씩의 장학금을 전세계 50여 대학에 지불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사사카와 리더 장학금’이라고 불리는 이 장학금은 각 대학의 석·박사 학위 수여 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현재 미국의 예일·프린스턴·버클리 대학, 중국의 북경 대학, 러시아의 모스크바 대학 등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그 대상에 포함돼 있다.

컴퓨터로 장학금 수혜자 관리
 문제는 이 재단이 이런 엄청난 돈을 세계 각 대학에 뿌리는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이자 현 재단이사장이 사사카와 요헤이(笹川陽平·53)는 90년 12월 일본 《월간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겨냥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접근이라는 점이다. 장학생 전원을 데이터 베이스에 입력하고 있다. 50개 대학에서 매년 1천명 정도의 졸업생이 나오고 있는데 10년이면 1만명이다. 그 중 30%가 전문가나 파워 엘리트가 된다면 이것은 대단한 네트워크다. 단추만 누르면 어떤 인맥을 통해야 할 것인가가 순식간에 파악된다.”

 실제로 고려대 대학원 재학 시절 사사카와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다는 한 관계자는, 졸업한 뒤에도 해마다 몇차례씩 집으로 재단측의 편지나 카드가 배달되고 있고, 심지어는 일본왕 아키히토 부부가 쓴 시집을 보내 오기도 해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87년부터 매년 인문사회계열 석·박사 과정 학생 90여 명에게 학위논문 출간비조로 장학금을 지급해온 고려대측은, 재단측이 1년에 한번씩 장학금 수혜자의 명단과 주소를 요구하는 것말고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기 때문에, 재단의 의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원 교학과의 한 관계자는 “이 정도로 문제가 있는 재단인지 몰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분교), 캐나다의 요타 대학 등 몇몇 대학에서는 이 재단의 전력이 드러나 지역 언론 및 교수 · 학생 들이 학교측에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장학금을 매개로 한 이 재단의 접근이 주로 ‘다음 세대의 인맥 만들기’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주로 중국·소련·북한 문제 등 북방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한 이 재단의 집요한 접근은 일본의 국가 목표와 관련한 ‘현재의 인맥 만들기’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21세기 국가 목표에 비판적인 학자들의 견해는 “유럽공동체나 북미자유무역협정 결성에 대해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일대를 일본이 주도하는 경제권으로 통합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미 동남아시아는 방콕을 거점으로 일본 시장으로 통합돼 있다. 동북아시아는 동북아경제권으로 통합하겠다는 게 일본의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이 걸리므로 한국을 끌어들이는 게 초미의 관심사다”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우익 집단은 일본 정부의 행보에 한발 앞서 움직이는 경향을 보여왔다.

89년 한국에 본격 ‘상륙’
 사사카와 재단의 움직임이 일본의 보수 정객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재단의 ‘국제화 전략’을 주도하는 사사카와 요헤이가 나카소네·다케시타 전 총리, 아베 전 외무성 장관 등 일본 보수파 정객들과 골프를 같이 치고, 요헤이의 별장에서 이들 보수 정객들이 일본 정국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장면들이 일본 언론에 목격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아사히 신문> 90년 8월1일자), 그리고 요헤이 자신이 《월간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10년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은 국제적인 인맥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나는 어떤 조직이든 나라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에는 이해 관계가 없지만…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얻은 정보를 유력한 정치인에게 정확하게 전해 정책 결정에 참고가 되도록 할 생각은 가지고 있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내 학계에 사사카와 재단 실무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이 사사카와 요헤이가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여 국제화 전략을 본격화한 지난 89년부터이다. 재단 실무자들이 첫 번째 접촉 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산업연구원의 ○씨였다. 그는 “재단 실무자 서너명이 찾아왔었다. 그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일본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을 서너차례 접촉해 주로 북방 관계를 연구하는 국내 연구소 현황뿐 아니라 전공학자 40여 명의 명단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주로 북방 관련 학자들을 접촉하고자 한 것을 당시 현안이었던 한·중 수교 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그는 이해하고 있다.

 그뒤 사사카와 재단 실무자들이 국내 연구소 및 학계 인사들을 상대로 꾸준한 접촉 노력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학계에 나돌았다. 이들은 대개 일본에서 3~4차례 편지와 재단 팜플렛을 보낸 후 3~4명씩 조를 짜 학자들에게 접근하여 연구 지원, 공동 프로젝트 등에 대한 제안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만강 개발 관련 회의도 지원
 사사카와 재단이 두만강 개발과 관련한 국제회의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소식은 ㅈ대학의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전해졌다.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국 학자로부터 89년부터 장춘·평양·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몇차례 국제회의를 주도한 바 있는 ‘동북아포럼’이라는 단체에 사사카와 재단에서 자금을 지원해 국제회의를 치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두만강 개발 계획에 사사카와 재단이 깊이 관여돼 있다는 사실은 《시사저널》이 일본 도쿄의 사사카와 재단 실무자와 하와이 동서센터 ㅈ교수를 상대로 취재한 결과 밝혀졌다. ㅈ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사사카와 재단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는 관계가 끊어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89년 하와이 동서센터 주최로 첫 회의가 열렸을 때 유엔개발계획(UNDP)을 비롯해 여러 군데서 찬조금을 받았는데, 그때 사사카와 재단의 돈이 찬조금의 일부로 들어왔었다고 한다. 액수는 회의운영비 3만달러, 연구보조비 5만달러 등 모두 8만달러(약 7천만원) 정도였다. 그 뒤 91년의 장춘 회의에도 돈을 냈고, 블라디보스토크 회의 때는 하와이 동서센터와는 별도로 기금을 냈다고 했다. 관계가 끊어진 이유에 대해 그는 “재단의 회계 관리가 까다로워 융통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취재진과의 면담에서 재단 실무자는 두만강 개발회의에 대한 지원은 이 재단의 ‘북동아시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 실무자가 얼핏 보여준 사업계획서에는 91년 장춘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 중국 미국 러시아 한국 등의 학자 약 1백20명이 참석했는데, 2천1백만엔(약1억6천만원)이 총예산 항목에 적혀 있었다. 재단 실무자는 올해 9월1일 북경에서 다시 국제 회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로 미루어 하와이 동서센터측과 상관없이 이 재단이 두만강 개발계획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이와 병행해 최근 몇 년 사이 중국·러시아·북한의 유력 연구기관에 사사카와 재단이 깊숙이 접근하고 있음이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까지 학자들이 파악하고 있는 바로는 소련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경제연구소, 하바로프스크 국립관동대학, 블라디보스토크 해양연구소, 장춘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하얼빈대학 등이 이 재단의 지원을 받거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유학생 출신 교수가 지원 대상
 사사카와 재단이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에 깊숙이 접근하고 있고, 그 배경에 일본의 국가 목표 실현이라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구심이 학자들 사이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차츰 재단측의 제안을 거부한 학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양대학교의 한 교수는 “일본의 재단으로부터 몇차례 편지를 받았다. 그 뒤 4~5명의 재단 실무자가 방문해 지역 개발과 관련한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다른 교수로부터 이 재단이 문제가 있다고 들은 뒤였기 때문에 딱 잘라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단국대의 한 교수도 사사카와의 제의를 거절한 경우,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남을 모함한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그동안 아무 얘기도 못했었다. 그러나 실정을 모르는 몇몇 교수가 이 재단과 무분별하게 관계를 가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재단은 재단대로 국내 학자들에 대한 접촉을 더욱 은밀한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리 성향을 파악한 뒤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접촉 대상에서 제외하기 마련이다. 대개 미국 등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되는 교수들이 주요 접촉 대상이 된 느낌이다.

 학계의 일부 경계 분위기가 누그러지지 않은 상태인데도 사사카와 평화재단측의 집요한 노력은 일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28~30일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는 사사카와 재단과 시마네현이 공동 주최한 ‘환일본해 교류 국제 세미나’가 열렸다. 이 국제 회의는 회의 비용뿐 아니라 회의 기획에서 준비, 학자들 접촉 등 거의 모든 사업을 재단 실무자들이 직접 나서서 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재단측은 이미 89년부터 국내 회의를 통해 지난해 국제 회의를 준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즉 지난해의 국제 회의는 89년부터 해마다 한차례씩 일본 국내 회의를 치르며 준비 작업을 거친 후, 지난해 2월의 국내 세미나에서 일본측 전문위원 17명을 선정했다. 이들과 재단 실무자들이 조를 나눠, 중국 북한 러시아 한국의 ‘접촉 단체’와 해당국의 전문가들을 접촉하는 형식으로 준비 작업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각국의 접촉 단체와 전문가 수는 중국 16명(국제신탁공사 국제연구소), 러시아 19명(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경제연구소)이다. 북한의 접촉 단체인 조선대외문화 연락협회는 회의에 불참, 그리고 한국은 포항의 ○대학이 접촉 단체로 선정됐고, 23명이 전문가 그룹 명단에 올라 있다.

 한국측 전문위원 그룹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각국의 접촉 단체가 전문가 그룹을 결성한 것처럼 돼 있으나, 실제로는 재단 관계자들이 3~4년 동안 돌아다니면서 파악한 학자들 명단이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시마네현 국제 회의는 대개 학술 논의에 치중하는 여느 국제 회의와 달리, 실제적인 행동 계획에 대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벌여 ‘시마네 합의’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까지 번졌다. 이 시마네 합의는 구체적인 ‘협조행동계획’을 수립해 5년후 이를 점검한다는 일정까지 설정하고 있다. 재단측은 이를 위해 국제회의 운영비를 포함해 1년에 두 번씩 각국별로 예정돼 있는 국별 전문위원회 회의 비용, 그리고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조사연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불순한 의도만 있는 것 아니다”
 한국측 접촉 단체의 실무 책임을 맡은 포항 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3~4년 전부터 포항 지역을 환동해 시대의 거점 도시로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나 기업, 국내 학술재단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사사카와 재단측과 접촉이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재단에 대해 염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내에서 참여하는 학자들도 이 점 때문에 상당히 경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재단 실무자들을 만나보면 불순한 의도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회의의 전개 과정을 지켜본 학자들 중에는 상당히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일본의 국제화, 지역개발 문제 등에 대해 정부·기업·연구소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태에서 일부 지방이나 학자들이 학계 내부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산발적으로 그들과 접촉할 경우 잘못하면 그들의 의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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