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장파 “당 접수하자”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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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바람 타고 당권 도전…국발연·초선 그룹·뉴라이트와 연대 모색

 
오세훈 열풍에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슬며시 미소 짓고 있다. 오후보의 부상은 한나라당 소장파의 ‘압축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오후보가 맹형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을 능가하는 대중적 인기를 보여줌으로써 소장파의 위상도 동반 상승했다. 김덕룡 의원과 박성범 의원의 공천 비리까지 터지면서 개혁을 외치던 소장파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내친김에 소장파 의원들은 공천 비리와 관련해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하며 입지를 굳히고 있다. 

당초 서울시장 후보 경선 불출마를 고집하던 오후보를 영입하는 데 소장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소장파 의원들의 오후보 영입 작전은 지난해 8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오-남(오세훈-남경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서울시장에 오세훈 변호사를 내보내고 경기지사에 남경필 의원을 출마시켜 서울과 경기를 구심점으로 삼는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변호사가 출마를 포기하면서 좌절되었다. 정치자금법 입법 등을 통해 당내에 미운털이 박힌 오변호사는 당내 경선을 통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 출마를 포기했다. 남경필 의원 역시 당내 경선에 참가하지 않고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면서 ‘오-남 프로젝트’는 용도 폐기 되는 듯 보였다.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소장파의 계획 역시 수포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강-진' 프로젝트에 대응할 '오-남' 프로젝트 좌절

그러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등장과 함께 선거 구도가 바뀌고 오변호사가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하면서 상황은 급반전 되었다. 오변호사의 출마가 소장파에게 고무적인 것은 서울시장 선거가 소장파의 선거가 되었다는 점이다. ‘새정치수요모임(이하 수요모임)’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는 당내 세력이 전무하다시피한 오 전 의원을 껴안아줄 유일한 세력이다. 오후보의 한 측근은 “소장파에 대한 당내 거부세력 때문에 당내 경선까지는 소장파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소장파가 캠프의 주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에서 소장파 장세가 크게 열렸던 것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2002년 대선 패배 이후였고, 다른 한 번은 2004년 총선 패배 이후였다. 한나라당이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소장파는 대안 세력으로 부각되었다. 이처럼 소장파는 그동안은 선거 패배에 따른 반사이익을 취했지만, 이번 지방선거 국면에서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소장파가 선거 구도를 직접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탄핵 역풍을 방어하고 박근혜 대표가 정치적 위상을 확립하였듯이 소장파도 공천 비리 역풍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오후보를 당선시킨다면 당의 대주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와 관련된 공천 비리 문제는 소장파 의원들에게 본격적인 참전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박형준 의원은 “한나라당이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면 밖의 힘에 의지해서라도 변해야 할 것이다. 체질 개선은 빠를수록 좋다”라고 말했다. 원희룡 의원은 “구태를 안고 침몰할 세력이 있다. 연이은 공천 잡음은 바로 그 전초전이다. 앞으로 한나라당 내 파워 게임은 구태 벗기 게임이 될 것이다. 지금 큰 지분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세력도 점점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라 불리는 재선 의원 그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수요모임의 힘은 수평적 계보라는 측면에서 정치권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별히 리더를 내세우지 않고서도 탄탄한 조직력을 보여준 수요모임은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토털사커’를 연상시킨다. 수요모임의 토털사커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도드라졌다. 이는 ‘비주류’라 불리는 의원들의 결사체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이하 국발연)와 비교해도 확인할 수 있다. 국발연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홍준표·박계동 의원이, 경기지사 선거에서 김문수·전재희·김영선 의원이 각축하면서 구심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소장파 입지 커질 듯

소장파의 정치적 입지와 관련해 선거 결과에 따른 경우의 수는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오세훈 후보가 당내 경선에 이기고 본선에서도 이기는 것이다. 이 경우 소장파의 활동 반경이 꽤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보가 당내 경선에 지고 그를 이긴 후보가 본선에서 이기는 경우, 소장파는 경선 흥행의 공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당내 경선에 지고 오후보를 이긴 후보가 본선에서 지는 경우 역시 그리 나쁘지 않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떨어뜨린 것을 문제 삼아 체질 개선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책임론과 맞물려 강한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장파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당내 경선에 이기고 본선에서 지는 것이다. 이때는 소장파가 선거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는 7월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소장파가 가진 당내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요모임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와 최병렬 대표 선출 과정에서는 조력자 역할에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소장파가 직접 당권 도전에 나선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소장파 내에서 후보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전당대회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소장파가 어떻게 외연을 확장하느냐 하는 점이다. 먼저 국발연과의 연대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부터 국발연은 수요모임의 전략적 파트너였다. 원내대표 경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수요모임은 국발연으로부터 두 가지 ‘어음’을 받아두었다. 하나는 지난 원내대표 선거에서 국발연 소속의 이재오 의원을 지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지사 당내 경선에서 남경필 의원이 사퇴하고 김문수 의원을 지지한 것이다. 이제 이 어음을 어떻게 되돌려 받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범중소 세력 결합을 통한 외연확장 중

범중도 세력 결집을 화두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소장파가 연대할 주요 대상은 바로 손학규 경기도지사다. 이미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어 있다는 것이 소장파들의 주장이다. 수요모임의 박형준 의원은 “손지사를 대선 후보로 지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전당대회까지는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부산·경남으로의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부산 출신인 박형준 의원을 대표로 삼는 등 소장파는 부산·경남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수요모임은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함께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권철현 의원을 지원하고 있다.

소장파가 외연을 확장할 또 다른 대상은 초선 의원 그룹이다. 한나라당에는 영남권 초선 의원 모임인 낙동회와 중부권 초선 의원 모임인 중초회, 그리고 무욕회, 초지일관 등 네 개 모임이 있다. 정치적인 결사체가 아닌 친목 모임 성격을 띠고 있는 이들 초선 모임은 얼마 전 어느 계보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의미로 ‘NL(no line) 선언’을 하기도 했다. 소장파 의원들은 이들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원외의 뉴라이트 그룹 역시 영입 대상이다. 원희룡 의원은 “뉴라이트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면서 구태정치를 껴안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창 오름세를 타고 있는 소장파 장세가 곧 거둬질 것이라고 보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한 중진 모임 관계자는 “소장파든 초선 의원이든, 중심 세력으로서 논할 가치가 없다. 대선 주자들의 호각 소리에 줄서기에 나설 사람들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소장파의 수평 계보는 대선주자 중심의 수직 계보에 의해서 깨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박근혜계와 이명박계가 세력군을 구축해 양 진영이 치열한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소장파가 이에 휘둘리지 않고 제3의 세력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박형준 의원은 “중요한 것은 변화 축이 되어 변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소장파 의원들은 당권 경쟁에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당권을 넘어 대권 후보까지 세우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수요모임의 윤석대 사무처장은 “한나라당의 고질병은 당심과 민심이 달랐다는 점이다. 소장파가 민심을 당심으로 구현해 주고 있다. 앞으로 큰 흐름을 형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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