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곱사등이’ 국회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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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국정고사 후유증 · 제도개혁 이중고

 지난 7일 공직자 재산 공개에 이어 10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정기국회는 여러 모로 매우 눈길을 받는 국회가 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입법부 위상과 역할을 확인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권이 모처럼 여의도로 옮겨진 정국의 흐름을 주도할 만한 역량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 자체가 ‘공직자 재산 공개 파문’ ‘라이프 주택 정치비자금 문제’ ‘대폭 물갈이설’ 등으로 끊임없이 불안 속에서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기국회는 필연적으로 과거 청산과 미래 지향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 두 과제는 상호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충돌과 상충의 가능성을 더 많이 안고 있다.

 전 단계인 문서 검증과 현장조사를 끝내고 증인 심문에 들어간 ‘3대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全斗煥 · 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의 증언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의 첨예한 인식 차를 드러냈다.

정치권, 무기력 탈피가 관건
 6일 현재 정황으로 보면, 열하루에 걸쳐 수많은 정부 관련 자료와 수십 명의 증인을 소환하는 국정조사는 몇 가지 구체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고 결정권자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심증과 의혹만 키운 채 미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그 후유증은 자연히 미래 지향적인 과제를 다루어야 할 정기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쳐, 9월 정기국회는 시작부터 과거 문제에 발목이 잡힌 채 삐그덕거릴 공산이 크다.

 과거와의 싸움 못지 않게 이번 정기국회가 해결해야 할 미래 지향적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먼저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에 따라 ‘깨끗한 정치 구조 정착’을 위한 정치 전반의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따라서 정치자금법·선거법·국회법·정당법 등 정치관련 법안 개정 문제를 다룰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여야 모두가 공감한다.

 정치 관련 법안 개정을 둘러싸고 그동안 주춤거리는 자세를 보여온 민자당도 최근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한 뒤에는 서둘러 선거법·정당법을 대폭 손질하는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야당 역시 상향식 공천을 골자로 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정치 관련 법안은 여야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사안인 만큼, 여야 사이의 접근이 그다지 쉽지 않으리라는 비관론도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에 이어 정치 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와 청와대의 의지를 감안하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에 전향적인 의견 접근이 상당히 이뤄지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동안 말만 무성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한 ‘비민주 법률 개폐’ 문제도 정기국회가 안은 주요 과제다. 사회 일각에서는 6개월 이상 계속된 개혁과 사정 바람 속에서도 법적 · 제도적 개혁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중심의 ‘인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더러 나온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노동관계법, 국가보안법, 조세 개혁, 관변단체 지원 폐지 등 국회 차원의 과감한 개혁입법 조처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편성된 ‘문민 예산’을 검증해 내는 일 역시 정기국회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다. 정기국회에 대비해 ‘예산 학교’까지 열었던 민주당에서는 ‘실명제하의 예산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의욕을 보인다.

 이렇듯 산적한 과제를 안은 국회가 과연 제 구실을 해내면서 1차 재산 공개 파문 이후 줄곧 위축돼온 입법부의 위상을 재정립하게 될 것인가. 그러나 ‘공직자 재산 공개 파문’ ‘정치권 대폭 물갈이설’ ‘개각설’로 말미암아 정기국회를 앞둔 정치권은 여전히 뒤숭숭하다.

 李萬燮 국회의장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정치권이 위축됐다. 국회가 실종됐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회의원 자신이다. 정치인 자신이 개혁을 먼저 주도해 나갈 자신감과 의지만 가진다면, 국회 위상은 저절로 세워진다.”
徐明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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