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단체는 ‘총애’ 시민단체는 ‘구박’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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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서도 여전 … 야당 등 “특별법 폐지하라”

역대 정권에서 정부와 관변 단체는 흔히 ‘악어와 악어새’로 비유되곤 했다. 정부가 막대한 국고를 들여 몇몇 단체를 보호 육성하고, 이들은 선거철이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 입장을 대변해 주는 일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문민 정부가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양자의 ‘불건전한’ 공존 관계가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문제점을 피부로 느껴왔던 야당과 시민운동 단체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관계 청산을 몇년 뒤로 미룰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야당 및 시민운동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야당과 시민운동 단체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이루어졌던 특혜 관계를 문민 정부에서조차 계속 연장하는 것은 다른 사회단체와의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관변 단체를 지원하는 각종 특별법을 즉각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정부 정책의 홍보 및 동원 집단으로 여겨왔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몇몇 관변 단체에 대해 국고를 보조할 수 있었던 것은 엄연한 법적 조항에 근거한 것이었다. 현재 대표적인 관변 단체로 꼽히고 있는 바르게살기협의회의 경우 ‘바르게살기운동육성법’이 지원하고 있고,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 자유총연맹은 ‘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 등의 법적 근거가 존재한다.

 이들 각종 특별법에 따라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지난 91년 15억, 92년에는 25억원의 국고보조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91년과 92년에 각각 15억원씩, 자유총연맹은 92년에 약 25억의 국고보조를 받았다. 그러나 이는 중앙 정부 차원의
지원에 국한한 수치일 뿐으로, 시·군·구나 읍·면·동 등에서 지원하는 각종 지원금 규모까지 합치면 대개 한 단체당 1백억원 이상의 보조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야당과 시민운동 단체들은 추산한다. 또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이 정부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바로는, 현재 관변 단체들이 전국의 구청이나 구민회관 등을 비롯한 공공기관을 사무실 등으로 무상 사용하는 면적이 약 12만평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의원은 이를 근거로, 정부가 이들 단체에게 현금 및 현물로 지급하는 각종 지원금액을 합치면 1년에 약 2천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에는 정부도 민간 운동은 민간 자율로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에서, 기존 관변 단체들에 대한 정부 보조를 중단할 것을 몇차례 시사한 바 있다.

“정부 보조 당장 줄이면 혼란 온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입장은 여기서 다소 후퇴해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줄여나간다는 입장으로 돌아서 있다. 내무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도 민간 단체에 대한 국고 보조를 중단한다는 얘기는 몇차례 있었으나, 지금은 그때보다는 훨씬 확고한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중단할 경우 여러가지 혼란이 예상돼 연차적으로 줄여나가려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올해보다 지원금 규모를 약 5억원 정도 낮추고, 몇년 동안 이런 추세로 진행하면서 각 단체가 순수 민간단체로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이들 단체에 대한국고 중단을 당장 결정하지 못하는 데에는,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이들 단체를 갑자기 해산할 경우 정부의 각종 시책을 펴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고려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나서서 모든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게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이들 단체를 대체할 만한 마땅한 조직이 없다”라고 고민을 피력했다.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 외에도, 정부 각부처 사이에서 정부와 민간 단체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견 수렴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정부의 입장을 불분명하게 인식케 하는 한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공보처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민간 운동은 철저히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직접 개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민간 단체가 각자 특성에 맞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존 관변 단체,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시민운동 단체들과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 수렴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과거 정권에 비해 현정부의 인식 변화를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기존 관변 단체들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의 활동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이와 관련해 공보처 관계자는 “관변 단체들이 철저한 내부 반성을 통해 국민에게 새롭게 인정받기 전에는 의식개혁 운동의 전면에 나서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각 부처에 통고했다”라고 말했다. 또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는 그동안 정부 정책에서 소외돼 왔던 시민운동 단체들을 활성화해서 이들의 건전한 의견을 국정에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편이다.

시민단체, 1년 20원 이상 회비도 못받게
 그러나 시민운동 단체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나, 나아가 기존 관변 단체와 시민운동 단체 그리고 정부가 어떻게 새롭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연구 검토중이다. 내년 초쯤이면 대략 윤곽이 나올 것이므로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 및 시민운동 단체들은 우선 정부가 그동안 문제가 돼왔던 관변 단체 지원과 관련한 각종 특별법을 폐지하는 것에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처지,형편,견해,주장이다.

 경실련의 한계자는 “우리가 관변 단체를 해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도 과거 정권에서 주어졌던 특혜가 계속 주어진다는 것은 시민운동 단체들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라며, 우선 관변 단체 지원을 위한 각종 특별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과거 정권에서 시민운동을 제약하기 위해 설치한 여러 악법도 이 기회에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변 단체들이 각종 특별법의 혜택을 받으면서 조직의 세를 늘려온 반면, 시민운동 단체들은 기부금품 모집금지법에 따라 1년에 한 회원으로부터 20원 이상의 회비를 못받게 돼 있다. 또 기업 등 영리 법인이 정부가 인정하는 단체에 기부금을 낼 경우 손비처리를 해주면서, 시민운동 단체 등에 내는 기부금은 비용 처리를 해주지 않는 등 갖가지 제약을 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단체가 운영난에 허덕이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실련을 중심으로 환경운동연합·YMCA·흥사단 등 시민운동 단체는 이번 정기국회를 겨냥해 관변 단체 지원 특별법을 민간 단체 지원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개혁입법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또 민주당은 선거가 끼여 있는 내년이면이 문제가 다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박계동 의원을 중심으로 관변 단체 지원 특별법을 악법 개폐 차원에서 정리하도록 강도 높게 추궁해 나갈 예정이다.

 정부와 관변 단체, 시민운동 단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은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나 정부가 시민 사회와 맺어왔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일과 비교될 수 있어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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