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강의 평가제 ‘붐’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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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주관으로 첫출발 … “아직은 비현실적” 비판도



 학생에 의한 교수 강의 평가제는 질적 변신을 꾀하려는 대학의 한 모습이다. 이 제도가 국내 대학에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90년 경희대학교에서다. 이것은 국내에서 처음이기는 하지만 실시주체가 총학생회였고, 평가 대상도 시간 강사가 맡은 10개 교양과목 13개 강좌에 대해 한정적으로 실시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교수 강의 평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 제도를 주관한 총학생회 산하 교육과정심의위원회는 평가제 실시후 결과를 분석 평가했다.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교수법과 교재에 대한 만족도, 교수의 인격 · 자질 · 성실성을 묻는 질문에 학생들 대부분은 ‘만족’하거나 ‘알맞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학습자의 수강준비 태도나 학습 태도를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이 ‘매우 불량하다’거나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수강 태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사학인 경희대에 이어 국립 대학으로서는 최초로 전남대학교가 93년 1학기부터 강의 평가제를 도입했고, 영남대에서는 92년 2학기부터 역시 학생회가 중심이 된 강의 평가제를 실시했다. 영남대의 첫 강의 평가는 상경 · 법과 · 약학 대학의 일부 전공과목에 한해 이루어졌으며, 실시하기 전에 학생회에서 학과별로 담당 교수를 찾아가 학생에 의한 강의 평가 취지를 설명해 교수들에게 양해를 얻고 강의를 평가하는 수순을 밟았다는 점에서 경희대의 강의평가제와 비슷하다. 93년 1학기에 실시된 두번째 평가에서는 자원하는 교수들이 강의 평가서를 직접 학생들에게 배부해 조사한 후 해당 교수가 평가 내용을 분석하는 절차를 밟았다.

한신대는 대학 당국이 결정
 한신대학은 학생회가 아닌 대학 당국 스스로 주체가 되어 강의 평가를 실시한 경우다. 한신대 교무처장 金光秀 교수(철학과)는 “대학이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변화의 핵심은 교수와 학생이다. 학생과 교수가 자기 변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학생에 의한 교수 강의 평가제다”라고 평가제를 도입한 배경을 설명한다. 입안 단계에서의 진통은 컸다. 반대 의견이 속출했다. 우선 유교적인 전통에 위배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대에서부터, 재단과 교수가 평가제의 결과를 악용할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운동권 일부에서 특정 교수를 매장하려 들 경우에도 자료가 이용당할 염려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주된 반대 의견은, 학생들이 객관적으로 교수의 강의를 평가할 수준에 있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또 교수 입장에서는 소신 있는 강의 대신 학생들의 눈치를 살펴 인기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고, 1주일에 최저 9시간 이상을 강의해야 하는 현실에서 강의법에 몰두하다 보면 연구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되었다. 평가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학교가 발전한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한신대 기획실장 성웅현 교수(통계학과)는 “학생들은 실제로 평소 교수들의 강의를 평가해오고 있다. 교수만 듣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김광수 교수도 “교수들 스스로 채찍을 맞는 기분으로 강의 평가제에 동의했다”라고 말한다.

 한신대는 우선 강의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외국의 사례를 모으고 검증하는 단계를 밟았다. 강의 평가서의 항목은 강의 자체에 대한 평가와 교수의 강의 내용 진단, 학생 자신의 학습 평가 진단 등 세부분으로 나누어 모두 19개 문항으로 구성했다. 특히 교수 강의 내용을 평가하는 항목에서는 교수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중하게 문항을 작성했으며, 통계 방법에 의해 응답자의 신뢰도를 교차 검증하는 방법을 썼다. 그 결과 가장 만족할 만한 성과는, 교수가 답변의 신뢰도를 의심할 만큼 학생들이 불성실하게 답변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도 예정대로라면 내년 1학기부터 점진적으로 교수 강의 평가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 8월 이화여대는 전임강사 이상 교수 4백45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75.8%의 교수가 강의 평가제를 찬성한다는 결과를 얻어냈고, 연구처가 주관하여 평가제 도입에 대한 기본 자료를 수집중이다.

 교수 강의 평가제는 애당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다. 학생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사제간 불신의 극치, 생존을 위한 대학 당국의 궁여지책이라는 평가에서부터 대학 경쟁시대의 참민주화를 위한 초석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단순한 강의 평가보다는 교수의 교육업적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하며, 단순한 강의 평가는 교육업적 평가의 한부분일 뿐이라는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오래전 교육부가 만든 교수 연구업적 평가 기준과 방법 자체가 그른 마당에 강의 평가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생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동양적 사고가 평가제를 평가절하했다. 한 교수는 “평가제를 실시하는 목적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더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고 체계가 객관적이고 분석 비판적인 구미에서는 아무 무리가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이르다”라고 지적한다. 방법론을 지적하는 교수도 있다. ㄱ교수는 “동기는 이해하지만 비현실적이다. 현행 방법은 70년대 미국식이다. 규모가 작은 학교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세칭 일류라는 덩지 큰 대학에서는 불가능하다. 또 학생들이 나를 나쁘게 평가해도 겁나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교수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4만여 명의 교수 중 불과 수백명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반 이상은 학생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자기의 실력 때문에, 또는 윤리도덕적인 문제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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