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고비만 넘기면…”
  • 여운연 차장 ()
  • 승인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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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김명걸 신임 사장

 4월 한달 동안 대표이사 선임을 둘러?고 진통을 겪어온 〈한겨레신문〉이 드디어 새 대표를 선출했다.     전사장(현 대표이사 회장)에 이어 제3대 대표이사에 오른 金命 (53) 사장.

 취임식 다음날인 5월1일 양평동 사무실로 찾아가자 그는 “아직 얼떨떨하다”며 ‘사장자리’를 몹시 쑥스러워했다. 세 차례에 걸친 사원들의 동의투표끝에 대표이사직을 맡게 된 김사장은 저간의 복잡한 사내사정 때문인지 표정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신중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함경남도 북청 태생으로 성균관대 법대 졸업. 65년〈동아일보〉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뒤 75년 자유언론투쟁과 관련해 해직돼 한동안 자유업에 종사했다. 그러다 〈한겨례신문〉창간 이후 기획취재부 · 정치부 편집위원 겸 편집부위원장, 논설위원, 심의실장, 전무 등을 두루두루 거쳐 대표이사직에 오르게 됐다.

우선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 이사직을 맡게 되셨는데 소감 한 말씀 해주시지요.
 친구나 친지 여러분에게 축하는 많이 받았는데 회사가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당해야 한다는 문제가 앞에 놓여 있어서 부담이 굉장히 큽니다. 어떻게 해야 어려운 일을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 있을까 온 신경이 거기에 가 있습니다.

취임하신지 이틀째인데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까?
 걸음걸이가 달라진 것 같다고들 하던데요(웃음).

사원의 동의를 얻어야 했기 떄문인지 사장실 문턱이 낮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송사장님이 대표이사 하실 때도 누구든지 아무 때나 이 문은 열려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문턱은 낮지만 잘 들어오지 않더군요. 전보다 좀 고독해졌어요.

개인적으로 송회장과 가까우시지요. 그분은 지난번 사태로 난감했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안그러세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회사에 꾸준히 나오십니다. 복잡한 회사일에는 관여시키지 말아달라고 말씀하시지만 회사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여전히 쫓아다니십니다.

4월 초송건호 전 사장이 사원들로부터 불신임 당한 이후 한동안 외부인사 영입설이 나돌았는데요.
 그것은 주주총회 이전에도 외부에서 모셨으며 하는 일부 사원들의 요구가 있어 그런 노력을 한 것인데, 저희 회사 제도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 중에서 대표이사를 선임하게 돼 있습니다. 이사로 선임된 분 중 외부 인사로는 두 분의 비상임이사가 계십니다.
 두 분은 현재 근무하는 직장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대표이사를 맡을 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내 이사 중에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사내 이사 중에는 제가 제일 선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겨레신문〉의 간판 격인 송회장에 대한 사원들의 불신임 결의 소식은 사내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이 뽑은 사람을 고용원 격인 사원들이 불신임한다는 것은 형식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형식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주들이 직접 대표이사를 뽑는 것은 아니며 주주들이 뽑은 이사 중에서 어느 분이 대표이사를 하는 것이 사원들이 보기에 온당한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니까 외부에서 평소 한겨레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런 제도가 있는 줄은 모르고 있다가 ‘어떻게 그런 제도가 있느냐’며 새삼스럽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겨레신문〉의 내부갈등문제를 《시사저널》커버스토리로도 다뤘습니다만 〈한겨레신문〉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창간 메버의 한 사람으로서 내부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외부에서 보기에는 한겨레 내부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겨레신문〉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실제보다 크게 부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사회 · 조직이든지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어떻게 통합하느냐 하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저희 회사는 사원들의 의견을 억지로 무시해가면서 하나로 통합해가는 장치가 없습니다. 사원들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그래서 기존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 눈에는 하나의 파벌이라든가 분쟁으로 보일 소지가 있어서 상당히 염려스럽게 봐주신 것 같고…. 염려스럽게 생각하는 건 좋습니다만 분쟁, 파쟁,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은 저희로선 다소 불만스럽습니다. 이 문제를 푼다는 것은 말하자면 통합기능을 조직화한다든가, 또 의견발표 형태가 사회에서 염려하는 요란스런 모습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일텐데 저희 회사가 갖는 특색을 전적으로 부정하면서 그런 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 한겨레에서는 노출이 잘 되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통합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부문제의 상당한 원인이 사장에 대한 사원의 임명동의제. 편집국장 직선제 등 이른바 ‘민주집중제’에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들 제도가 매우 민주적인 것 같으나 한편으로 구성원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제도든지 부정적 · 긍정ㅈ거 측면이 있는 것이고…. 부정적 측면을 전혀 고려 안했던 것이 아니라 긍정적 측면을 더 많이 생각해서 이 제도를 채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문제가 많이 부각되다보니까 그런 면이 일반에게 지적사항으로 많이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것 때문에 이 제도를 다시 검토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겨레신문〉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경영문제 아닙니까? 창간 초기부터 광고에 애로가 많았던 걸로 압니다. 최근 들어 호전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창간 초부터 정치권력 · 대자본 · 광고주로부터 독립을 확보하겠다는 한겨레가 과연 광고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어려운 과제이고,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어려움은 역시 있습니다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고, 그같은 자세를 계속 견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사원 68%이상의 동의를 얻어 사장으로 선임됐습니다. 무엇보다 김사장께서 한겨레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시고. 창간 초기부터 수백명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지켜봐 하나하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안팎에서 기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나갈 계획입니까?
 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원 모두의 문제고, 한겨레를 아끼는 독자, 주주, 그밖에 모드 분들이 다같이 걱정하고 해결해가려는 문제이기 때문에 잘 풀릴 것으로 봅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면 문제해결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편집국 내에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파벌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간에 갈등도 심각하다는데 어떻습니까?
 편집국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관여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사견을 말씀드린다면 기자도 기자이기 전에 하나의 유건자고 정치적 견해를 가질수 있는 것인데, 어떤 사람이 친평민당 견해나혹은 반대의견ㅇ르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출발한 김사장께서 신문사 경영에 관여하게 되리라고는 예전에 생각 못하셨을 것 같은데요. 기자 경험이 시눔사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경영에 참여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한계를 느끼기엔 시간적으로 이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자 경력이 신문사 경영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방해까지 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실제로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한 2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2개월 동안 어떻던가요?
 좀 어려워졌지요. 주주총회까지 있고. 사실은 그동안에도 경영 문제보다 주주총회를 어떻게 하느냐, 이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매달려 있었어요. 수습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두달 동안 잠 못자는 밤이 많았습니다.

창건에 함께 참여했던 동료들 중에 일부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사장께서도 역시 어려운 고비가 많았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만두려  했던 적은 없었나요?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떠났든지 간에 한겨레에 몸담고 있다는 것은 어떤 다른 신문사나 회사에 몸담은 봉급생활자로서의 자세가 아니고, 사명감과 긍지를 갖고 있는 게 모든 사원들의 공통적 마음가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떠나고 싶을 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개인사정이 있어서 떠난다는 것 같은 수주의 얘기는 아니겠습니다. 표현이 좀 묘합니다만.

〈한겨례신문〉사장직은 언론인으로서 자부할 만한 자리 아닌가요?
 그렇지요.

그러나 모두가 주인이면서 어찌 보면 뚜렷한 주인이 없는 회사라는 점에서 대표이사가 결코 편한 자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걱정해줘서 감사합니다만(웃음). 그런 걱정이 실수까지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잘못하면 잘못한 결과가 모든 국민이 아끼는 신문의 장래에 어떤 영향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일단 건전한 상식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어려운 과제지만 풀어나갈 수 있겠지요.

혹시 월급이 얼마인지 얘기해줄 수 있습니까?
 이사나 간부라 해서 사원들과 호봉체계가 다르지 않습니다. 백만원이 조금 넘는데 그중에 일부는 매월 주식을 사느라 좀 때고, 수령액은 백만원이 채 안 됩니다.

그걸로 생활하는 데 충분합니까?
집사람이 직장이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사원 모두가 박봉을 각오하고 출발했다지만 이제는 현실적으로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해마다 오르긴 했습니다. 지금은 사옥신축공사가 막바지에 들어가 있고 건축비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데  사원들이 올해는 요구를 안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 회사가 어렵다면 봉급을 깎아도 좋다는 마음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점이 한겨레가 가지고 있는 엄청나게 큰 재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75년 해직 이후 잠시 농사를 지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겨레 창간 이전까지 어떻게 보냈습니까?
 그 때 저희는 용기와 사명감을 갖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회사로부터 해임되고보니까 저 개인으로서는 직장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어요. 직작생활은 단념하고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왕 장사를 할 바에는 본격적으로 장사꾼이 되자, 그래서 잠시 남대문시장에서 옷도매업을 했는데 거기서 오래 연륜을 쌓은 사람들과 경쟁이 안되더라구요. 그런다10 · 26이 나, 마침 복직할 기회가 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5· 17로 다 무산되버리고 말았지요. 다시 사업을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시골에 들어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마 〈한겨레신문〉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냥 농사를 지었을 겁니다.

본이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
 장점은 아니고, 분명히 단점인데, 때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결론을 분명히 내리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비판력 · 판단력이 부족하달까, 즉각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좀 우유ㅜ단합니다. 그러다보니 회사 내에서 생기는 여러 견해차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지낸 기간이 상당히 있었어요. 그것이 어떤 면에서 ‘저 사람은 편향돼 있지 않다’는 평을 듣게 됐는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창간 3주년을 앞두고 지난 3년간의 〈한겨레신문〉의 공과, 앞으로의 전망을 말씀해주십시요.
‘공’도 있고 ‘과’도 있겠지요. 공이라는 것은 얘기하면 자랑이 되고, 과는 얘기하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 되는데…. 공으로 생각되는 것은 너무 많은 것 같고, 과는 욕심스러워 그런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특별히 공으로 생각되는 것은 언론자유의 폭을 신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인권신장문제, 그리고 남북문제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저희 신문이 전망에 대해선 얼마전 사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가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한겨레의 장래는 상당히 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어떤 장애요인들이 있다, 그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슬기롭게 대처해나가자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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