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 魏京生 어디로 갔나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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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석방된‘민주 투사'행방 묘연 보호 감호한 듯…미국과‘인권 마찰'

중국의 저명한 인권 운동가이자 민주 투사인 魏京生(43)이 만 14년의 옥살이 끝에 최근 풀려났다. 그는 지난 79년 3월 반혁명 혐의로 기소돼 15년형을 선고받고 내년 3월 만기 출소할 예정이었다. 관측통들은 북경 당국이 그를 갑작스레 풀어준 배경에는 2000년 올림픽을 북경에 유치하기 위한 계산이 깔렸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호주의 시드니가 막바지 유치 경쟁에서 북경을 제치고 2000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됨으로써 북경 당국의‘위경생 카드??는 무용지물이 됐다. 중국의 올림픽 개최가 무산됨으로써 그동안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온 중?미 간의 관계가 한층 악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그런데 막상 풀려난 위경생은 행방조차 묘연하다. 일설에 따르면 보안 당국이 모처에 감금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구속된 상태로 또 다른 장소에서 만기 출소 예정일인 내년 3월까지 보호 감시를 받으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북경 당국의 조처는 올림픽 유치라는 눈앞의 이익에 어두운 나머지 그를 이용하려 한 셈이다.

 중국의 사하로프로 알려진 위경생이 구속된 시점은 이른바‘북경의 봄??이 올 듯하던 때이다. 78년 들어 일기 시작한 민주화 운동은 그 해 11월 일부 반체제 지식인들이 붙이기 시작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학생과 반체제 인사들이??민주의 벽??에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염원을 담은 대자보를 마음껏 붙일 수 있던 때도 그즈음이었다. 그 무렵 북경동물원 전기 기사로 근무하던 위씨는??제5의 현대화-민주주의??라는 장편의 대자보를 써붙였다. 그는 이 글에서??민주주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의미한다. 어찌하여 현대사에서 모든 반동주의 자들은 민주주의를 적으로 돌리는가. 그것은 민주주의가 인민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면서 그것의 적에게는 인민을 압제할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 반동주의자는 민주주의 최대의 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5의 현대황니 민주주의를 신장하지 않고서는 등소평의??4개 현대화??(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글은 순식간에 반체제 인사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그는 북겨이 당국이 이듬해 3월 반혁명 혐의로 체포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변했다.

노골적으로 등소평 비난했다 구속
 당시 북경 당국이 그에게 덮어씌운 죄목은 반혁명 선전 유포죄였다. 기소장에 따르면, 그는 79년 2월 중국과 베트남 간의 국경 분쟁 때 중국군 주요 지휘관의 이름과 병력 현황에 관한 정보를 외국 기자에게 넘겨줬다는 것이다. 또 7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반혁명적 글을 유포해 인민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그가 79년 3월 발표한 한 글에서 최고 지도자 등소평을 노골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는“등소평이 인민의 고통과 기본권을 회복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고 민주화 운동을 분란책으로 본다면, 그것은 그가 민주주의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등소평을 민주주의를 외면한??신독재주의자??라고 묘사했다. 이 글이 발표된 지 며칠 뒤 위경생은 기소돼 약식 재판에서 15년형을 받았다.

 위경생이 투옥된 직후부터 서방은 그를 석방하라고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들어 무역상의 최혜국대우(MFN)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북경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최고 지도자 등소평의 진노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소평은 87년 비공개 문건에서 이례적으로 위경생의 이름을 거론하고“그의 행동은 국가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위경생은 여러 차례 감옥을 옮겨가며 수형 생활을 했고 특히 89년 6월 천안문 사태 이후에는 두메의 한 노동 수용소에서 독방 생활을 해왔다. 최근 들어 그가 모진 고문과 심한 감옥 생활에 따른 신경쇠악증으로 머리가 모두 빠졌다는 설이 나돌자 북경 당국은 그의 건강한 모습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하기도 했다.

“3천5백여명 반혁명죄로 감옥 생활??
  국제사면위원회가 발간한 93년판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위생경과 같은 정치범 수천 명이 감옥 생활을 한다. 지난 3년간 중국의 반체제 지식인들을 위해 투쟁해온 미국 기업인 존 캄씨에 따르면, 93년 3월말 현재 3천5백1명이 반혁명죄로 수용돼 있다고 한다. 그는 <아시안 윌스트리트 저널>과 가진 회견에서는“법무부 외에 공안 당국이나 기타 기관이 맡고 있는 사람과 재교육 수용소에 있는 사람을 포함하면 정치범 수는 훨씬 늘어난다??라고 밝혔다. 숱한 정치범 중 서방에 알려진 사람은 수백명에 지나지 않는다.

 위경싱을 석방한 것이 다른 정치범에게 좋은 소식이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북경 당국은 그를 석방한 데 이어 국제 인권단체가 중국내 인권 상황을 조사하러 입국할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조처가 인권 보호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 여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위경생의 석방과 관련해,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민주화 운동의 주역인 방려지(미국 애리조나 거주)는 최근 <뉴욕 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고르바초프는 사하로프 박사를 유배 생활에서 풀어줄 때 복권도 함께 시켜 주었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들은 결코 인권이나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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