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에티카와 김지하 생명사상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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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변화해야 환경 문제 풀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돌경대 명예교수인 이마미치 도모노부(????.17)의 《에코에티카》가 최근 솔출판사에서 나왔다. 성심여대 정명환 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1ㅂ개85쪽밖에 안되는얇은 입문서이지만, 국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저서가'과학기술 사회에 새로운 윤리학'을 주창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김지하의 생명 사상을 새삼 돌아보고, 그 미래(세계성)를 내다보게 하는 한 계기를 만들고 있어 주목된다.

 정명환 교수의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마미치 교수는 83년 모교인 동경대를 정년퇴직 한 뒤 현재 명예교수로 있으며, 세계 여러 대학의 초빙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또한 국제 미학회와 국제 철학회의 핵심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얼마 전부터 비교철학 국제연구소 소장을 맡아 에코에티카를 정립하기 위한 범세계적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세계적 철학자이다. 국내에는 《에코에티카》가 처음으로 알려졌지만, 정명환 교수에 의하면 이마미치 교수는 《미의 위상과 예술》《동양의 미학》《동서의 척학》등 여러 저서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는 生???(道?)學으로 불리는 에코에티카(Eco-Ethica)는 그가 60년대 중반에 제시한 것이며 70년대부터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명으로 자리잡았다. 이마미치 교수는 에코에티카를"집안이나 국가의 윤리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환경으로 하는 현대 세계의 윤리, 인류의 생식권 전체에 걸친 윤리학"이라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종래의 국가학이나 정치학 대신에 새로운 도시 철학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종래의 형이 상학이 자연을 넘어서는 것이었듯이. 오늘날에는 환경으로서의 테크니카(technica)를 극복하는 메티테크니카(meta-technica)가 시급하게 요청된다고 강조한다.

《에코에티카》 출간 직후 서평을 한 바 있는 김진석 교수(인하대.철학과)는"에코에티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마미치 교수의 에코에티카는, 김지하의 생명 사상이 이미 염려한 바있는 중산층 중심의 가족 이기주의와 환경 개량주의에 머물 우려가 있다고 했다. 나아가"생태 자본주의나 생태 파시즘에 대한 접근이 없는 것도 아쉽다"라고 말했다.

김지하씨"이마미치의 문제 제기는 훌륭"
 64냔'6.3사태'때 서울대생의 가두 진출 책임을 맡았다가 4개월 동안의 첫 감옥생활을 경험하던 시절 처음으로 ?學을 접한 이래 80년을 전후로 하여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강증산 등의 민중생명 사상을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생명 사상을 펼쳐온 시인 김지하씨(52)의 《에코에티카》에 대한 독후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씨뿐 아니라, 김씨의 생명 사상에 동조하는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 정권의 한 대척점으로 70년대를 통과해온 그에게 80년대는 또 다른'고난'이었다. 민족.민중.민주의 커다란 목소리가 지배하던 그 시절, 그의 생명 사상에 눈을 돌리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관념적인 정신주의라는 비판적 시각이 뒤따랐었다.

 이마미치 교수의 에코에티카와 김지하 시인의 생명 사상은 적지 않은 대목에서 공통분모를 갖지만 또  많은 곳에서 상이점이 발견된다(도표참조)."이마미치 교수의 문제 제기는 훌륭하다. 에코에티카의 시작 가운데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 에코에티카를 하나의 계기로 삼아 우주와 세계 그리고 미래의 인간 윤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김지하씨는 말했다.
《대설 남》(82)《밥》(84)을 기점으로 90년대 이후에 출간되《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생명》등에서 일관되고 있는 김씨의 생명 사상은, 경제 가치에서 생명 가치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기왕의 모든 제도와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를 추구한다.

 예컨대 국가(중앙집중)에서 주민자치 공동체(?????)로, 시장 질서에서 주민 경제로, 집체적 인격에서 개성화한 인격으로 탈바꿈을 꾀하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점진 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 전지구적.전인류적인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마미치의 에코에티카가 과학 기술 사회를 전제로 한 생존의'윤리학'이라면, 김지하의 생명 사상은 세계관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문명의 구성 원리와 전략, 윤리를 포괄하는'사상'이다.

 생명 사상에서 인간은 기왕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김씨는 인간을'신령하고 무궁무진한 우주적 생명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고 본다. 인간 안에 우주 진화의 모든 의식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 안에 자연사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생명 운동은 출발한다. 자기의 주인이 자기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이 곧생명 질서에 따르는 삶이며 동시에인간의 자아 완성이다.

 이 자아 완성의 첫 단계를 김씨는'영성 자각'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영성이란'무슨 이상한 것을 보는 (종교적인) 영성'이 아니라'우주적으로 확대된 자아이며 확장된 자아 체험'이다. 모든 생명체와 물질에 대해 교감할수 있는 정도의 체험이 영성이라는 것이다. 밥한 그릇에서도'우주의협동 작업'을 떠올려 감사하고, 그 은혜를 우주에 돌려주겠다고 생각하는 일상적 노력이 영성 자각 운동이다.

 생명 질서에 따르는 영성 운동은, 곧 우주인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경은 물로 타인과 동식물, 무기물까지도 공경하는 지구적.우주적 윤리의 출발점이다."이 보편적 생명 공경이 새로운 윤리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라고 김시는 강조했다. 이 영성 자각 운동에서 시작해 생태적(영성적) 공동체 운동을 거쳐 시민(주민) 운동으로 나아가는 길이 그의 생명 사상, 생명 운동이 지향하는 단계이고 방향이다.

"생명 사상, 국제화 가능성 있다"
 김씨가 들려주는 동학의 생명 윤리는 생활에서 우러나고 그 생활 속에서 완성되어야 하는 매우 구체적인 지침이었다. 해월은'침을 뱉지 말라'고 일렀는데, 땅은'한울의 얼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나막신을 신고 달려가지 말라'했는데 흙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이같은 생명의 윤리를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김시는 말했다.
 김지하씨는"이마미치의 새윤리학을 접하고 나서, 동학의 원류를 현재화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코에티카에 결함이 없지 않다고 했다."생태주의의 충격이 부족하고 중산층 휴머니즘에 기대고 있으며, 근본주의적인 발상이라기보다는 과학기술 사회에 적응하는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에코에티카》와 김지하의 생명 사상을 비교하는 것은, 국내 환경 철학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것이고, 생명 사상의 새로운 단계를 절망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 김성동씨는"국내 환경 운동에 철학적 배경은 없다. 김지하의 생명 사상은 근원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관점을 갖는다. 그는 대중요법이나 권력의 자리바꿈과 같은 해결이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를 통한 문제 해결책을 강조한다."라고 평가했다. 김성동씨는, 환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철학이 시급한 이 때, 김지하의 생명 사상이 앞으로 개인이 아니라 학자들의 공동작업을 거쳐 사상적 줄기를 잡아간다면 전지구적 문제에 대응하는 철학으로 뿌리내릴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김진석 교수도 생명 사상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김지하 생명 사상이 갖고 있는 생명의 분산화(생명은 개체화하고 또 복잡화한 다른 이론)가 국제화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라면서, 시민자치 운동과 같은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보다 사상적 측면을 연구.발전시킨다면 첨단기술 사회를 포괄하는 문화 운동으로서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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