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해·공 참사로 개혁의 맥 끊긴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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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여객선 침몰 사고/급히 키 돌려 복원력 잃고 전복

올해는 가히 ‘참사의 해’로 기록될 만하다.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침몰(10일 오전 10시 10분쯤)한 여객선 서해훼리호(선장 白雲斗 ·56)는, 선장이 회항하고자 급히 키를 돌리는(急轉舵) 실수를 해서 높은 파도를 선측에 맞고 복원력을 잃은 채 전복 침몰했다. 기어코 한국 교통 안전 행정이 침몰하고 만 것이다.

이미 3월28일 구포 열차 사고로 78명이, 7월26일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로 66명이 죽었다. 철도청과 교통부의 육상 및 항공 교통 안전 행정에 구멍이 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육지와 하늘에서 사고가 나더니 이번에는 바다에서 일이 터졌다. 3~4개월 간격으로 육·해·공에 걸쳐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교통부 주변에선 “육지와 하늘에서 사고가 났으니 이번에는 바다에서 날 차례”라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李啓謚 교통부장관은 국회에 나가 예방 대책을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육·해·공 교통 특별 안전 진단을 했다“는 교통부의 국회제출 자료는 전시 행정의 전형을 보여준 꼴이 되었다. 현재 金永三 대통령은 잇따른 사고에 대한 문책인사로서 李啓謚 교통부장관과 廉台燮 항만청장을 경질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야당의 주장처럼 내각 차원에서 질 책임이 있는지 이 기회에 엄하게 따져 봐야 하겠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잇단 대형 참사로 인해 개혁의 맥이 끊겨 청와대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교통 안전 사고만이 아니었다. 예비군 사고와 정신병원 화재사고까지 합하면, 새 정부는 대형 사고에 계속 발목이 걸리는 형국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다시는 안전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라”고 내각을 질책하고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따가운 질책도 터져나오는 사고 앞에선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더구나 사고의 원인을 따지다 보면 일선 공무원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점이 어김없이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정부로서도 ‘민심 수습용’으로 눈에 띄는 조처를 취해야 할 형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1일 오전 9시에 있었던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그동안 연안 여객선들이 경찰 점검이나 사전보고도 없이 제멋대로 운항해온 관행이 오늘의 참사를 빚게 됐다”라고 말했다.

인천 해난심판원이 사고 원인 규명해야
사실 새 정부 출범 후 발생한 모든 사고는 안전 관리만 제대로 했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 이번 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사고도 해상 안전관리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생존자의 증언과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놓고 볼 때, 이번 사건은 무리한 운항이 빚은 인재였다. 검찰이 나서서 형사 책임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전문성을 가진 기구인 인천 해난심판원이 공조체제로 신속하게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해상교통 정책에 일대 전환을 기하지 않으면 사고는 재발한다.
가령 바다에서 신호등이나 안내표지 노릇을 하는 항로표지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항로표지 시설은 총 1천 77기로 기당 거리는 5.78마일이다. 독일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선박을 관제하는 레이다 같은 과학 감시장비가 없어서 대부분 무선통신 수단에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항로 이탈 선박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고 해상교통을 체계적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수항 선박충돌에 의한 기름유출 사고가 바로 항만관제능력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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